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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의 하얀 황금, 목화 이야기
  • 알렉세이정 칼럼리스트
  • 등록 2026-06-03 21:22:01

우즈베키스탄의 목화는 너무도 유명해서 말이 필요없을듯 하다. 목화의 원산지는 아프리카 남부, 인도-인도네시아, 안데스 산맥 북부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인도라는 설이 지배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도에서는 B.C 3000년, 페루에서는 B.C 2500년, 이집트에서는 B.C 500년경에 재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페르가나에는 B.C 300년경부터 알렉산더의 인도 원정으로 인한 인도 포로들이 오늘날 트란스옥시아나 지방에 정착하면서 목화가 재배되었다는 설이 현재 중앙아시아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난 목화 기원설의 정설이다.

우즈베키스탄의 햐얀 황금, 목화, 출처 : 우즈베키스탄 페르가나 박물관에서 필자의 직접 촬영


즉, 현대판 소련의 우즈베키스탄 목화 재배를 대규모로 시행한 것보다 무려 2,000여 년 전부터 페르가나에는 목화가 재배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실크로드가 생기면서 중국의 비단이 들어오자 그 중심인 이곳에서도 실크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우즈베키스탄의 화려한 실크의 역사에는 목화를 재배했던 지역인 페르가나를 제외하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 실크로드 사가들의 분석이다. 우즈베키스탄은 2013년 기준 세계 목화 6대 생산국이자 5대 수출국으로 이 나라에서 목화는 하얀 황금으로 불린다. 


그 수익은 연간 10억 달러에 달해 말 그대로 국부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걸 정당한 급료를 주어 수확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을 노예삼다시피 해서 생산량을 증대시켰다는 것이다. 이슬람 카리모프의 독재 정부는 지방정부와 농민들에게 할당량을 배정하고 지방 정부는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어린이들까지 동원했다 한다. 주민들의 하루 할당량은 40~120kg으로 보수는 1kg당 150~200숨인데 100숨이 우리나라 돈으로 50원 정도로 볼 때 100kg의 목화를 따도 고작 5,000원을 받을 뿐 그나마도 이런 저런 공제로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목화강제노동이 있었을때는 해마다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2013년에만 어린이부터 60대 노인까지 11명이 숨졌고 그나마도 정부의 강제적이고 폐쇄적인 운영으로 인해 피해자 가족들은 피해보상도 주지 않았던데다 죽은 이유조차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현재까지도 우즈베키스탄의 고질적인 사회 문제로 남아있다. 그로 인해 살인도 자주 발생했다. 대학생 코짐 오모노브(당시 22세)와 사만다 누마토브(당시 23세)는 2013년 9월 16일 아크람 사다토비치 우로브(24)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했는데, 자기 할당량은 다 했다며 남은 일을 서로 미루다가 다툰 것이 문제였다고 한다. 국제 시민단체 코튼캠페인, 워크프리에 의하면 당시 우즈베키스탄에서 해마다 100만 명 이상의 성인과 아동이 경작기, 수확기에 강제 노동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생산된 목화는 정부가 독점 매입해 국가 소유의 무역회사를 통해 수출하며 사적으로 목화를 거래하다 걸리면 처벌을 받는다. 더불어 목화밭에 다른 작물을 심는 것도 불가능하여 그 땅은 목화밭으로 재활용할 것이 아니면 황무지로 버려야 한다. 그러나 목화를 심었던 곳에 벼를 심는 것은 가능하다 들었다. 고려인이 강제 이주되어 우즈베키스탄에 왔을 때, 벼 품종을 한동안 목화밭으로 쓰다가 버려진 황무지에 심었더니 벼가 자라 쌀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한편 강압적인 목화 재배 방식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정부 최고위 관료만 쓸 수 있는 특별 예산 기금으로 들어간다. 


물론 그 돈들은 부패한 정치인들과 일부 부패한 기업인들의 재산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 목화 강제 노동은 금지되었고 목화 수확을 하는 사람들에게 합당한 급료를 주게 되면서 인권침해와 관련된 부분은 어느 정도 해소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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