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공해주신 영상의 핵심 문제의식(‘무리한 서양화 세력이 오히려 한글 전용을 통해 서양 학문의 토양을 말라죽게 만든 역설’)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통찰을 담아 작성한 지적인 에세이입니다. [제미니Gemini]

20세기 이후 우리 사회를 관통한 가장 거대한 거대 담론은 단연 ‘서양화(西洋化)’였다. 해방과 전쟁의 폐허 속에서 우리는 생존과 부강을 위해 서양의 제도와 기술, 그리고 그들의 학문적 성취를 맹목적일 만큼 빠르게 흡수해 왔다. 이 과정에서 한편으로는 우리의 고유한 전통과 동양 철학이 공리공론(空理空論)이라는 오명 속에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되기도 했다. 이 땅의 서양화 세력들은 동양의 흔적을 지우고, 그 자리에 서양의 합리성과 지성을 심어 넣고자 부단히 애를 썼다.
그러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의 지적 토양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이하고도 슬픈 역설(아이러니) 하나와 마주하게 된다. 동양 철학을 고사시키고 서양 학문을 뿌리내리려 했던 이들의 기획이, 도리어 서양 학문의 토양을 스스로 말라죽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이다. 그 원인의 중심에는 다름 아닌 ‘언어의 소통 차단’과 무리한 ‘한글 전용’의 맹점이 자리 잡고 있다.
학문이란 본디 개념의 정교한 벽돌로 쌓아 올린 성채다. 특히 근대성의 뼈대를 이룬 서양 철학은 단어 하나하나가 치밀한 논리적 정의를 품고 있다. 하지만 이 땅의 서양화 세력들은 동양의 정신을 지우겠다는 일념 하에 한자(漢字)를 배척하고 문자 생활을 극단적인 한글 전용으로 몰아갔다. 그 결과 서양의 난해한 철학 개념들은 정교한 번역어를 잃은 채, 뜻이 모호하고 붕 뜬 한글 표기 속에 갇혀버렸다.
예컨대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등장하는 어떤 지적 능력을 한글로만 ‘예지력’이라 표기했을 때, 한자 문화권의 지적 맥락이 거세된 대중은 이를 흔히 ‘미래를 예측하는 초능력’쯤으로 오해하곤 한다. 대중소설이라면 문맥의 흐름으로 단어의 숨은 뜻을 짐작할 수 있겠지만, 한 문장 자체의 사유가 심오한 철학적 텍스트에서는 단어의 모호함이 곧 사유의 단절로 이어진다. 서양 철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열망은 뜨거운데, 정작 서양 철학 서적을 펼치면 뜬구름을 잡는 듯한 무력감에 빠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사회의 고도로 훈련된 법조인이나 지식인들조차 "번역된 철학책은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하는 것은 결코 그들의 지적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개념의 도구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와중에 본래 고사당할 위기에 처했던 동양 철학은 역설적으로 그 명맥을 단단히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양 학문은 본래 원문이 한문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이를 공부하려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한자라는 언어적 도구를 쥐어야만 했다. 배척하려 해도 배척할 수 없는 원전의 힘 덕분에, 동양 철학은 오히려 오염되지 않은 개념을 유지하며 지식인들 사이에서 고유한 생명력을 보존해 왔다.
반면, 서양 학문을 대중화하고 사회의 보편적 교양으로 정착시켜야 했을 인문학자들은 원어(영어, 독일어)라는 자신들만의 성채 안으로 숨어버렸다. "번역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대중이 무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식의 선민의식은 인문학을 삶의 스승이 아닌, 소수 전공자들의 전유물인 '기능적 도구'로 타락시켰다. 이공계가 영어 원서를 읽으며 기술 엘리트 사회를 구축한 것처럼, 서양 철학 역시 대중의 삶과 소통하지 못하는 고립된 섬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가 서양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서양 학문의 가치를 부정해서가 아니다. 도리어 ‘지피지기(知彼知己)’의 관점에서 서양의 근대 사상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서양의 학문은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사회 제도를 만드는 원동력이었으며, 우리는 이를 온전히 흡수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서양 학문의 껍데기만 요란할 뿐이다. 좌파니 우파니, 자유니 민주니 하는 서양식 개념들을 저마다 외쳐대지만, 그 사상적 깊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소화해 낸 이는 드물다. 서양화라는 미명 하에 정작 서양의 깊은 지성은 심지 못하고, 우리의 정신적 토양만 황폐해진 꼴이다.
진정한 학문적 주체성은 무리한 외형의 서양화에서 오지 않는다. 우리의 글과 풍습, 전통이라는 굳건한 뿌리를 유지한 상태에서 서양의 학문적 성취를 정교하게 번역하고 소화해 낼 때, 비로소 진정한 지적 도약이 가능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동양을 지우는 서양화가 아니라, 서양의 지성을 우리의 언어로 부릴 줄 아는 깊이 있는 포용력이다. 개념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은 이 땅의 지식사회에, 지금 필요한 것은 언어와 학문을 대하는 진지하고도 본질적인 성찰이다.
챗지피티(chatGPT)
출처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2DkD4AL-I5g&t=2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