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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동월열전>에서 말하는 월(越)
  • 알렉세이정 칼럼리스트
  • 등록 2026-06-03 21:39:20

<사기-동월열전>의 기록을 중심으로 흔히 월(越)이라고 하는 민족과 지명은 중국 동남부 지역의 절강(浙江), 복건(福建), 강서(江西), 광동성(廣東省)에서 베트남 북부에 이르는 지역의 옛 명칭이자 거주한 민족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특히『한서(漢書)-지리지(地理志)』의 주(註)에 의하면 “교지(交趾)에서 회계(會稽)에 이르는 7,000∼8,000리에 백월(百越)이 잡처(雜處)하고, 각각 종성(種姓)이 있다.” 라고 서술된 바와 같이, 어월(於越), 민월, 양월(楊越), 남월(南越), 낙월(駱越) 등 많은 백월(百越) 계통의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대대로 중원 국가들인 진(秦), 한(漢) 나라와 군사, 외교적으로 충돌을 벌이며 각기 지역에서 성장해왔다. 

중국 푸젠성(복건성) 푸저우시의 민장(민강) 한가운데에 위치한 하중도인 중저우다오(중주도, 中洲岛),  출처 : 百度百科


진(秦) 나라 때부터 계림(桂林), 남해(南海), 상(象), 민중(閩中) 등의 여러 군(郡)이 설치되었고 이민(移民) 제도도 실시되었으나, 진나라 말 남해군 현령(縣令)인 조타가 자립하여 남월(南越) 무제(武帝)로 칭하였고, 한(漢)나라 고조도 이를 인정하는 등 중앙권력 통치가 철저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월족 계통의 국가들이 남중국에 양립하고 있었다. 특히 한 무제(武帝) 때, B.C 112년 노박덕(路博德), 양박(楊樸) 등이 남월에 출병하여 남월의 황제인 애제(哀帝) 조흥(趙興)은 항복하였으며, 다음 해 창오(蒼梧), 울림(鬱林), 합포(合浦), 교지, 구진(九眞), 남해, 일남(日南) 등 각 9군(郡)이 설치되어 한나라의 영토가 되었다. 


월족이 거주하던 지역에는 중원의 인구가 적고 자연조건이 혹독하였기 때문에 남북조 시대 이후에 한족과 중원 종족들이 이동하면서 개척이 진전되었다. 한나라 초기 남중국에 거주하고 있던 월족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절강성 남부 연해에 살고 있는 동구, 복건성 연해에 살고 있는 민월, 광동, 광서 일대에 살고 있는 남월(南越)이 있었다. 무제 즉위 후에 동구와 민월은 강회(江淮) 지역으로 이주하여 한족과 같이 거주하면서 한족과 융합되었다. 특히 민월은 한나라 말기에 동해군 관할 아래 있다 왕망이 한나라 정권을 찬탈하여 신(新) 나라를 세우고 혼란의 시기를 맞이하자 민월은 동월과 더불어 절강성, 복건성, 강서성 지역을 장악했다. 


특히 복주(福州) 지역을 중심으로 한 민월은 남쪽으로 옛 남월 영토에서 발현한 낙장의 세력과 동맹을 맺고 중원에 저항하게 되었다. 그런데 유수에 의해 후한(後漢)이 건국되고 이어 후한의 광무제(光武帝)는 남방에 대한 평정을 위해 출정하여 강서, 절강, 복건 지역에 자리 잡고 있던 민월 인들은 모두 복속되어 한족과 동화되었다. 이후 동월, 민월의 영토는 후한 말기에 손견(孫堅)을 비롯한 손씨 가문에 넘어갔고 손권(孫權)에 의해 오(吳) 나라가 건국되자 민월 인들은 건업(建業)에 들어와 오나라에 충성하였고, 남통(南通), 영파(寧波), 태주(台州), 온주(溫州), 복주(福州), 천주(泉州), 영덕(寧德) 등 9군을 개항했다. 특히 복주(福州)와 천주(泉州), 영덕(寧德)은 당시 삼국 시대, 이후, 서진(西晉), 동진(東晉)이 이룩한 해양 교통의 문호로서, 이곳에서 배를 타고 약 4~5개월이면 말레이 반도에, 다시 5개월이면 미얀마, 다시 2개월을 더 가면 인도에 갈 수 있어 후세인들은 이 길을 이른바 “해양 실크로드” 라고 불렀으며 이러한 해양 교통은 민월과 동월인들이 장악했다. 


따라서 이 해양 실크로드를 최종적으로 장악했던 민족은 객가(客家) 인으로 이들은 동월과 민월의 후예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들은 동남아시아 각 지역으로 진출해 화교의 원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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