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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스텝의 고대 청동기 문화들은 대부분 사카 문화
  • 알렉세이정 칼럼리스트
  • 등록 2026-06-03 21:47:04

B.C 19세기와 18세기에 안드로노보와 아화나시에보 중앙아시아 청동기 문화를 영위한 스키타이인들은 기타 지역, 특히 얌나야 문화 지역과 돈 강 및 쿠반 강 지역 곳곳에서 원주민들의 영토를 노략질하고 이 영토들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청동기 시대 이후 발전하는 농경민들의 경제와 무기 기술의 발달은 중앙아시아, 특히 기마유목민족들에게 군사적 우위를 보장해 주었고 얌나야 일대와 카프카스, 중동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전통사회들은 보다 먼 곳에서 말을 타고 활과 쏘아대며 강력한 기세로 침공하는 스키타이의 군대 앞에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사실 이와 같은 초원 민족들의 이동이 현실화되기 전 유라시아 대륙의 중간에 위치한 중앙아시아와 오리엔트 지역 간의 접촉은 그리 빈번하지 않았다. 

유라시아 초원의 스텝 유목민들,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간헐적인 무역과 더불어 사절단의 교환이 있었지만 본격적인 교류는 없었고 군사적인 충돌은 더더욱 드물었다. 오리엔트 고대 문명 주민들은 다만 중앙아시아에 지리적으로 가까운 페르시아나 인더스 지역에 자리 잡은 아리아 인들을 통하여 중앙아시아에 대한 짧은 지식을 얻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오리엔트와 이란 땅에서 초원 유목민족들의 남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던 B.C 14세기와 13세기, 현재 카자흐 초원지대에 있는 모든 부족들을 안드로노보 문화권의 사카계 민족들이 통일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이들은 기마를 통한 기동력을 지녔으나 정치적으로 통합되지 못하여 주변 정착하고 있는 부족들의 부용(附庸) 세력으로서만 존재하였던 민족들이었다. 그러나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 이들을 하나의 이념 하에 통일하고 세상 끝까지의 정복을 목표로 삼으면서 스키타이 기마의 기동력은 무시무시한 군사력으로 전환되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동아시아 만주 북부에서 몽골, 중앙아시아, 카스피 해와 흑해 연안, 그리고 중부 유럽 헝가리 평원까지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 지르는 스텝지대로 일컬어지는 이른바 스텝로드였다. 고대 오리엔트 제국들이 제국의 구석까지 도로를 만든 이유는 무엇보다도 군사이동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제국 각지의 교류와 물자의 유통을 원활히 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기는 하였지만 기본적으로 오리엔트의 도로들은 기본적으로 군도(軍道)로서 활용할 수 있게 지어졌다. 한참 후에, 특히 로마의 경우 거대 육상도로가 있기는 하였지만 고대 오리엔트 제국들만큼의 길이와 규모는 아니었다. 이는 로마 제국을 가로지르는 많은 강과 하천이 도로의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리엔트와 로마는 모두 정착문명이었고 육로이건 수로이건 체계적으로 관리할 국가 체계가 있었다. 그러나 스키타이를 포함한 북방에는 정착 문명의 도로 같은 시설은 드물었다. 


인공적인 도로를 만드는 사람도, 관리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말을 탄 유목민들은 널리 펼쳐진 초원을 따라 자유롭게 이동하였다. 세간도 많지 않았고 집도 천막의 형식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체하여 수레에 싣고 이동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유목민들의 이동은 계절에 따라 가축이 살기 좋은 곳으로 옮겨 다니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다른 부족과의 경쟁에서 패하는 경우, 또는 인근 정착 국가로부터의 압박이 심해지는 경우 자신들이 살고 있던 곳을 떠나 아예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와 같은 유목민의 이동은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초원의 스텝로드를 따라 이루어졌다. 평원과 낮은 구릉으로 이루어진 초원은 말 탄 유목민들의 이동을 용이하게 하였다. 이후 서술될 수많은 유목민족들은 원래 중앙 유라시아 스텝 지대 남쪽 끝에 거주하고 있었으나 흑해 북부 연안을 거쳐 유럽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고대로부터 유라시아의 정착문명을 정복하고 파괴한 스키타이, 사르마트, 아바르, 투르크, 훈, 흉노, 몽골 등 유목 민족들은 모두 초원의 길을 따라 활동하였다. 정착문명의 농경민들에게 초원의 길은 농사지을 수 없는 쓸모없는 땅이 끝없이 이어진 불모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기마가 일상인 유목민들에 있어 초원의 길은 수천 km 떨어진 곳을 이어주는 고속도로와 같았으며 이를 따라 유라시아의 유목민과 정착 문명 간에 치열한 투쟁이 전개된 역사의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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