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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전쟁 당시 적보다 무서운 멍청한 상관, 래글런 경(Lord Raglan)
  • 알렉세이정 칼럼리스트
  • 등록 2026-06-07 19:32:16

영국과 프랑스는 해군을 동원해 흑해에서 러시아 해군에 대항하고 나아가 크림반도를 공략하도록 했다. 그러나 흑해에 도착한 두 나라의 원정군은 큰 낭패를 보았는데, 정박 예정이던 지역의 바다 수심이 매우 낮아 배를 정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기초적인 정보도 파악하지 않은 채, 정부의 명령을 받고 낯선 바다로 들어온 원정군의 병사들은 이번에는 추위와 기아에 시달려야 했다. 훌륭한 정부 고관들은 크림반도가 러시아의 휴양지라는 말만 듣고 결정했었기 때문에 하복 차림으로 겨울에 접어드는 러시아 땅에 가도록 한 것이 문제였다. 더불어 병력이 소비할 군량과 의약품의 대부분은 육로로 후송한다고 했는데, 이 후송대가 지리를 잘 몰랐기 때문에 여기저기 헤메며 목표한 날짜에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겨우 병력이 모여, 연합군은 1854년 9월에 크림반도에 상륙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곧장 세바스토폴 요새를 향해 진격해 들어갔다. 그러나 이것도 실수였다. 원정군은 기후도 좋지 않은데다가 보급도 모자라는 상황에서 되도록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내는 것이 좋았으며, 따라서 우크라이나를 종단해 북상하여 러시아의 제2 도시인 모스크바를 곧바로 노리는 편이 나았다. 

래글런 경(Lord Raglan)의 사진, 출처 : Wikipedia, Fitz Roy Somerset, 1st Baron Raglan


그러나 견고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세바스토폴을 상대로 겨울 한 철을 견디는 장기적인 공방전을 선택했으니, 전쟁을 어렵게 수행하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했다. 러시아군은 세바스토폴로 향하는 원정군을 알마 강에서 막아섰다. 그러나 6만의 원정군에 비해 3만 5천의 병력으로 수성하는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야전으로 승패를 결정하기보다 고지에 머물면서 대포를 최대한 활용해 원정군의 진격을 방해하려고 했다. 영국군이 먼저 러시아군을 공격하려 고지를 오르는 사이, 영국군은 대열이 엉켜 어지러운 상태로 적을 맞이하게 되었으나, 영국군에는 노련한 소총수가 많았고 새로 도입한 선조탄(Minié ball)이 사격의 정확성을 늘려주었기 때문에 러시아군을 후퇴시킬 수 있었다. 원정군은 세 차례에 걸쳐 러시아군을 공격하여 고지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세바스토폴로 가는 길에 연합군의 진격할 방해할 군대는 없어졌다. 이후 약 1년 동안 원정군은 세바스토폴 수비대와 전투를 벌이고, 러시아군은 몇 차례 그들의 후방을 공격하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하면서 지지부진한 장기전에 도달했다. 이러한 러시아군의 시도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시도는 1854년 10월 말에 있었다. 


알마(Альме) 전투에서 패배한 알렉산드르 멘시코프 장군이 세바스토폴을 버려두고 크림반도 최남단의 발라클라바(Балаклава)를 장악하기 위해 남진했던 것이다. 당연히 세바스토폴 포위군을 직격해 올 것이라 여겼던 원정군 지도부는 기습을 당했고, 발라클라바는 원정군의 지원 병력과 보급 물자가 도착하는 항구도시였기에 그곳을 지키느냐, 못하느냐는 전쟁의 승패를 가늠할 것임을 깨달았다. 원정군은 뒤늦게 전열을 정비했으나, 동원할 수 있는 원정군 병력은 4,500명 남짓인 데 비해 러시아군은 25,000명에 달했다. 게다가 이제 전개될 발라클라바 전투는 전쟁 사상 보기 드문 실수의 연속으로 엮어지는 전투였다. 비록 그 실수를 어느 정도 보충할 용맹함도 나타났다. 발라클라바 전투의 성패는 세바스토폴에서부터 크림반도 남단을 가로지르는 보론초프(Воронцов) 도로, 그 중간에 발라클라바로 가는 지점에 해당되는 코즈웨이(Козвэй) 고지 부분을 원정군이 막아낼 수 있는지에 따라 달려 있었다. 원정군은 그 고지 6곳에 요새를 지어 방어 중이었다. 그런데 1854년 10월 25일 아침에 시작된 10,000명 가량의 러시아군 선제 공격에 그중 4개 요새가 쉽게 점령당해버렸다. 총사령관인 영국의 래글런 경(Lord Raglan)이 적의 공격을 속임수라고 판단하고는, 고작 1,000명의 오스만 군만이 맡고 있던 요새 수비 병력을 보강하지 않고 두었기 때문이었다. 


오스만 군은 일방적인 살육으로 인해 도주해 버렸으며, 코즈웨이 고지대 전체가 러시아군에게 넘어가는 일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래글런의 다음 명령은 그와 같은 전망을 가중시켰다. 기병대에게 현 위치에서 벗어나 동쪽의 아직 점령되지 않은 요새들의 수비를 보강하라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다시 말해 보론초프 도로를 횡단하여 곧바로 발라클라바로 진격할 수 있도록 러시아군에게 도로를 열어두라는 것이었고, 기병대들이 그와 같이 움직인다면 따로 명령을 받지 않은 550명의 하이랜더(스코틀랜드인) 연대를 10,000명이나 되는 러시아군에게 넘겨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기병대 사령관 루컨 경(Lord Lucan)은 이와 같은 말도 안 되는 명령이 어디 있냐며 욕을 내뱉었으나, 명령이었기 때문에 곧바로 그대로 자리를 떠나버렸다. 이와 같은의 절호의 기회에 러시아군이 정찰대만 보냈다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전열을 정비해 단숨에 보론초프 도로를 넘었겠지만, 그들은 그저 4개의 요새를 점령했으니 또 다음 요새를 차지하자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추가로 남겨진 하이랜더들 앞으로 천천히 접근해 왔다. 그때, 죽음을 각오한 하이랜더들은 믿기 힘든 용맹함을 보여주었다. 


도주하거나 엎드려 있는 대신, 일제히 전진하여 하나의 횡대를 이루고 빠르게 사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예상보다 쉽게 요새들을 점령하였기 때문에 방심하며 진군하던 러시아군은 당황했고, 붉은 제복의 하이랜더들이 선두의 러시아군 기병대들을 전멸시킨 다음 총검을 잡고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것을 보자, 그만 겁이 나서 도주하고 말았다. 하이랜더들 배후에 적의 병력이 얼마나 있을지 몰랐기 때문에 러시아군은 후퇴만이 답이라 여겼던 것이다. 하이랜더들은 “씬 레드 라인(Thin Red Line, 붉은 군복 차림으로 소수 병력이 횡대를 이룬 모양에서)”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사에서 손에 꼽을 만한 용맹한 전사들로 영원히 기억되었으며, 이는 약 100년 뒤 태평양전쟁 상황에서도 재현된다. 그러나 "적보다 무서운 멍청한 상관" 래글런의 재앙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동쪽의 요새로 가서 고전하고 있는 오스만 군을 도우라고 중기병대에게 명령한 것인데, 이에 고전하고 있었던 오스만 군은 그때 이미 발라클라바 근처까지 도주하고 있었다. 그 명령을 그대로 수행하려면 적군이 모여 있는 고지로 공격하며 올라가야 했는데, 중기병대를 이끌던 제임스 스칼렛(James Scarlett) 장군은 역시 묵묵히 이와 같이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받아들였다. 


오전 9시 30분, 씬 레드 라인이 20배나 많은 러시아군을 격퇴시킨 직후, 스칼렛도 부하들의 선두에 서서 검을 휘두르며 적진으로 돌진했다.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방식으로 러시아군을 공격하며 돌격전을 벌이자, 11시경부터 러시아군은 갑자기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때 카디건(Cardigan)이 이끌던 경기병대까지 합류해서 공격했다면 러시아군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가만히만 있었다. 경기병대는 적이 공격해오지 않는 한 자리를 지키라는, 래글런만이 할 수 있는 명령을 내릴 특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듯한 루컨의 명령 때문이었다. 이에 래글런도 패배할 수 없었다. 루컨에게 보낸 그의 세 번째 명령은 여세를 몰아 적을 공격하여 요새들을 탈환하라고 했다. 그리고 지원할 보병대가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이를 받아 적는 과정에서 오탈자가 생기면서 여세를 몰아 적을 공격하여 요새들을 탈환하라. 지원할 보병대가 있다면으로 되어 버렸다. 루컨이 주위를 돌아봐도 보병대는 없었고, 따라서 적군이 요새로 돌아가 전열을 정비할 때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 그날의 마지막 실수가 나왔다. 


하이랜더와 중기병대의 분전으로 러시아군은 코스웨이 동쪽의 요새 점령 병력과 북서쪽의 멘시코프 본진으로 분산되어 있었다. 하이랜더들의 분전이 없었다면, 또는 러시아군이 좀 더 상황 파악이 빨랐다면 두 병력이 합세하여 원정군을 쉽게 격파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서야 전장 가까이에 레글런이 도착했고 레글런은 그때까지 한참이나 떨어진 본부에서 지도나 보며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래글런이 마침 점령된 코스웨이 요새의 영국군 대포들을 러시아군이 옮기는 것을 보고는 러시아군이 영국군의 대포를 가져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즉각 전진하여 저지하라고 지시했다. 그와 같은 명령을 전할 전령은 레슬리(Leslie) 대위와 놀란(Nolan) 대위였다. 이들이 말을 타고 달려 경기병대 본부에 있는 루컨에게 그 명령을 전했을 때, 루컨은 무슨 대포를 말하는 건지를 반문했다. 그의 위치상 시야에 들어오는 대포는 래글런이 말한 코스웨이의 영국군 대포가 아니라 북서쪽 러시아군 본진의 대포였던 것이다. 당시 놀란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루컨에게 화가 나 러시아군 대포들을 가리키며 이를 저지할 것을 전했다. 


그렇다면 이 명령이야말로 최악의 명령이었던 셈이다. 이는 적의 사격 연습을 위해 대신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의 명령인 셈이었던 것이다. 본진의 러시아군은 30,000명이 넘었고, 잘 정비되어 있었으며, 50문이 넘는 대포를 겨누고 있었다. 이에 맞서 루컨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1,000명도 안 되었다. 루컨은 놀랐지만 명령은 명령이었기 때문에 카디건의 경기병대에게 러시아군에게 돌진하라고 지시했다. 그러한 말도 안 되는 명령에도 영국군 병사들은 수십 배나 되는 적군과 전투를 벌이려고 질서정연하게 전진했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프랑스군의 보스케(Bosquet) 장군은 장엄한 광경이지만 하지만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아군에 대한 학살이라 비판했다. 그러나 최초의 희생자는 잘못된 명령을 전한 놀란 대위였다. 그는 별안간 전진하고 있는 아군 앞쪽으로 말을 타고 나왔는데, 계속 전진을 외쳤지만 대포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을 뒤늦게 깨달은 놀란 대위는 정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놀란 대위는 이와 같은 자살 공격을 그만두라고 말리려던 것이었을지는 알 수 없었고 자신을 따라 돌격을 명령했을지 알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순식간에 총탄을 수없이 맞고 전사했다. 러시아군의 총탄과 포탄이 수없이 날아들면서, 묵묵히 전진하는 영국군들을 차례차례 살상시키기 시작했다. 루컨 스스로는 중기병대를 이끌고 그 뒤를 따르다가 더 이상의 희생을 늘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는 진격을 정지시키고 자신의 명령을 따라 적진에 들어가는 경기병대를 두고 그대로 후퇴했다. 영국군 경기병대는 러시아군에게 일방적인 학살을 당하며 전진했다. 그러다가 그중 일부가 기적적으로 적 포병대에 앞에까지 육박했지만, 모두 대포에 맞고 희생되었다. 결국 영국군은 패배하고 후퇴했다. 후퇴하는 동안에도 러시아군의 총탄과 포탄은 계속 날아들었다. 전진에서 후퇴까지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600명이 넘는 경기병대 중 300명 가량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고, 60명이 포로로 잡혔으며, 335마리의 말이 죽었다. 그들도 씬 레드 라인이나 스칼렛의 중기병대만큼 노련하고 용감했다. 그러나 그들이 상대한 러시아군은 뜻밖의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알마 전투 때의 선발대가 아니라 잘 정비된 본진이었고, 전진하라는 명령만 들었지, 돌격하라는 명령은 받지 못했다고 고집하던 카디건으로 인해 느리고 전진하느라 쉬운 러시아군 사격의 표적이 됨으로 인해 후일 ‘죽음의 계곡’으로 불리게 될 크림반도의 계곡에서 전사할 수밖에 없었다. 


카디건은 그 대신 자신의 부하들보다 조금 일찍 퇴각했기 때문에, 살아 남았다. 당대의 대시인인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은 <경기병대의 진격(The Charge of the Light Brigade)>이라는 작품에서 그들의 어이없는 죽음을 위로했다. 영국군의 지휘관들이 매우 무능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군은 발라클라바를 점령하지 못했다. 러시아군이 당시 발라클라바를 점령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그리고 세바스토폴에 대한 원정군의 포위망을 끝내 격파하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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