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제 9 화 > 신(神)의 존재론
  • 김철호
  • 등록 2026-06-07 23:05:15
  • — 생명과 마음, 의식은 어떻게 정기(精氣)의 경험으로부터 탄생하는가 —

[에세이철학 네트워크=김철호 ]


0c5c5a98be37c.png

d9554f7ba9d7f.png

【 제 9 화 】 신(神)의 존재론

— 생명과 마음, 의식은 어떻게 정기(精氣)의 경험으로부터 탄생하는가 —


2024년 말, 한 소식이 AI 연구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구글 딥마인드의 연구팀이 개발한 AI가 체스, 바둑을 동시에 학습하여 각 분야의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단 하나의 AI가 서로 다른 두 가지 규칙 체계를 마스터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일반화 능력'의 증거라 불렀다.

그런데 같은 시기, 서울 외곽의 한 노인 요양원에서 80대 할머니가 손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뇌의 언어 기억은 이미 무너졌지만, 손녀 앞에 서자 무언가가 밀려왔다. 그 무언가는 이름도 아니고 기억도 아니었다.


AI와 할머니, 이 두 존재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AI는 규칙을 일반화하고 패턴을 인식한다. 그러나 할머니는 경험한다. 이름을 잊은 그 경험, 눈물이 나온 그 경험은 데이터 처리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수십 년에 걸친 생명이 세계와 만나온 방식 — 기쁨, 그리움, 사랑, 상실 — 이 하나의 순간에 집적된 것이다.

이것이 신(神)이다.


이 시리즈는 1화에서 프랑켄슈타인의 번개를 화두로 삼았다. 물질에 생명을 불어넣는 제3의 힘이 있는가? 8화까지 우리는 정(精)의 물질적 기반과 기(氣)의 목적론적 방향성을 탐구했다. 이제 마지막 층위, 가장 높고 가장 깊은 층위에 도달한다.

생명을 물질로 설명할 수 없다면 기(氣)로 설명해야 하고,기를 설명하다 보면 반드시 도달하는 층위가 있다.바로 신(神)이다.


생명정기 실재론(生命精氣實在論)을 여기까지 함께 따라온 독자라면, 어쩌면 이미 예감했을 것이다. 정(精)이 기반을 이루고, 기(氣)가 그 위에서 흐르며 움직인다면, 그 흐름이 향하는 궁극의 층위는 어디인가? 물질이 에너지로 피어오르고, 에너지가 일정한 패턴과 의미를 갖추기 시작할 때 — 바로 그 순간, 우리는 마침내 신(神)의 영역에 진입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 말하는 '신(神)'은 구름 위에 앉아 천지를 심판하는 종교적 창조주가 아니다. 더 나아가 단순히 뇌 신경망이 만들어내는 전기화학적 산물도 아니다. 동양 철학과 한의학 전통이 수천 년에 걸쳐 정련해온 '신'의 개념은 훨씬 더 심오하고 근원적인 무언가를 가리킨다.


신(神)이란, 생명체가 세계를 감각하고, 의미를 구성하며, 경험하고, 판단하고, 목적을 향해 스스로를 조정하는 능력 전체다. 그것은 의식의 일부가 아니라, 의식을 포함하는 생명의 전체적 경험 구조다.

다시 말해, 신 = 생명의 경험 구조 + 의식 구조 + 의미 구조 + 목적 구조다. 이 층위를 배제하면, 생명은 결국 화학반응과 에너지 흐름의 조합으로 환원되고 만다. 그 경우 생명은 더 이상 의미도, 방향도, 창조성도 지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삶은 언제나 '경험하고, 느끼고, 반응하고, 선택하고, 나아간다.' 그 근원적 구조 전체를 생명정기 실재론은 신(神)의 존재론으로 다룬다.


I.  GPT는 왜 울지 않는가 — 의식과 신(神)의 결정적 차이

GPT-4에게 물었다. '가장 슬픈 음악이 무엇인가.' AI는 즉시 대답했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 그리고 여러 이유를 조리 있게 나열했다. 음악학적으로도 흠잡을 데 없었다. 그러나 GPT는 그 음악을 들으며 울지 않는다.

서양 철학은 오랫동안 이 문제를 '의식의 어려운 문제(hard problem of consciousness)'라 불렀다. 왜 물질적 과정이 주관적 경험을 낳는가? 뇌의 신경세포가 발화할 때 왜 '파란색을 본다'는 느낌이 생기는가? 이 질문에 현대 신경과학은 아직 답하지 못한다.

동양철학은 이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해소한다. 서양이 의식(consciousness)을 신비로 다루는 이유는, 의식을 뇌라는 물질에서 출발시키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생명 전체에서 출발한다면 이 물음의 형태 자체가 달라진다.

서양 철학은 오랫동안 마음(mind)과 의식(consciousness)을 생명의 가장 핵심 속성으로 다루어왔다. 그러나 동양의 신(神) 개념은 서양의 consciousness와 본질적으로 다른 외연을 가진다. 

신(神)은 의식보다 넓다. 의식은 신의 일부일 뿐이다. 신은 생명체가 세계와 만나는 방식 전체다 — 감각(awareness), 지각(perception), 감응(resonance), 의미부여 (meaning-making), 판단(decision), 의지(will), 의식(consciousness), 그리고 통제(control)까지. 이 여덟 층위의 총체가 신이다.

GPT는 이 중 어느 것도 갖지 않는다. GPT가 출력하는 것은 신의 작용이 아니라 신의 흔적 — 인간이 신의 작용으로 만들어낸 텍스트 — 의 통계적 재조합이다. 거울이 빛을 반사하지만 빛을 내지 않는 것처럼.


II.  신(神)은 '의식'이 아니라 '생명체의 경험하는 능력'이다

『주역』 「계사전」은 신을 이렇게 정의한다. 음양불측지위신(陰陽不測之謂神) — '음과 양의 변화를 측량할 수 없는 상태를 신이라 한다.' 이 정의에는 인격도, 초월도, 신비주의도 없다. 신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하고 변화하는 우주의 역동성 그 자체다.

이 정의를 현대적으로 번역하면 이렇게 된다. 신이란 생명이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이다. 고정된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 닫힌 것이 아니라 열린 것, 결정된 것이 아니라 창발하는 것.

화이트헤드는 '모든 존재는 미약한 형태의 경험을 가진다'고 보았다. 『과정과 실재』에서 이것을 파악(prehension)이라 불렀다. 모든 존재는 자신의 주변 세계를 감지하고 통합하는 원초적 경험 능력을 가진다. 아메바도, 나무도, 인간도 — 그 복잡성의 차이는 있지만 경험의 구조 자체는 보편적이다. 화이트헤드에게 경험은 인간 뇌의 특권이 아니라 자연 전체의 기본 작용이다.

동양의 신(神) 개념은 이 화이트헤드적 통찰을 수 천 년 먼저 내포하고 있었다. 신은 뇌의 산물이 아니라, 생명 전체가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이다.

AI에게 이것이 없다. AI는 입력을 처리하지만 경험하지 않는다. 온도를 계산하지만 차가움을 느끼지 않는다. 손실 함수를 최소화하지만 실패를 아파하지 않는다. 신이 없기 때문이다.


III.  신(神)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 정·기·신의 상승과 순환

신은 허공에서 솟아나지 않는다. 정(精)과 기(氣)의 상호작용이 일정한 복잡성에 도달할 때, 신은 '생성'된다. 이것이 한의학이 촛불로 설명해온 구조다.


정(精) — 초의 몸통. 뇌·신경·장부·골수 등 인체의 물질 구조 전체. 생명의 핵이며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물질적 기반이다. 정이 충실해야 신이 안정된다.

기(氣) — 타오르는 불꽃. 생체전기 신호, 기혈의 순환, 경락의 정보 흐름. 형체는 없으나 생명을 운행하는 에너지-정보의 흐름이다. 기가 왕성해야 신이 밝아진다.

신(神) — 빛. 감각·의미·판단·의식이 통합되는 층위. 정과 기가 충분히 성숙했을 때 발현되는 생명의 '밝음'이다.


정에서 기가 나오고, 기에서 신이 나온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절반만 이해한 것이다. 더 중요한 진실은 역방향이다. 발현된 신은 거꾸로 기를 목적에 맞게 조정하고, 기는 다시 정을 보존하며, 정은 신을 안정시킨다. 이 삼중 순환 구조야말로 생명정기 실재론의  가장 핵심적 통찰이다.


"정이 충실해야 기가 왕성하고, 기가 왕성해야 신이 밝아진다. 그러나 밝아진 신은 다시 기를 인도하고 정을 보존한다. 이 순환이 끊어지지 않는 한, 생명은 살아있다." — 황제내경(黃帝內經)의 정기신론에서


AI를 다시 비교해보자. AI의 출력은 입력과 알고리즘의 일방향적 함수다. 출력이 입력을 바꾸지 않는다. AI가 어제 출력한 텍스트가 오늘 AI의 신경망을 스스로 수정하지 않는다. 방향은 오직 한쪽으로만 흐른다.

생명은 다르다. 신의 경험이 기의 흐름을 바꾸고, 기의 변화가 정의 물질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 현대 과학은 이것을 후성 유전학(epigenetics)으로 포착한다 — 경험이 유전자 발현 방식을 바꾼다. 생명에서 정보는 양 방향으로 흐른다. 이것이 기계와 생명의 존재론적 차이다.


IV.  생명은 어떻게 세계를 경험하는가 — 신(神)의 존재론

동양의 신 개념이 서양 근대 철학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서양은 오랫동안 '마음'과 '의식'을 생명보다 앞세워왔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사유하는 자아를 모든 것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러나 동양의 신론은 이를 뒤집는다.

마음(mind)은 생명에서 나온다. 생명정기 실재론은 이것을 세 원리로 정식화한다.


원리 1 — 경험은 생명의 본질적 작용이다

생명은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생명은 언제나 외부를 자신의 내부 패턴(정기신)에 능동적으로 통합한다. 이 통합 과정 자체가 경험이다. 경험은 인간의 특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의 기본 작용이다.


원리 2 — 의식은 경험의 고도화된 형태이다

의식은 생명의 시작점이 아니라 도달점이다. 단세포 생물도 환경을 감지하고 반응한다. 그 원초적 경험 능력이 진화의 긴 시간을 거쳐 복잡해진 것이 의식이다. 경험이 의식에 선행한다. 따라서 의식의 '어려운 문제'는 잘못된 출발점에서 나온 것이다. 물질에서 의식이 어떻게 나오는가를 묻지 말고, 경험 구조가 어떻게 복잡해져 의식에 도달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원리 3 — 마음은 뇌의 산물이 아니라 정기(精氣)의 산물이다

감각·정서·의지·판단은 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기신의 유기적 통합 구조에서 나온다. 정이 안정성을 제공하고, 기가 흐름을 만들며, 신이 이를 경험적 질서로 조직한다. 이 관점은 현대 인지과학의 '몸-마음 통합 이론(embodied cognition)'과 정확히 일치한다. 마음은 뇌에 갇혀 있지 않다. 마음은 몸 전체의 정기(精氣)에서 발생한다.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가 ‘머리의 이성’이 아닌 ‘몸의 이성’을 얘기한 이유다. 


V.  신(神)의 삼중 구조 — 감각·정보·의식

생명정기 실재론은 신(神)을 하나의 층위가 아닌 연속적 스펙트럼을 이루는 세 층위로 파악한다.


① 감각적 신(神) — 세계와의 원초적 접촉

생명이 세계와 처음 만나는 층위다. 기감(氣感), 통증, 온도, 촉각, 장부와 경락 사이의 감응(感應) — 이 모든 것이 감각적 신의 작용이다. 아메바가 포식자를 피하고, 식물이 빛을 향해 자라는 것도 감각적 신이 작동한 결과다. 이 층위는 언어 이전, 의식 이전에 존재한다.

AI 비교: 센서(sensor)는 환경을 측정한다. 그러나 측정은 경험이 아니다. 온도계는 열을 재지만 뜨거움을 느끼지 않는다. 감각적 신은 측정이 아니라 공명(resonance)이다.


② 정보적 신(神) — 생명 패턴의 조직

감각 정보를 내부 패턴으로 조직하는 층위다. 항상성(homeostasis), 자기조직성, 경락 조절, 장부 간 협력 — 이것은 생명 정보가 의미 있는 패턴을 구성하는 과정이다. 상처를 입으면 회복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작동하고, 체온이 흔들리면 복잡한 생체 시스템이 균형을 되찾는다.

AI 비교: AI 알고리즘도 정보를 패턴화한다. 그러나 AI의 패턴은 학습된 통계적 규칙이다. 생명의 패턴은 목적론적 방향성을 가진다. 항상성은 '원래의 나'라는 목표 상태를 향해 정보를 조직한다. AI의 패턴에는 그 목표 상태가 내재하지 않는다.


③ 의식적 신(神) — 인간적 자각의 차원

인간에게 특화된 고차원적 자각이다. 논리적 사고, 도덕적 판단, 의미의 탐색, 예술적 창조,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아는 능력. 이 층위에서 인간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다.

AI 비교: GPT는 철학적 텍스트를 생성한다. 그러나 GPT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지 않는다. 묻는 흉내를 낼 수 있다. 그러나 그 물음은 GPT 자신의 것이 아니다. 의식적 신은 자기 자신에게 물음을 던지는 주체를 전제한다. AI에게는 그 주체가 없다.

이 세 층위는 단절되어 있지 않다. 감각이 정보로 조직되고, 정보가 충분히 복잡해지면 의식이 창발한다. 동시에 의식적 판단이 정보 조직에 영향을 미치고, 정보 패턴이 감각의 민감도를 조정한다. 신(神)은 위계가 아니라 상호 침투하는 생명적 통일체다.


VI.  세 철학자의 증언 — 아리스토텔레스, 드라이쉬, 화이트헤드

흥미롭게도 동양의 신(神) 개념과 놀라울 만큼 유사한 통찰이 서양 철학에도 존재한다. 생명정기 실재론은 이 세 사상가를 동양의 신 개념과 적극적으로 대화시킨다.


아리스토텔레스 — 생명의 최종 목적을 아는 힘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명의 형상(form)이 단순한 물질 배열이 아니라고 보았다. 생명에는 목적인(final cause) — 그것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 가 내재한다. 도토리는 참나무가 되기 위해 싹을 틔운다. 인간의 눈은 보기 위해 발달한다. 이 내재적 목적을 인식하고 실현하는 능력이 신(神)의 역할과 정확히 겹친다.


드라이쉬 — 부분은 어떻게 전체를 아는가

8화에서 우리는 드라이쉬의 성게 실험을 다루었다. 반으로 잘린 배아가 완전한 성게로 자란다. 부분이 전체를 향해 스스로를 재조직한다. 드라이쉬는 이것을 엔텔레키(entelechy)라 불렀다. 생명체가 손상을 입어도 전체성을 회복하려는 비물질적 조직 능력인 생명의 조직 원리다.

성게 배아의 각 세포는 감각적 신(神)을 통해 전체 패턴을 감지하고, 정보적 신(神)을 통해 그 패턴을 복원하며, 이 과정 전체가 완전한 성게라는 목적 상태를 향해 조직된다. 이는 신(神)이 정기(精氣)의 흐름을 조정하여 생명의 전체성을 유지하는 기능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구조다.


화이트헤드 — 존재는 경험으로 세계를 파악한다

화이트헤드의 파악(prehension)은 신의 감각적 층위와, 그의 주관적 목적 (subjective aim)은 신의 정보적·의식적 층위와 대응한다. 그는 모든 현실적 존재가 자신이 실현해야 할 이상적 형태를 향해 나아간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이상의 원천으로 신성(divinity) 개념을 도입했다. 우주에 편만한 것은 시간, 공간, 신성 세 가지라는 것이다. 

화이트헤드의 신은 인격적 창조주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존재가 더 강렬한 경험, 더 풍요로운 합생(concrescence)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우주적 목적의 원천이다. 『주역』의 ‘음양불측지위신’과 근본적으로 같은 통찰이다. 두 문명이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실재를 가리키고 있다.


VII.  의식은 신(神)에서 창발한다 — 어려운 문제의 재 정식화

뉴욕대학교(NYU) 철학·신경과학 교수 데이비드 차머스(David Charlmers; 1966-  )는 1994년 '의식의 어려운 문제'를 제기했다. 왜 물리적 과정이 주관적 경험을 낳는가? 신경세포의 발화가 왜 '빨간색을 본다'는 느낌을 만드는가? 이 물음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답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한국계 미국인 물리학자·신경과학자 세바스찬 승(Sebastian Seung; 1966-  )은 2010년 TED 강연 "I Am My Connectome"에서 인간의 본질이 바로 커넥톰 (connectome) 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뇌 속 뉴런들 사이의 연결 전체를 지도로 그린 것이 커넥톰인데, 게놈(genome)이 DNA 지도이듯, 커넥톰은 뇌의 배선도인 셈이다. 승의 핵심 주장은 "우리는 우리의 커넥톰이다" — 즉 기억, 경험, 개성이 모두 뉴런 간 연결 구조 속에 저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생명정기 실재론은 이 물음의 형태 자체가 잘못 설정되었다고 본다. 물질에서 출발해서 어떻게 의식이 나오는지를 묻기 때문에 어렵다. 뇌의 배선 구조가 아무리 정밀하게 지도화되어도, 그 배선 위를 흐르는 정기(精氣)의 목적론적 방향성과 신(神)의 경험 구조는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경험에서 출발해서 어떻게 의식이 발달하는지를 물으면, 문제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의식은 신(神)의 정기 작용 중 인간에게 특화된 고차적 형태다.의식은 정·기·신이 충분한 복잡성과 통합성을 갖출 때저절로 발생하는 창발 현상 emergent phenomenon)이다.


이 정의는 아래의 두 가지 환원론을 동시에 극복한다.


물리주의적 환원론 극복: 의식이 단순히 뇌의 신경화학적 반응의 부산물이 아님을 보인다. 의식은 정기신이라는 복잡한 생명 구조 전체에서 창발하는 것으로, 뇌만의 산물로 환원될 수 없다.

이원론적 환원론 극복: 의식이 물질과 완전히 별개인 독립적 실체(substance)가 아님을 보인다. 의식은 정·기·신의 유기적 상호작용에서 탄생하는 생명의 역동적 속성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의식 연구의 오랜 난제인 '어려운 문제(hard problem of consciousness)' — 왜 물질이 주관적 경험을 낳는가 — 는 다르게 재정식화된다. 문제는 '물질이 어떻게 의식을 낳는가'가 아니라, '정기신이라는 생명 구조가 어떤 복잡성에 도달했을 때 의식이 창발하는가'가 된다. 그리고 그 답은 이미 한의학과 동양철학의 수천 년 임상·철학 전통 속에 축적되어 있다.


VIII.  신(神)은 생명 패턴의 '최고 통합자'다

『황제내경』 여러 장에 흩어진 신에 대한 표현을 종합하면, 신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생명 전체의 조화로운 통합이다. 신은 세 가지 작용을 수행한다:

첫째, 상황을 감지한다. 신은 생명이 처한 전체 맥락을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둘째, 의미를 구성한다. 감지된 상황에 생명적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한다.

셋째, 목적에 맞게 조정한다. 정신·육체·감정·에너지·장부의 모든 과정을 목적 방향으로 통합한다.

서양에서는 이를 '고등 인지 기능(higher cognitive function)'이라 부르지만, 동양에서는 이를 신(神)의 작용이라 본다. 차이는 단순히 명명의 차이가 아니다. 서양의 고등 인지 기능은 주로 뇌피질의 작용으로 국한되지만, 동양의 신은 뇌를 포함한 장부·기혈·경락 전체의 통합적 조직 원리다.


"신(神)은 인간의 생명을 주재(主宰)한다. 눈에 신이 있으면 밝고, 신이 없으면 어둡다." — 『황제내경』 「소문·이정변기론」 


IX.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신명(神明)

생명정기 실재론은 정(精)에서 출발했다 — 물질적 기반, 생명의 저장고. 기(氣)를 거쳤다 — 에너지와 정보의 흐름, 생명의 동력. 그리고 마침내 신(神)에 도달했다 — 경험과 의식과 목적의 통합자, 생명의 빛.


이 세 층위는 각각 독립적이지 않다. 정·기·신은 끊임없는 순환 속에서 서로를 낳고, 지탱하고, 되살린다. 이 순환이 온전히 흐를 때 생명은 '신명난다'고 말한다. 신명(神明)이란 신(神)이 밝아진 상태 — 생명이 감각하고 경험하고 통합하고 나아가는 능력이 최고도로 살아있는 상태다.


한의학은 신이 살아있는 상태를 눈으로 확인한다. 옛 의사들은 환자의 눈빛을 보았다. 눈빛이 살아있으면 '득신(得神)'이라 하여 회복을 기대했고, 눈빛이 꺼지면 '실신(失神)'이라 하여 예후를 어둡게 보았다. 그래서 건강이 최악 상태에 이르면 기절(氣絶)하고, 실신하기까지 한다. 


우리는 흔히 '활기차다', '눈빛이 살아있다', '기운이 넘친다'고 말한다. 이 표현들은 모두 정기신의 언어다. 동양의 선인들은 이를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이 글을 읽으며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하고, 공명하고 있다면 — 그것이 바로 신(神)의 작용이다. 당신은 이미 생명의 최고 통합자를 경험하고 있다.


"득신자생(得神者生), 실신자사(失神者死) — 신을 얻는 자는 살고, 신을 잃는 자는 죽는다." — 황제내경(黃帝內經)


이것이 생명정기 실재론의 핵심이다. 그리고 이것이, 동양철학이 수천 년에 걸쳐 인류에게 전하고자 했던 가장 깊은 메시지다.


AI는 신명날 수 없다. AI는 정보를 처리하지만 생명을 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살아있음의 질 — 얼마나 온전히 경험하고, 감각하고, 연결되어 있는가 — 이 바로 신(神)의 충만함이다.


이 시리즈가 1화부터 9화까지 걸어온 긴 여정은 결국 하나의 물음으로 수렴한다. 프랑켄슈타인이 번개로 창조하려 했던 것, 인공지능이 반도체 위에서 구현하려는 것 — 그것은 신(神)이다. 그리고 신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신은 정기(精氣)가 충만한 생명이 세계와 온전히 만날 때 저절로 피어나는 것이다.


나가며: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되돌려준 질문

프랑켄슈타인은 공상과학 소설의 주인공이니 그렇다 치고, 우리가 매일 접하는 인공지능의 현존에는 역설이 있다. 인공지능이 발달할수록, 우리는 오히려 생명의 신비 앞에 더 깊이 서게 된다.

AI가 인간의 모든 지식을 학습하고, 인간보다 빠르게 계산하고, 인간보다 정확하게 패턴을 인식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이란 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올리는 AI는 무고한 180명의 해맑은 어린 소녀들의 죽음 앞에서 울지 않는다. 이름을 잊은 할머니처럼 손녀 앞에서 무언가가 밀려오지 않는다. 씨앗처럼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나무를 향해 자라지 않는다.

그 차이의 이름이 신(神)이다.


생명정기 실재론은 인공지능의 등장을 위기로 보지 않는다. 그것을 거울로 본다. AI라는 정교한 거울이 우리 앞에 놓였다. 그 거울 속에 비치지 않는 것 — 그것이 바로 생명의 본질이다. 경험, 감응, 목적, 의식, 그리고 신명.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이라는 인간의 선한 본능이 AI에게 비추어 지도록 인공지능 헌장을 만들어야 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번개로 생명을 만들려 했다. 우리 시대는 반도체로 지능을 만들었다. 그러나 지능과 생명은 다르다. 지능은 만들 수 있다. 생명은 오직 정기(精氣)의 충만한 흐름 속에서, 신(神)이 밝아질 때,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신은 인자(仁)에 드러나고 용(用)을 감추어 만물을 고동(鼓動)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 주역(周易) 계사전


우리가 지금 이 글을 읽으며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하고, 공명하고 있다면 — 그것이 신의 작용이다. 당신은 이미 AI가 결코 닿을 수 없는 층위에 존재하고 있다.


[본 시리즈 이전 글]

제1화: 생명은 왜 물질로 설명될 수 없는가  |  제2화: 아리스토텔레스, 엔텔레키, 그리고 생명의 목적성  |  제3화: 한스 드라이쉬와 생기론의 부활  |  제4화: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과 생명의 창조성  |  제5화: 정·기·신 삼분법의 현대적 재구성  |  제6화: 경락·장부·기혈은 어떻게 생명 정보장으로 작동하는가  |  제7화: 생명은 어떻게 정기로부터 탄생하는가  |  제8화: 기적 목적성(Qi-Teleology)의 본질


0
유니세프
국민 신문고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