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물이 소생하는 4월, 들판은 푸른빛을 머금고 봄바람은 더없이 온화합니다. 청명(淸明)은 죽은 이들의 안식처를 돌보며 끊어지지 않는 세대의 흐름 속에서 나의 뿌리를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대자연이 매년 어김없이 봄을 피워내듯, 가족의 유대와 생명의 사슬 역시 시들지 않고 영원히 이어진다는 벅찬 경건함이 이 절기에는 깃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눈부신 봄날의 생명력 한가운데서, 북송의 시인 소동파(蘇東坡)는 동쪽 난간에 눈처럼 하얗게 피어난 배꽃을 보며 서글픈 실존의 물음을 던졌습니다.
梨花淡白柳深靑 : 배꽃은 담백하고 버들은 짙푸른데,
柳絮飛時花滿城 : 버들솜 흩날릴 때 온 성에 꽃이 가득하네.
惆悵東欄一株雪 : 서글퍼라, 동쪽 난간에 눈처럼 핀 배꽃 한 그루여,
人生看得幾淸明 : 내 인생에서 이 청명절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으랴.
천 년 전 시인의 탄식이 아직도 우리 가슴속에서 메아리치는 것은, 그것이 비단 소동파 한 사람의 독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봄이 올 때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같은 질문을 품어 왔습니다. 1953년,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봄날의 한국에서도 그랬습니다. 백설희의 목소리로 세상에 나온 노래 '봄날은 간다'는 바로 그 질문의 한국적 울림이었습니다.
연분홍 꽃잎이 바람에 흩어지듯,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먼 산 위로 봄볕이 흘러가듯—그 노래는 아름다움이란 반드시 가는 것이며, 가기에 더욱 아름답다는 진실을 애절한 가락 위에 실어 보냈습니다. 세상이 어떤 상처를 입어도 봄은 다시 오건만, 그 봄을 함께 맞이했던 얼굴들은 하나둘 기억 너머로 사라져 간다는 것. 그 서늘한 자각 앞에서 사람들은 노래로 울었습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소동파가 바라본 '동쪽 난간의 배꽃(東欄一株雪)'은 이 노래에서 봄바람에 흩날리는 '연분홍 치마'로, 물에 떠서 흘러가는 '새파란 풀잎'으로 모습을 바꿉니다. 꽃이 피고 지는 자연의 섭리 속에서 함께 웃고 울겠다던 '알뜰한 맹세'도, 별빛 아래 나누었던 '실없는 기약'도 결국 무심하게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는 속절없이 바래집니다.
눈부시게 푸르렀던 '열아홉 시절'이 어느덧 인생의 굽이를 돌아 '황혼 속에 슬퍼지는' 때에 이르면, 우리는 소동파가 탄식했던 "인생간득 기청명(내게 남은 청명이 과연 몇 번이나 될 것인가)"의 깊은 뜻을 뼈저리게 이해하게 됩니다. 산제비가 넘나들고 뜬구름이 흘러가는 변함없는 대자연의 풍경 속에서, 유독 사람의 청춘과 생명만이 이리도 짧게 머물다 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슴을 울리는 깊은 대비(對比)를 마주하게 됩니다. 청명절의 전통이 세대를 이어가는 '영속성'을 노래한다면, 소동파의 시와 저 봄날의 노래는 한 개인의 삶이 가진 '유한함'을 꿰뚫어 봅니다.
자연의 봄은 매년 어김없이 찾아오고, 조상을 기리는 향불은 후손들을 통해 영원히 타오르겠지만, 정작 그 향불을 피워 올리고 흩날리는 버들솜을 바라보는 '나'의 생(生)은 덧없이 흘러갑니다. 눈처럼 흩날리며 떨어지는 배꽃의 아름다움 속에서 시인은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내게 남은 청명이 과연 몇 번이나 될 것인가"라는 실존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 물음은 천 년을 건너, 전쟁 직후 폐허 위에서 봄을 맞이하던 이 땅 사람들의 가슴에도,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무게로 내려앉습니다.
이 두 가지 시선—끊어지지 않는 세대의 흐름과 덧없이 짧은 개인의 생애—이 교차할 때, 청명절이 주는 감회는 더욱 깊고 먹먹해집니다.
우리가 앞서 간 이들의 묘를 정성스레 돌보는 것은 그들의 부재를 슬퍼하기 위함만은 아닙니다. "인생간득 기청명(人生看得幾淸明)", 즉 우리에게 허락된 청명의 날들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나를 있게 한 과거의 인연들에 깊이 감사하는 것입니다. 봄날은 갑니다—소동파가 그러했듯, 백설희의 노래가 그러했듯,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우리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봄바람이 그러하듯. 유한한 삶이기에, 지금 내 곁에 불어오는 온화한 봄바람과 피어나는 꽃망울이 그토록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입니다.
슬픔과 아름다움은 본디 한 뿌리에서 나옵니다. 배꽃이 하얗게 피어나는 것은 곧 져야 하기 때문이고, 봄날이 그리운 것은 그것이 이미 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묘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 산 아래로 펼쳐지는 연초록 들판을 바라볼 때의 그 말할 수 없는 충만함은—슬픔과 감사가 구분되지 않은 채 하나로 뭉쳐진—그 자체가 삶이라는 경이(驚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