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 북부의 여러 지역에서는 인광석 매장지가 존재하는데 인광의 해당 시기는 후캄브리아기와 선오르도비스기 경계면에 걸쳐있다. 이와 같은 인광석이 에스토니아 각지에서 발견되는데 1950년 소련이 에스토니아를 장악했을 당시 이 인광석 산지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인광석(燐鑛石, Posphate rock)은 인회석(Apatite)을 함유하는 암석으로 생화학 기원의 퇴적암으로 알려져 있다. 인회석은 화성암의 기원으로 맥상으로 나타나며, 비금속 광물이다. 인광석은 유기물이 퇴적되어 나타나는 2차 광상으로 인(P2O5)을 18%∼40% 함유하고 있다. 인회석과 인광석은 인의 함량에 따라 광물 가치가 결정되며 주로 비료 원료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 밖에 인회석은 인산제조, 의약품, 반도체, 세라믹, 실크, 섬유, 방충제, 설탕 정련, 폭약 등에도 사용되고 있기에 소련 같이 재래식 공업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들에게 있어 꼭 필요한 광물이기도 하다. 인의 순도가 낮은 경우에는 품위를 높여주는 선광 작업을 거쳐 사용한다. 인산이나 비료용으로 사용하는 인광석과 인회석은 인이 30%이상 함유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에스토니아의 인산염암(Phosphorite) 매장지 분포 지도와 에스토니아 인산염암 연구의 선구자인 타르투 대학교의 카를 에른스트 슈미트(Carl Ernst Heinrich Schmidt) 교수의 초상화, 출처 : Estonian phosphorite deposits.svg
에스토니아 래네비루 주의 많은 영역에 걸쳐 있는 라크베레 인광석 매장지는 유럽에서 가장 큰 인광석 매장지로 알려져 있다. 에스토니아가 현재 대러 제재에서 러시아의 에너지 위협에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비료 원료를 품고 있는 인광석 때문이다. 유럽에서 가장 큰 매장지이기에 인광석을 유럽에 팔아 상당한 양의 무역의 이득을 보고 있기 때문인데 가스나 석유 자원 못지 않게 세계 식량을 책임지는 비료의 원료 역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인광석 채굴은 1924년 마르두 근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940년에는 대규모 인광 광산이 개업하여, 1991년까지 영업하였다. 그러나 인광석은 인의 함량이 30% 이하인 저급 품목도 많이 나와 문제가 된 바 있으며 인광석 채굴과 함께 바로 생산되는 비료 공장과 함께 에스토니아 북부 지역의 환경이 파괴되는 원인이 되었다. 현재 에스토니아의 철광석 광산은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채굴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지만 인광석은 현재에도 EU에 수출하기 위해 현재도 계속 채굴 중에 있다.
소련 정부는 1970년대 초반부터 에스토니아의 인광석 채굴에 대해 막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정부의 초기 제안은 라크베레 북쪽의 톨세 광산에서 채굴을 시작하는 것으로 시작했으나 1980년대에는 소련 경제가 매우 어려워자자 더 나은 수익성을 확충해야 한다는 이유로 라크베레 광산으로 계획을 변경하게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광산 개발 계획은 일반인에게 거의 공개되지 않았으나, 광산 개발 계획에 참가했던 에스토니아의 과학자들은 처음부터 개발을 반대하였다. 1987년에 소련 정부는 에스토니아 동부 래네-비루 주 지역에 매장된 인광석을 채굴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에스토니아의 과학자들은 인광석 채굴이 주변 환경에 큰 위해를 끼칠 것이라면서 소련 정부의 계획에 강하게 반대했다. 게다가 요즘처럼 첨단 과학과 기술이 발달된 것도 아니고 재래식 발굴에 의존하고 있던 당시 소련의 기술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았다. 에스토니아는 국토 전체가 빙하침식에 의한 평야 지대에다 북부 핀란드만 해안 지대는 바다보다 육지가 낮은 저지대가 많았다.
라크베레 지역은 인광석을 채굴하면 주의 대부분 지역이 핀란드만의 바닷물에 잠길 위험에 있었다. 동부 래네-비루 주 지역의 경우, 전체 국토의 3%에 해당하는 삼림이 있었고 크고 작은 호수 350여 개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땅이 침식되어 늪지대처럼 변할 가능성이 높아 일명 "죽음의 땅"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소련 정부는 이와 같은 견해들을 무시하고 비밀리에 채굴 계획을 추진하게 된다. 이는 2년 뒤,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건과 같은 인재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이라 매우 위험했다. 이와 같은 인광석 채굴 계획은 에스토니아의 ETV 방송국을 통해 1987년 2월 24일에 공개되어 대대적으로 폭로되었다. 이 때 이 사건을 폭로하여 공론화 시킨 인물이 후일 에스토니아 초대 대통령이 되는 렌나르트 메리(Lennart Meri, 1929~2006)이다. 2월 24일은 대개 인광석 전쟁의 시작일로 여겨지며 현재에도 에스토니아 독립기념일로 제정되고 있다.
이와 같이 북부 에스토니아에 광산을 개발하려고 하는 소련의 계획이 에스토니아 전국에 공개되었다. 에스토니아 공산당에서는 광산 개발이 에스토니아 인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었으나, 이미 중앙 정부에서는 러시아인을 보내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확정한 이후였다. 사건이 밝혀진 후 에스토니아에서 현지의 많은 언론인들도 반대 의사를 명백히 밝혔고 광장에서 여러 시위가 열리면서 개발을 강력히 반대했다. 이어 에스토니아 시민 포럼에 의해 새로운 광산 개발을 반대하는 청원서가 발표되었다. 광산 개발에 관한 논의는 1987년 봄에 대대적으로 이슈가 되었다. 1987년 4월 타르투 대학교의 학생들은 대학교 본관에서 회의를 거쳤고, 전원 동의로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지도층을 비난하였다. 노동절 집회에서 학생들은 인광석 채굴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쳤고, 인광석 개발에 반대한다는 말이 적혀 있는 노란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이 티셔츠는 집회 이후 대대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5월 8일에는 광산 개발을 풍자하는 만화가 출판되었다. 이 만화에서는 한 농부가 밭을 갈면서 에스토니아 영토 모양으로 된 비료를 캐고 있다. 이후 소련에서 이를 탄압하기 위해 군을 파견하려고 했지만 군 동원에 대한 반대 의견이 이어짐에 따라 1987년 9월 소련 정부에서는 광산 개발 계획을 철회하게 된다. 결국 9월에 소련 정부는 인광석 채굴 계획을 9월에 철회했다. 그리고 10월에 소련 정부는 공식적으로 인광석 채굴 계획을 철폐를 선언하고 러시아의 광산 기술자들을 에스토니아에서 철수시켰다. 인광석 채굴에 대해 이후에도 계속 언급되었지만 대개 1988년에 채굴에 대한 논의가 끝난 것으로 여겨진다. 에스토니아 시민들이 승리한 이 시위를 인광석 전쟁(Phosphorite War)이라 불려진다. 당시 인광석 전쟁은 그저 일개의 환경 운동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를 계기로 에스토니아 인들은 인광석 전쟁과 같은 방식으로, 한 때는 꿈조차 꾸지 못했던 '독립'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에스토니아의 독립 후, 인광석 전쟁과 관련하여 반러감정은 현재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