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고 에리히 폰 만슈타인(Erich von Manstein)이 입안했던 낫질 작전이 대성공하면서 서부 전선의 연합군들은 독일군에게 포위당해 패배하며 됭케르크 철수작전을 통해 영국으로 철수했다. 결국 프랑스는 단 6주 만에 독일에 항복하였고, 나치 독일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다. 이후 1941년에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여 발발한 대조국전쟁이 시작된 이후 소련의 서기장인 스탈린은 독일군의 전력을 분산시켜 소련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줄곧 서유럽에 제2 전선 형성을 요구하며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연합군은 이에 호응해 1942년에 이미 서부전선을 재구축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나, 처칠의 반대로 인해 미뤄졌다. 그 이유는 소련을 혐오했기 때문인데 대신 이미 영국군이 주둔하고 있던 지중해를 통해 공세를 펼치기로 했다.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의 오마하 해변(Omaha Beach) 상륙전,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1943년 중순, 연합군은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의 시칠리아까지 점령하며 독일-이탈리아군을 지중해에서 축출하기 시작했으며 같은 해 9월에는 마침내 이탈리아 본토에 상륙하여 이탈리아군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 대조국전쟁이 진행 중이던 동부전선에서는 소련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결정적 승리를 하고 하리코프 공방전, 쿠르스크 전투 등 승전하며 나치 독일에 대한 공세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전황이 바뀌게 되면서 동쪽 전선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나치 독일이 서부 전선은 지킬 수 있는 병력만 남기면 된다 판단했다. 이에 따라 병력의 여유분을 동부전선으로 옮기면서 서부전선이 약해지는 효과를 가져왔고 소련 측도 서방 측 연합군을 향해 빨리 2번째 전선을 만들어달라며 독촉하고 있었으니 연합군은 프랑스를 탈환할 시기라며 프랑스 해안 상륙 작전을 검토했다.
앞서 위력 정찰에 불과했던 디에프 상륙 작전에서의 실패를 복기하며 철저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4개의 상륙 지점 후보가 뽑혔으나 여러 지리적 여건들을 따져보니 최종적으로 낙점된 것은 노르망디였다. 연합군은 여러 기만술을 펼쳤고 여기에 속은 독일군은 4개의 상륙 후보 중 파드칼레가 연합군이 상륙하기 가장 유력한 곳이라 여겨 매우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해두었으나, 혹시몰라 에르빈 롬멜을 노르망디 방면 수비 사령관으로 임명해 노르망디에서도 칼레만큼은 아니었지만 기뢰와 지뢰, 상륙정의 접근을 막는 철근 등 유효한 방어선들이 존재했다. 아이젠하워와 버나드 로 몽고메리의 지휘 하에 연합군은 오마하와 유타, 골드와 소드, 주노 해변으로 상륙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독일군에 대한 수많은 폭격이 수반되었다.
물론 작전 자체는 성공했으나 오마하 해변에서 극심한 피해가 발생했으며 때문에 이후 여러 매체와 연구에서도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다룰 때 가장 인지도 높게 인용 되고 있다. 노르망디 상륙은 빠르게 상륙 거점을 확보해야 했던 만큼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상륙작전이었다. 약 160,000명의 병력이 작전 당일 영국 해협을 건넜고 이를 위해 총 6,939대의 함정이 동원되었다. 이 노르망디 상륙 전투에서의 승리는 1940년 이후 나치 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해방의 시작점이 되었고 제2 전선을 구축했으며, 나아가 이후 서부 전선에서의 연합군 승리로 인해 동부 전선의 스탈린그라드-쿠르스크 전투처럼 나치 독일의 최종적인 패망에 크게 기여한 전투로 평가되고 있다.
오늘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한지 82주년 째 된다. 이날 기념식은 러시아가 올해에도 불참한 가운데 미국에서 피트 헤그세스가 방문했다. 그런데 프랑스 칼바도스 주 랑그룬쉬르메르의 시민단체 '랑그룬 앙 코뮌'은 헤그세스 장관의 방문을 절대적으로 반대했다. 그들은 민주주의, 인권, 평화에 반하는 가치를 조장하고 있다며 이는 그의 수많은 반유럽적인 발언에서 드러난다고 비판하면서 프랑스의 명예를 위해 헤그세스의 방문은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헤그세스는 프랑스에 입국하여 1944년의 역사적인 승리는 유능하고 헌신적인 동맹국 간의 부담하여 분담하는 토대 위에 세워졌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에 의존하지 말고 나토는 스스로 책임져야하며 더이상 병력과 무기를 공짜로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방위비 분담 요구와 함께 이란과의 전쟁에서 유럽 동맹국들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점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이 말은 미국이 나토를 버린다는 의미다. 미국이 없는 나토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아무튼 러시아 입장에서는 기분 좋은 소식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