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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바키아의 친러 행보, EU의 눈엣가시가 된 로베르트 피초 정권이 EU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 알렉세이정 칼럼리스트
  • 등록 2026-06-08 19:11:29

슬로바키아는 체코슬로바키아 시절에 이미 소련과 수교한 상태였다. 하지만 나치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고 괴뢰국을 건국했다. 슬로바키아 괴뢰 정권은 대조국 전쟁에 참전했고, 약 4만 5천 명의 군대를 보내 독일의 소련 침공에 일조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패전하면서 체코슬로바키아는 소련에 점령되었고 소련의 위성국이 되어 많은 간섭을 받았다. 이로 인해 체코슬로바키아 내에서 반소 감정이 발생했다. 1970년대에는 "프라하의 봄"이 발생했지만, 소련군은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1980년대에 동구권 내에서 민주화 운동이 발생했다. 체코슬로바키아도 1980년대부터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 1990년대 초에 소련이 해체되고 체코슬로바키아도 민주화 되었다.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를 이끌었던 벨벳 혁명을 계기로 하여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 독립하기로 합의했으며, 1993년 1월 1일에 평화롭게 분리 독립함으로써 슬로바키아는 독립된 민족 국가로서 존재할수 있게 되었다.

Russian President Vladimir Putin and Slovak Prime Minister Robert Fico pose for a picture during a meeting at Diaoyutai State Guesthouse in Beijing, China September 2, 2025. Sputnik/Alexander Kazakov/Pool via REUTERS Purchase Licensing Rights


슬로바키아의 블라디미르 메치아르 초대 총리 정권은 권위적인 통치 스타일과 더불어 정실인사와 높은 부정부패, 폐쇄적인 경제정책과 러시아 편향적 외교정책이 이어졌고 소수민족 억압정책까지 겹치게 되자 EU 및 나토에 가입하지 못하고 서구 사회에서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경제적으로도 시장 경제로의 전환에 따른 어려움으로 약 18%의 높은 실업률을 기록하게 된다. 이후 슬로바키아는 1990년대에 반러정책을 펼치면서 EU, 나토에 가입하는 등 러시아를 견제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슬로바키아는 러시아와 여전히 가까웠기 때문에 경제와 외교 관계 역시 중시하고 있는 형편이다. 1998년 총선에서 당선된 미쿨라시 쥬린다(Mikulasi Dzurinda) 총리는 친서방주의적인 정책을 펼치며 EU 및 나토 가입에 성공하였고 적극적인 경제 자유화 및 개방 정책을 추구하여 외국인에 대한 투자 유치에 성공함으로써 슬로바키아 경제 발전의 기반을 구축하였다. 


그러나 미쿨라시 쥬린다 총리는 연정 내 분열, 급진적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감 뭉쳐 2006년 6월 조기 총선에서 패배하였고슬로바키아 사회민주당의 로베르트 피초 총리가 민주 슬로바키아 운동 및 슬로바키아 국민당과 연정을 구성하여 집권에 성공하게 된다. 당시 피초 총리는 국회 의석수의 절대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노동법, 의료보험법, 연금법 등 소위 사회보장 3법 개정에 성공하여 저소득 서민층으로부터 호응을 얻었으며, 쉥겐존 및 유로존 가입 등 EU로의 통합을 강화하는 대외적 성과를 거두며 인기가 높아지게 된다. 그러나 정권 관련 각종 부패 스캔들이 끊이지 지속적으로 발생하여 슬로바키아 국민들의 실망감을 안겨 주었으며 2008년에는 반민주적인 언론법 개정으로 대언론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었다. 그리고 연정 파트너인 슬로바키아 국민당 당수의 범슬라브 중심의 극우주의적인 발언으로 인해 헝가리와의 관계가 악화되는 등의 많은 문제점을 양산하게 된다. 


이로써 피초 총리는 언론, 사법부, NGO, 소수민족들에 대해 비우호적인 태도와 정책을 견지하면서 극우적인 활동을 이어나가게 된다. 이는 옛 공산권 국가들의 사민당이 늘 그러한 것과 같이 각종 공세를 피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러나 피초가 이끄는 슬로바키아의 사민당은 전통적인 사회 민주주의, 중도 좌파 정당들과는 상당히 괴리감이 있는 정책들을 펼치고 있다. 특히 반(反) 난민, 반(反) 동성애 등의 정책들은 오히려 극우 정당들이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중도좌파 정당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아니라는 점을 보면 뭔가 다른 극우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극우 정당인 국민당과의 연정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피초 자체가 민좌당 시절이던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유럽 인권 재판소의 변호사를 지낸 적이 있었을 당시, 극우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범슬라브주의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슬로바키아는 과거 공산 국가였는데, 공산당들은 초기에는 자본주의와 보수주의에 반대하며 집권했지만, 이후 국가자본주의·극우로 변절되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피초의 극우 정치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2018년 2월 얀 쿠치악이라는 기자가 피초의 부패를 폭로함으로써 논란이 일자 얀 쿠치악은 얼마 못 가 여자친구와 함께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이에 피초가 개입되었다는 강한 의혹을 받았고  피초와 사민당에 대한 여론은 부정적으로 흘러가자 같은 해 3월, 사임을 발표하고 후임총리로 부총리이자 사민당 당수이며 전 국회의장인 페테르 펠레그리니를 차기 총리로 내세웠다. 그러나 2019년 까지도 사민당의 당수가 되면서 직책은 유지하고 있었고 펠레그리니의 상왕(上王)으로 군림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왜냐하면 펠레그리니 정부는 부총리 및 내무, 문화, 보건, 법무장관 등 내각 5명을 교체하여 신내각을 구성하였으나, 대부분 피초 총리의 영향력 하에 있는 인물들로 구성하였으며 피초 총리의 정책과 사실상 동일한 정책 안들을 채택하였기 때문이다.


현재에도 슬로바키아는 피초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이다. 피초와 사민당의 장기집권에 질린 슬로바키아 시민들이 유럽의 경제위기가 본격화된 2009년 좌파 여성 총리인 이베타 라디초바를 당선시켰고 국가 재정 건전화를 위해 긴축재정 정책을 실시하면서 공공기관의 보수 삭감, 공공사업의 재평가를 통한 불필요한 사업 추진 취소 등을 통해 국가운영 비용을 대폭 절감하는 개혁정치를 했지만 결국 국가의 재정은 나아지지 못했고 2011년 10월 유로존 구제금융을 위한 유럽 재정 안정화 기구에 대해 연정 제2당인 자유연대당이 반대하자, 라디쵸바 총리는 같은 문제의 국회 승인을 정권에 대한 신임과 연계하는 모험을 시도하게 된다. 그러나 피초와 사민당의 집요한 정치적 술수에 의해 국회 승인이 부결되면서 결국 라디쵸바 연정은 붕괴하였고 슬로바키아 시민들은 라디쵸바와 슬로바키아 좌파들이 무능하다 판단하여 더 이상 그들을 재임시키지 않았다. 


라디쵸바 총리의 재임 기간 동안 슬로바키아 민주주의가 크게 향상되어, 언론 민주화 및 정보 자유 접근법을 통한 정보통제 해제, 사법부 개혁 및 부패척결, 헝가리인과 집시에 대한 차별 금지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사회적인 평가는 높았지만 경제적으로 무능했기 때문에 결국 피초와 사민당 정권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었고 여전히 이들의 정치적 영향을 강하게 받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비교적 친러 세력인 피초와 사민당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에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슬로바키아 사민당이 의회를 주도함에 따라 EU의 대러시아 제재 조치를 승인하고 나토 회원국으로 나토 주도의 해외 파병에 참여하면서 서유럽 나토 측에 끼어 실익을 계산했다. 그러나 슬로바키아의 경제적인 이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EU의 러시아 제재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표명하고 슬로바키아내 항구적 나토 군사기지 건설에 반대하면서 갑자기 러시아와 거리를 두지 않겠다는 스텐스를 취하게 된다. 결국 슬로바키아는 러시아와 더욱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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