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 칸국은 15세기 중반에 아불 하이르가 이끄는 우즈베크 족을 빠져나온 세력에 의하여 건국되었다. 우즈베크 칸국을 세운 샤이바니 칸과 1510년에 격돌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우즈베크 칸국의 후신인 남쪽의 부하라 칸국과 대립했으며, 북서쪽의 시비르 칸국, 서쪽의 노가이 칸국과 동쪽의 모굴리스탄 칸국을 상대로 대립했다. 모굴리스탄 칸국에 대하여는 우세하여 발하슈 호 일대인 서 모굴리스탄을 점령하였고 서쪽의 노가이 칸국과 아스트라한 칸국도 격파하여 투르키스탄의 패자가 되었으나 러시아 원정은 실패하였다.

카자흐 칸국의 판도, 출처 : Казахское ханство.png
17세기 이후로는 천산 산맥의 울루 주즈(Ұлы жүз)와 카자흐 스텝의 오르타 주즈(Орта жүз), 카스피 해 연안 사막 지역의 키시 주즈(Кіші жүз)의 세 개 부족으로 갈라졌으며, 이는 현대 카자흐스탄 사회와 행정구역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1716년 부터 카자흐 칸국의 대기근과 지배층의 내분등으로 인해서 러시아의 남진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카자흐의 일부는 러시아의 차르에게 내속할것을 요청하면서 보호를 요청했다. 뒤이어 1731년에는 키시 주즈와 오르타 주즈가 1734~37년에는 울루 주즈가 차르의 신하가 되겠다면서 차르에게 복속을 요청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지배는 가혹했고 이는 카자흐 지방에서의 잦은 반란으로 일어났다. 이에 러시아는 1820년대 이르러 오르타 주즈와 키시주즈의 칸을 폐지해버리고 부케이 주즈의 칸도 폐지하여 버린다. 이러한 러시아의 팽창에 반발하는 중앙아시아의 칸국들도 러시아 사단 등을 약탈하고 카자흐 인들을 후방에서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러시아는 히바 칸국을 응징하기 위해서 1839년 원정군을 보냈으나 표트르 대제 때와 같이 무참히 괴멸되었다. 그러나 카자흐에 대한 지배권을 공고히한 러시아는 중앙아시아를 장악하기 위해서 남진정책을 계속 추진하였다.
러시아 남진정책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사건은 1853년 7월 러시아의 페트로프스키가 시르다리야 중류의 조그만 성채인 악크 마스지드를 점령한 사건이었다. 이곳은 현재 카자흐스탄의 키질 오르다 지역인데 러시아는 코간드 칸국과 히바 칸국이 카자흐인들을 지원하여서 러시아에 적대적인 행동을 했다는것을 명분으로 내세워 남진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