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몽골에서 보낸 날들
  • 이종철 칼럼니스트
  • 등록 2026-06-10 20:30:04
[몽골에서 보낸 날들]

몽골에 도착한 지 정확히 2주를 하루 넘겼다. 내일이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2주라면 짧다고 하면 짧고 길다고 하면 길 수도 있다. 도착한 다음 날 후레대 포럼에서 학생들 상대로 강연을 하고, 내가 잊지 못하던 고 칭기스의 가족들을 만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번 몽골여행은 관광이라기 보다는 울란바타르의 지인들을 만나고, 이곳 대학 관계자들을 만나 보는데 1차적인 목적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본다고 하면 비교적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장차 이곳에서 북방 관련 지역학 연구소를 차릴 려고 한다면 이곳에서 활동하는 학자들과의 교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1박 2일이지만 오랜 만에 테렐지 국립 공원에서 보낸 시간도 의미가 있다. 몽골은 울란바타르만 벗어나면 한국에서 접하기 어려운 야생의 자연을 접할 수가 있어서 좋다. 문명의 시간을 벗어나 수천 수억 년 전의 중생대로 돌아가는 느낌마저 든다. 이제는 게르(Ger)가 많이 현대화 되어 있어서 여성들이 용변을 보기 어려워 하거나 샤워 하기 어렵다는 말도 옛말이다. 


울란바타르에서는 말이 통하지 않고, 차가 없어 불편하지만, 동시에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고, 도로에는 일반인들이 영업을 하는 택시들도 많다. 곳곳에 한인들이 운영하는 한식당들이 워낙 많아서 과거 처럼 양고기 특유의 냄새를 억지로 맡을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노래방 이상으로 이곳에는 Karaoke가 넘친다. 내가 있었던 5년 전에 처음 '이마트'가 개설되었는데, 지금은 동네 곳곳에 편의점 'CU'가 문을 열고 있어 생필품 구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티브를 틀면 아시아 권에서는 유일하게 한국 드라마들이 수시로 나오고 있으니까 문화적인 불편도 느끼기 어렵다. 이런 현상은 거의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이다. 다만 와이 파이 속도가 한국과는 많이 차이가 나고, 도로의 교통 체증이 워낙 심해서 인내심을 많이 요구하는 차이도 있다. 여름에는 겨울과 달리 매연에 대한 어려움이 없고, 본격 관광 시즌이 열리는 6월에서 8월까지 몽골의 강렬한 햇빛과 초원의 녹색빛은 수많은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몽골인들의 한국 문화에 대한 친화도는 다른 어떤 아시아권 사람들보다 높다. 티브를 켜면 수시로 한국 드라마가 더빙도 없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강한 문화적 친밀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수용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고려 시절 한국의 여인들이 무려 70만이나 몽골로 끌려간 탓인지 외형상으로도 비슷한 용모로 인해 한국인들 역시 몽골인에 대해 강한 친밀성을 느낀다. 역사적 문화적으로 공유를 하고 있는 부분도 많아서, 이런 것들을 기반으로 과거 국가 연합 이야기가 나온 것도 우연이 아니다. 몽골인들의 가장 큰 꿈 중 하나는 한국으로 관광을 가거나 일을 하러 가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대사관에서 비자 조건을 까다롭게 해서 비자를 발급 받는 일이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몽골인들이 3개월 짜리 관광 비자로 한국에 들어오는 순간 불법 체류로 변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 그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몽골인들은 한국 문화를 잘 이해하고 한국어를 잘하고, 대단히 일을 열심히 할만큼 순종적인 데다가 다른 아시아권의 어떤 민족들보다 체격과 힘이 좋다. 한국의 입장에서 이런 양질의 노동력이 유입되는 것을 막을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그런데 비자 조건을 까다롭게 만드는 이유는 한국 정부 보다는 몽골 정부가 요구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만약 한국-몽골 간에 무비자를 적용한다면 몽골의 젊은이들이 다 한국으로 빠져 나가기 때문에 정작 몽골에서는 일할 젊은이가 남아 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백 프로 동의할 수는 없어도 상당히 합리적인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만큼 몽골에서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기 힘들고, 한국에서 몇 년만 일을 해도 몽골로 돌아오면 집도 사고 차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몽골에서 한인이 세운 대학들이 고전한다는 이야기를 앞서 포스팅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의 재정적인 지원이 부족하고, 대학 내 언어의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선교와 교육이 뒤섞이는 바람에 교육과 연구의 전문성으르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재몽골 한인 교포가 많을 때는 5천명을 상회했지만 현재는 3천명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몽골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고 코로나 때문에 요식업에 진출해 있는 한인들이 타격을 많이 받골 있기 때문이다. 한인들이 진출해 있는 영역이 지나치게 서비스 업에 집중되어 있고, 몽골에 진출해 있는 한국 교회가 비공식적 통계에 따르면 무려 300개냐 될 정도로 많다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대부분 분명한 선교의 사명감을 갖고 온 사역자들이 많겠지만 개중에는 그만한 자격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 교회의 부적응자들이 와서 하는 경우도 많다. 몽골은 라마교 신자들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불교 국가인데, 자치 종교 충돌이 일어날 소지도 없지 않다. 특히나 "땅끝까지 선교하라"는 보수 교단의 공격적인 선교 방식은 얼마든지 그런 위험을 안고 있다. 그리고 교회 단위로 자선 행위를 반복하다 보니 이런 것이 몽골인들의 공짜 심리만 자극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들은 열심히 퍼줘도 효과가 없고, 몽골인들은 빈손으로 오면 오히려 화를 내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런 행위가 반복이 되다 보니 한인과 몽골인 사이에 불신이 깊어지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몽골에서의 기부와 후원 행위도 좀 더 체계적으로 진행해야 할 터인데, 이런 부분에 대한 통계나 컨트롤 센터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이제 하루만 있으면 몽골을 떠난다. 2주 넘게 있으면서 이곳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고, 좋은 추억도 쌓았다. 오래 전에 울란바타르에 왔을 때는 낯선 도시에 들어선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번에 올 때는 한국의 이웃 도시를 방문하는 느낌처럼 친근하기도 하고 새롭기도 하다. 이런 울란바타르에 새로운 거점을 확보할 수도 있고, 이곳의 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곳에 있다 보면 섬같은 한반도와 다르게 북방으로 이어지는 대륙의 시야와 전망을 가질 수가 있다. 이런 공간적 전망의 의미도 크다. 그리고 이곳은 한국보다 훨씬 시간이 느리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삶의 긴장은 적은 반면, 삶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물론 이곳도 시장 논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감수성이 높기 때문에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 보다는 여러가지 면에서 훨씬 부담이 적다. 내가 만난 여러 한인들이 비교적 고령층인 데도 불구히고 이곳에서 각자 자신의 잡(Job)을 갖고 일을 하면서 삶의 만족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경우들이 많다. 한국에서는 돈이 있어도 여유 시간을 활용하기 힘든 경우에 비하면 좋은 대안이 될 수가 있을 것이다. 


내일 내가 출국하는 비행기는 오전 8시 40분이다. 때문에 적어도 6시 전에 나가야 하는데, 그 일을 동대문 포차의 몽골인 매니저가 도와 준다. 입국할 때는 후레대의 권순구 교수가 도와 줬는데 출국할 때는 그동안 나를 많이 도와 주었던 안흥조 회장의 힘이 크다. 다들 고마운 사람들이다. 몸이 불편한 내가 불편 없이 울란바타르에서 2주가 넘게 지낼 수 있었던 힘이다. 오늘 낮에는 후레대의 신광철 박경희 부부 교수와 점심을 약속했고, 저녁에는 몽골 민족대의 정우진 교수와 한국에서 물류 사업을 하는 최대용 사장과 함께 동대문 포차에서 몽골의 마지막 밤 석별의 정을 나눈다. 공간의 차이가 의미 없어 지는 세상에서 이런 차이를 다시 실감한다. (2022.06.08)



0
유니세프
국민 신문고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