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홀게이트 지음/이 종철 옮김, 서광사, 2019년
[목차]
서문
부기
1. 맥락
사변논리와 칸트 비판
현상학의 역할
현상학, 내재성과 회의주의
현상학의 논리
2. 주제 개관
의식과 그 내재적 비판
의식의 경험
경험 대상
우리의 역할
현상학의 시작과 끝
3. 텍스트 읽기
의식
감각적 확실성
지각
힘과 오성
자기의식
욕망과 인정
주-노관계의 생사 투쟁
스토아주의, 회의주의 그리고 불행한 의식
이성
관찰하는 이성
행위하는 자기 의식적 이성
자신 속에서 자신을 통해 현실적인 개별성
정신
참다운 정신
자기 소외된 정신
자기 확신적 정신
종교
자연종교
예술종교
계시종교
절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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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수용과 영향>
머리말
이 책의 목적은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읽을 수 있는 안내를 제공하는 데 있다. 헤겔의 텍스트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철학적 연관성을 탐구하는 훌륭한 주석서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이 안내서는 특별히 텍스트 자체의 뒤틀리고 꼬여 있는 것을 학생들이 따라가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나의 원칙은 이렇다. 즉 현상학은 단일하고 연속적이며 논리적인 논증을 제시하지만, 그 세부적인 항목들은 어렵게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증은 때때로 끔찍할 정도로 얽혀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하지만 나는 논증을 가능한 한 분명하게 제시하기 위해 진력했다. 이 책의 도움으로 학생들이 스스로 그것을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기를 바란다.
현상학의 길이가 작지 않기 때문에, 헤겔의 논증의 각 단계 마다 상세한 설명을 제공한다는 것은 이 안내서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의식과 자기의식의 발전을 시작한 이 책의 처음 네 장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제시하기로 결정했다. 이 장들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처음 읽기 시작할 법한 장들이며, 또한 그것들은 감각적 확실성, 주인-노예 관계 그리고 불행한 의식에 관한 유명한 분석을 담고 있기도 하다. 나머지 이성, 정신, 종교 및 절대지에 관한 장들 역시 중요하고 매력적이지만 지면이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나의 희망은 학생들이 처음 네 장들에 대한 나의 설명으로부터 배워서 그들 스스로 헤겔을 읽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학생들은 5장에서 8장까지 놓친 부분들을 힘써 읽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안내서를 일관해서 나의 목적은 현상학의 논증이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으며, 함축적으로는 왜 그것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가를 해명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나는 헤겔의 사상에 대해 특별히 비판할 것을 고려하지는 않았으며, 드물게 예외는 있지만 헤겔에 관한 다른 책들의 해석에 대해 주석하지도 않았다. 이 점을 고려해, 머리말에서 나는 다른 많은 책들에 대해 감사를 표현하고 싶은데, 여러 해에 걸쳐 헤겔의 현상학을 보다 잘 이해하는 데 이 책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 책들 몇 가지의 리스트는 이 책 말미에 '더 읽어볼 책 안내'에서 제시했다.
헤겔의 견해로는 범주들에 대한 무비판적이거나 부적절한 접근은 그것들을 어떤 권위-그것이 과거 철학자들, 전통, 상식 혹은 형식 논리의 권이이건-에 입각해서 이해하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적절하게 비판적인 태도는 결코 권위에 입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유 (그리고 존재)에 관한 모든 전승된 가정들을 제쳐놓고 어떤 것도 당연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헤겔에게, 칸트를 본뜬 참으로 비판적인 모든 철학은 다음과 같은 명령의 지배를 받는다. 즉 모든 전제들이나 가정들은 우리가 학에로 진입하는 순간 똑같이 포기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학이란 -다시 말해 철학- '보편적인 의심, 즉 완전한 무전제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그리하여 논리학을 시작하면서 헤겔은 사유와 존재에 관한 이전의 모든 가정들을 유보하고, 근본적인 자유의 행위를 통해 그것들을 방기한다. 헤겔에게 근대는 비판의 시대일 뿐만 아니라 자유의-루소와 피히테와 프랑스 혁명의- 시대이기도 하다. 게다가 비판과 자유의 꼭 닮은 명령은 인간이 단순히 권위에 따라야 한다는 사상을 반대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철학에서의 완전한 무전제라는 비판적 요구는 그러므로 모든 것을 추상해서 그 자체의 순수한 추상, 사유의 단순성-순수하게 사유하고자 하는 의지의 결단(Entschluss) 속에서 파악하는 자유에 의해 충족'된다. (12) 따라서 이러한 추상 활동으로부터 귀결되는 사변 논리의 출발점은 어떤 규정적 전제들을 결여하고 있다. 스피노자가 실체와 속성과 양태에 관한 논쟁의 여지가 있는 정의들로부터 시작하는데 반해, 헤겔은 완전히 무규정적인 순수 '존재'의 사유로부터 시작한다. (13) 이 최초의 범주로부터 다른 모든 범주들이 도출되며, 그 과정에서 사변 논리는 어떤 특정한 것을 당연시하지 않고소 사유와 존재의 참다운 본성을 발견할 것이다. 그럼에도 순수 사유가 존재의 본성을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은 단순한 가정 (예를 들어 칸트가 거부했을 법한 가정)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이는 헤겔이 문제를 이해하는 바가 아니다.
헤겔의 견해로는, 사유와 인식에 관해 보증되지 않은 전제의 책임은 칸트의 반성적 오성에 있다. 현상학의 서문을 시작하면서, 헤겔은 이른바 철학에서의 '자연적 표상'(naturliche Vorstellung)에 주목한다. 이는 "우리가 철학의 고유한 주제를, 즉 참다운 것에 대한 현실적 인식을 다루기 전에,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인식에 대해서 이해해야만 한다. 이러한 이해는 절대자를 포착하기 위한 도구이거나 혹은 그것을 통해 절대자를 발견하는 바의 수단으로 간주된다.
헤겔은 이러한 생각을 품고 있는 자의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고 있지만, 그의 어투를 본다면 <순수이성비판>(1781, 2판, 1787)의 칸트를 연상하게 한다.
"이제 우리가 경험의 지반을 떠나는 순간, 조심스러운 탐구를 통해, 우리 스스로 그것이 언제 시작하는지를 사전에 규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가 지닌 어떤 지식을 활용하지 않고서도, 우리가 세우고자 하는 건축물의 기초를 확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 생각은 칸트의 (또한 로크의) 인식론에 깔린 생각, 말하자면 우리가 거기에 무엇이 있는가를 발견하려는 철학적 과업을 담당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의 인식 능력이 그 일에 적합하다고 확신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담는 일은 현명한 경고 혹은 납득할만은 하지만 '오류에 빠질지 모를 두려움'에 대한 증거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누가 사용도 하기 전에 자신의 도구를 검사받겠다고 하겠는가? 하지만 헤겔의 지적에 따르면, 사전에 검사가 필요한 것에 대한 망설임과 추론을 지지하면서 그처럼 '두려움이 어떤 것을 -사실상 상당 부분- 진리로 간주한다는 것이다.'(74/58). 따라서 칸트의 철학적 조심은 실제로는 그것이 주장하는 것처럼 조심스럽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것이 당연시하고 있는 가정들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말해서, 그것은 인식이 하나의 '도구' 혹은 '매체'이다는 것, 우리 자신과 이러한 인식 간에 하나의 차이가 있다는 것, 결과적으로 우리 스스로 그러한 인식을 검토할 수 있고, 한계를 정할 수 있다는 것을 당연시한다. 여기서 헤겔이 자신의 대안적 관점에 기초해서 칸트적인 인식 개념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아님에 주목하자. 다만 그는 '사전 검사' 없이, 말하자면 무비판적으로 그것이 가정되어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더는 우리가 인식이 하나의 도구이다는 생각으로 곤란에 빠질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그것을 '우발적이고 자의적인 것'(76/59)으로 거부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만일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이 사유는 독립적으로 사물 자체의 참다운 본성을 알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칸트의 인식론적 가정들에 대한 헤겔의 반대 역시 그러한 칸트의 결론에 대한 반대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헤겔이 인식에 관한 칸트의 가정들을 보증되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는 자유로운 행위는 우리에게 사유가 독립적으로 존재의 본성을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설령 그것이 사유나 존재에 관한 어떤 확정된 개념을 갖게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그러므로 헤겔에게 사유는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그 자체는 하나의 가정이 아니지만, 칸트적인 반성의 가정들을 자유롭고 비판적으로 유보한 불가피한 결과이다. 따라서 헤겔은 그 자신의 사변적이고 존재론적인 논리가 칸트의 반성보다 덜 당연시되고 보다 비판적이라고 이해한다.
현상학의 역할
사변 논리로 들어가는 지름길은 사유와 존재에 관해 전승된 모든 가정들을 자유롭게 유보하거나, 혹은 헤겔이 말하는 '사유 그 자체를 고려'하려는 단순한 '결단'을 통하는 것이다.(16) 이는 칸트의 사유의 전제가 참으로 비판적임을 충족시켜 준다. 하지만 헤겔은 일상적이고 자연적인 의식의 눈에서 볼 때 자유롭고 비판적이라는 것이 사변 논리에 신뢰를 부여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다. 헤겔에게, 일상적이고 비철학적인 개인은 비판적 정신의 정반대이다. 그런 개인은 오히려 '자신에 대한 직접적 확신'(26/20)으로 특징지워진다. 일상적 개인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있는 그대로 나타나고, 그 세계에 대한 그들의 지각과 이해는 믿을만하다는 확신 속에 살아간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과 세계에 관한 그들의 가장 기본적인 가정들을 비판하거나 의문시해야 할 명령 아래 그들이 서 있다고 간주하지 않는다.
자연적 의식 역시 사변 논리의 출발점을 이루는 생각, 말하자면 사유와 존재 사이에 직접적 동일성이 있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그러한 의식은 세계가 인식가능하다는 견해를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또한 그 의식은 존재하는 것과 그것에 대한 우리의 앎 사이에 명백한 구별 혹은 '대립'(Gegensatz)이 있다고 주장한다. [6] 헤겔이 적고 있는 것처럼, 의식의 관점은 '대상들을 자신과의 대립 속에서 인식하고, 자신을 대상들과의 대립 속에서 인식'(26/20)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식에게는, 철학이 하듯, 존재의 본성이 순수 사유의 테두리 안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비록 인식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세계는 단순히 '이곳에'가 아니라 '저곳에' 있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자연적 의식은 이러한 측면에서 사변 논리의 관점을 그들의 것과 정 '반대'로 간주한다. 그들이 철학에 들어올 것을 요청받을 때 그들은 위반된다고 느끼는 것이다.
사변 논리는 자연적 의식이 인식된 대상과 그것을 인식하는 행위가 명백히 구별된다는 근거없는 가정에 기초해 있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자연적 의식도 그러한 논리가 사유와 존재 사이에 하나의 '동일성'이 있다는 단순한 가정에 기초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각각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이 옳다고 확신시킨다. 하지만 헤겔은 '한 쪽의 단순한 확신은 다른 쪽 만큼이나 가치 있다'(76/60) 고 지적한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관점에서 각 입장이 똑 같이 타당함을 인정한다. 이는 한 사상가의 주목할 만한 인정인데, 많은 사람들이 판단하기에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철학이 다른 모든 인간적 관심보다 우월하다고 가정한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헤겔은 철학 혹은 '학문'은 일상적인 개인이 쉽사리 철학에 굴복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학문'이 개인에게 자신의 수준으로 올라올 것을 기대한다면, '개인은 학문에게 적어도 이러한 관점에 오를 수 있도록 그에게 사다리를 제공해주고, 그 자신 안에 이러한 관점이 있음을 보여줄 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26/20) 헤겔의 현상학이 그러한 사다리가 될 것이다. 현상학의 역할은 그르므로 헤겔 자신의 철학을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의식을 그 자신의 확신으로부터 철학의 시각으로 인도하고, 그리하여 그러한 철학을 의식의 눈에 정당화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공화국의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헤겔은 세계에 대한 그 자신의 이해를 제출하는데만이 아니라, 비철학자를 철학의 길로 교육시키는데도 관심있다. 헤겔은 이러한 교육의 과제를 떠맡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할 때 그는 철학적 시각의 타당성을 전제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다. 만일 그가 그렇게 한다면, 그는 자신의 관점에서 시작하여 왜 철학적 시각이 정당화되는 지가 보여져야 한다는 자연적 의식의 권리를 존중하는데 실패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는 현상학의 성격을 규정하게 될 철학에 특별한 제한을 둔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상학이 [7] 의식의 확실들에 대한 전적으로 내재적인 검토가 될 것이기 때문인데, 여기서 철학자는 의식에 반대되는 물음을 구걸하는 것을 피하고 있다.
현상학, 내재성과 회의주의
현상학의 서설에서, 헤겔은 철학자가 비철학적 의식을 비판하고, 그 의식에게 철학의 장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두 가지 방식을 간단하게 고찰하고 있다. 첫번째는 직접적인 접근이다. 철학자는 단순히 세계에 대한 일상적 견해는 잘못되었으며, 철학만이 진리를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철학자들이 그들의 반대자들을 논파할 때 사용하는 평균적인 방식이다. 철학자들은 그들이 옳고, 반대자들은 틀렸다고 논의하거나 (혹은 단언한다.) 두번째 접근은 보다 간접적이다. 철학자는 세계에 대한 일상적 견해를 곧 바로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일상적 의식의 견해가 좀 더 낫다고 넌지시 호소한다.'(76/60) 다시 말해, 철학자는 일상적 견해 속에 담겨 있지만 그 의식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이 철학이 개진하고자 하는 바로 그 이해임을 천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상학에서, 헤겔은 일상적이고 자연적인 의식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이나 간접적인 접근 모두가 부적합하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