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글이미지
성서속의 소금에 관한 언급을 우리는 마태 복음 5장 13절속에서도 확인 할 수가 있는데, 에수그리스도의 언급속에서 당시 유대지역이나 팔레스타인 지역의 소금 생산 방식을 추론 해 볼수 있는 좋은 자료이기도 하다.
Matthew 5:13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Salt and Light
13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But if the salt loses its saltiness, how can it be made salty again? It is no longer good for anything, except to be thrown out and trampled underfoot.
Ὑμεῖς ἐστε τὸ ἅλας τῆς γῆς ἐὰν δὲ τὸ ἅλας μωρανθῇ ἐν τίνι ἁλισθήσεται εἰς οὐδὲν ἰσχύει ἔτι εἰ μὴ βληθὲν ἔξω καταπατεῖσθαι ὑπὸ tōn ἀνθρώπων
예수그리스도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을 마태복음 5장 13절에서 소금으로 규정한다. 너희들<Ὑμεῖς / Hymeis>은 소금<ἅλας/halas>이라고 규정하면서 물질 명사 소금<ἅλας>앞에 정관사 <τὸ /to >를 붙힌다. 따라서 우리는 정관사<τὸ>는 소금 때문에 동반된 것이 아니라 소금뒤에 위치하여 소금을 꾸며 주고 있는 <γῆς /gēs > 때문에 수반 된 것임에 주의하여야 한다. <γῆς /gēs >는 단어자체로는 땅을 의미 한다. 하늘이 아닌 창조물들이 살아가야하는 세상이라는 의미로 확되 져서 번역 되기도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말하고 있는 너희들은 소금이면서 또한 이땅의 소금인 것이다.<τὸ ἅλας τῆς γῆς >
이땅<γῆς /gēs >앞에 붙은 소유격 전치사 <τῆς /tēs>로 말미암아 소금은 이땅에서 필수적인 것으로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유대인 공동체에게 당시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고 식료를 오랜 보관할 수 있는 금속이였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이땅이라는 헬라어 <γῆς /gēs >가 지상에서의 토지를 아울러 의미한다는 점에 착안한다면 너희는 토지 또는 토양의 소금이라는 뜻으로 <τὸ ἅλας τῆς γῆς >를 해석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의 소금의 역할이 부패를 방지하는 소극적인 의미를 지닌다면 <토양의 소금>은 소금이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므로 이때 소금의 역할은 적극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성서에서 확인 할 수 있는 소금의 역할은 다양하다. 생선이나 채소를 염장하는데에 필수품목이였던 소금은 구입하여 보관하는 양에 있어서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에스라 7장 : 22 22 up to a hundred talents of silver, a hundred cors of wheat, a hundred baths of wine, a hundred baths of olive oil, and salt without limit. / talents , 3.4 metric tons / cors ,16 metric tons / baths , 2,200 liters / >
구약의 에스라 7장 22절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은을 약 3.4톤을 보관해야하고 밀은 약 16톤을 보관하며 포도주와 와인의 보관량은 2천 2백리터로 한정하면서 소금의 총 보관량은 한정을 두지 않고 있음을 우리는 확인 할 수 있다. 확보 물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유익했기 때문이다.
의료용으로 소금은 치통치료에 고대 유대에서는 쓰이기도 하였고 맛을 내는 양념으로 쓰이고 있음이 구약의 욥기 6장에서 확인 되기도 한다.< Job 6:6 Can that which is unsavoury be< that which is insipid > eaten without salt? or is there any taste in the white of an egg?>
시험으로 말미암아 욥이 환난가운데 처해져 있다는 것이다. 욥의 신앙심을 확인하고자 여호와는 욥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재산을 재난의 형태로 소멸시키고 욥의 자녀들의 생명을 앗아간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경험 할 수 있는 최대의 불행한 사태를 비유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욥은 지금 자신이 처한 존재상황을 <소금>없이 <밋밋한 음식>을 먹는것에 비유해서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밋밋한 음식>이란 무엇을 의미 할까 ?
히브리어에 해당되는 <밋밋한 음식>의 표현은 타펠이다. 남성명사명사인 <타펠>은 회반죽이나 하얀 색의 도료를을 의미하지만 문장속의 맥락에 따라 , 타펠이 <회를 칠한다>는 의미를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 어떤 불미스러운 것 >이거나 <마땅치 않은 것> 또는 ,<시시한 것>,< 어리 석은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 타펠>은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욥기에서는 <음식>과 관련해서 < 밋밋한 어떤 것>으로 해석 되고 있다.
텍스트의 구조면에서 볼때 욥기 6장의<밋밋한 음식>이 먹기 힘든 것은 <밋밋한 음식>자체 때문이 아니라 <밋밋한 음식>과 함께 반드시 수반되어져야 할 <소금>의 부재 때문이다. 욥기의 영어 번역에서 이러한 <밋밋한 음식>을 로 번역하고 있는데 에 주안점을 두어서 번역 하자면 <맛 없는 음식>정도로 번역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맛 없는 음식>은 소금의 부재를 직접적으로 의미하지는 않는다. 소금이 첨가되였는지의 여부에 관계 없이 맛 자체가 없는 것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맛 없는 음식>은 먹기에 <나쁜 음식>을 의미 한다. 는 단순히 소금이 첨가되지 않았다는 미각의 의미를 넘어서 먹기에 불쾌하다는 감정적 평가를 수반하고 있다. 또 다른 욥기 6장의 영어 번역어를 < insipid >에 주안 점을 두어서 번역하면 < 밋밋한 음식 .으로 번역 되어 질수 있을 것이다. 영어 단어 < insipid >는 라틴어 에서 유래 했다. 음식에 적용 될 때는 음식의 맛이 풍미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지만 인격체를 지닌 사람에게 적용 될 때는 <현명하다>는 것을 의미 했다. 영어의 < sapient >에서 라틴어의 용례를 우리는 확인 할 수가 있다.

구글 이미지
올리브의 맛이 좋다는 표현에도 쓰일수가 있으면서 < Oleum male sapient /올리브의 기름 맛이 나쁠 것이다> 싱겁다는 의미의 확장을 아울러 지닌 단어이다.< homo sine sapore 싱거운 사람 >
여기서 우리가 먼저 살펴본 여러 가지의 로마의 소스에 관한 명칭을 떠올려 보자. , < DEFRUTUM> , 이 3가지 소스중에 제일 맛있는 로마 시대의 소스를 고르라고 한다면 우리는 망설임 없이 < 맛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를 골라야 할 것이다 우리 말로는 고아서 만든 소스를 의미한다 하겠다.바로 채취한 포도액을 고아서 만들었으므로 단맛이 감도는데, 통상적으로 포도액이 3분의 2가 남을 때까지 끊여서 만들 었다.

구글이ㅣ미지
어원을 살펴보면 로마시대의 소스 명칭< DEFRUTUM>은 동사 < defrudo>에서 유래했다. <깨뜨리다 / 부러 뜨리다>의 의미를 지닌다.< DEFRUTUM>은 그 어원이 의미하고 있는 것처럼보다는 좀더 은은한 불에 고아진 상태가 된다 .
포도액이 2분의 1 정도까지 남은 상태의 소스를
3종류의 고대 로마의 소스 가운데 조리 방법과 무관하게 ,소스 자체의 맛의 평가를 기준으로 소스의 이름을 명명한 것은 앞에서도 언급 한 바 있는 가 유일하다. 다소 장황하게 어원의 의미를 살펴 본데로 영어 < insipid >가 욥기 6장 6절의 <밋밋한 음식>의 영어 번역 , <밋밋한>에는 < unsavoury >보다 적합하다고 할 것이다. 여기서 <밋밋한 음식 /that which is insipid >의 표현의 문제는 명료하게 정리 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욥기 6장 6절의 주어<밋밋한 음식>이 과연 어떤 음식을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지를 고찰하여야 할 것이다. 히브리어 원어< תָּ֭פֵל /tā-p̄êl>는 영어 에 적확하게 상응하는 단어이다. 욥기6장 6절의 주어는 히브리어 텍스트에서도 영어의표현이상의 지시어를 갖지 못한다. 구문 형태의 표현인를 우리는 명사의 형태인 < insipid food >라는 표현으로 치환 시킬 수 있다. < 밋밋한 것>에서 ,<밋밋한 음식>으로 지시체가 보다 명료해 졌다. 히브리어 원어< תָּ֭פֵל/ tā-p̄êl>은 통사론적 구조를 감안하더라도 <밋밋한 음식>이상의 의미 확장을 지닐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욥기 6장의 서술구조는 이러한 <밋밋한 음식>이 소금과 분리되어서 식용 될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따라서 우리는 소금과 분리 되어서 식용 될 수 없는 <밋밋한 음식>이 무엇인지를 고찰해야 할 것이다 . 일부 학자들은 욥기 6장 6절에 나와 있는 <밋밋한 음식>이 소금없이 먹을수 없다는 점에 착안하여 ,<육고기>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문맥상 욥기 6장 6절의 밋밋한 음식에 대한 서술 다음에 <달걀 흰자를 어떻게 먹을 수 있는가>라는 후속 문장과 좋은 대비를 이루기도 하기 때문에 <육고기.를 <밋밋한 음식>으로 간주 할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경우에 <밋밋한 음식>은 <밋밋한 고기>를 의미하게 되고 <밋밋한>의 의미는 <육고기>에 전혀 양념을 하지 않거나 최소한의 소금도 곁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한편 욥의 출신지가 성서에서 말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 아라비아 북부지역이라는 점에서 다른 각도에서 ,<밋밋 한 음식>을 <빵>으로 간주하고자 하는 주장이 존재한다. 구약 성서에 나오는 욥기는 성서에 편입되기 전에 근동 지방에서 전래되어 왔던 산문이였다. 히브리어의 아람어 차용어인( 70인 번역에 의하면) 욥은 이슬람 문헌에서는 < أيّوب, Ayyūb>으로 표기 된다. <이슬람 문헌속에서 욥은 예언자의 한사람으로 등장하고 있다>.
구약성서에서 욥의 출신지를 아랍의 북쪽 지역으로 암시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역이 앗시리아 지역의 Aleppo지역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지역이기도 하지만 욥의 출신지역인 구약성서속의 아라비아 북부지역이 Aleppo지역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발굴 작업을 통해 알려진Aleppo지역의 식문화 유물들은 당시 이지역의 사람들이 채소류를 즐겨 섭취 했고 빵을 먹을 때 ,소금을 함께 먹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이 효모를 밀가루 반죽에 첨가하여 일종의 발효의 과정을 거쳐서 빵을 구워 먹거나 값비싼 효모를 구할 수 없는 경우에 로마의 평민들은 밀가루 반죽과 함께 효모대신에 일정양의 포도주를 첨가해서 빵을 구워서 먹었던 과는 달리 Aleppo지역의 시리아 사람들은 효모를 넣지 않고 밀가루를 반죽해서 빵을 구워서 먹었던 것으로 확인 되고 있다. 발효되지 않은 빵은 나름데로의 풍미를 돋구기 위해서는 소금과 함께 식용하는 것이 필수적인 일이였다. Aleppo 지역사람들의 식습관은 대체로 빵을 다른 류의 음식과 함께 먹지 않고 오직 소금만을 곁들여서 먹는 것이 일반적이였는데 , 이와같은 정황속에서 욥기6장속에서 표현되고 있는 < 밋밋한 음식>은 , Aleppo지역의 식문화 유물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반드시 소금을 동반해야할 음식으로써 <발효되지 않은 빵>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 , Aleppo지역을 직접 발굴했던 Russell교수에 의해 제기되었다.
다른 종류의 음식을 함께 섭취하는 일 없이 오직 < 발효 되지 않은 빵>을 <소금의 부재>상황속에서 <먹어야하는 사람>의 미각의 고통을 구약성서에서 욥은 자신에게 불어닥친 <고통>과 <비애>라는 감정적, 정신적, 신앙적 한계상황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각과 청각을 남성적인 것으로 규정하면서 촉각이나 미각과 같은 여성적인 것보다 훨씬 우월한 감각적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무엇보다도 미각은 탐욕스럽고 욕구를 들추워 내는 제어되고 통제되어야 할 감각으로 규정하고 있다 . 심지어 아리스토텔레스는 미각을 성욕과 같은 부류의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미각과 성욕을 천박하고 공동체를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전통은 괴테의 파우스트 1부 앞부분에서 마녀가 왜 염소를 데리고 등장하는 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
욥기 6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음식의 미각과 감정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는 사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서양에서는 중세기를 지나 르네상스시대에서나 천국이나 지옥의 비유적 서술을 시도 함에 있어서 촉각과 미각의 술어 등이 신학적 서술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욥기 6장 6절의 두 번째 문장은 가장 논쟁이 많은 부분으로써 오늘날 까지 합의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전혀 상의한 번역이 존재하게 되었다.
통상적인 욥기6장 6절의 두 번째 부분 번역은 다음과 같다.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Or is there any taste in the white of an egg? >
그러나 구약성서의 욥기 6장을 아람어로 옮긴 70인 번역에는 닭의 흰자위의 어휘는 보이지 않는다. <εἰ δέ καί ἐστί γεῦμα ἐν ῥήμασι κενοῖς ei de kai esti geuma en rēmasi kenois >
욥기6장 6절의 두 번째 부분 번역은 다음과 같은 전혀 상반된 번역이 존재 한다. 즉 <닭의 알 흰자위>를 <빼리리 할라무트>가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할라무트>는 맛이 없는 식물인 쇠비름을 의미 한다(purslane)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쇠비름은 근동에서 발견되는 일년생 풀로써 아무 맛을 지니지 못한 식물이다.(전치사 <빼>에 끈적 끈적한 액체를 의미하는 <리르>가 결합 된 것.) 즉 <할라무트의 즙>을 의미 한다.( is there any taste in the slime of the purslane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