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철도는 영국과 독일의 지정학적 갈등과 관련하여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이었다는 논쟁이 있다. 비스마르크가 물러난 뒤 독일은 제국주의적 팽창에 몰두하지만 유럽 한 가운데에 둘러싸여 해운 수송에 접근할 수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독일 제국 황제 빌헬름 2세는 야심이 매우 큰 사람이었다. 비스마르크는 제국주의에 매우 소극적이었지만 빌헬름 2세는 제국주의에 열성적이었던 인물이다.

터키-이란을 왕래하는 기차,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그가 제국주의에 눈을 돌려 가장 먼저 한 것은 베를린(Berlin)-코스탄티니예-바그다드(Baghdad)를 잇는 3B정책으로 결국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그가 1898년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을 기화로 독일은 1899년 9월 터키로부터 바그다드 철도 부설권을 획득한다. 이미 코스탄티니예(현 이스탄불)로부터 앙카라에 이르는 아나톨리아 철도는 독일 자본으로 부설되어 있는 상태였다. 소아시아를 횡단해 이라크 모술에 이르고, 이어 바그다드 다시 페르시아만까지 3,000㎞의 철도를 소유하면 빌헬름이 전략적으로 세웠던 팽창 정책은 일단 유리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3B는 캘커타-·카이로-케이프타운(Capetown)의 지배권을 형성하려는 영국의 3C 정책에 정면 충돌할 수밖에 없었고 러시아의 지중해 진출에도 큰 걸림돌일 수밖에 없었다. 전략적으로 바그다드 철도의 목표는 오스만투르크 제국과 독일을 하나로 묶고 수에즈를 위협하면서 독일에게 바스라를 통해 동쪽으로 가는 지름길을 제공함으로써 영국과 인도의 연결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결국 현대사는 바그다드 철도는 제1차 세계대전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