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태국을 지배하고 있는 중국계 태국인들과 그 자손들을 태국 화교라고 부른다. 태국으로 이민 가서 정착한 중국인의 후손들이고 2020년을 기준으로 하여 중국계 태국인은 약 701만 명으로 약 7천만 태국 인구의 약 1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태국의 화교, 화인은 경제와 무역 분야는 물론 정부의 고위 관직에도 진출하는 등 다른 국가들에 비해 태국 문화와 사회에 잘 동화되어 정착하였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강력했던 민족융합정책과 동화정책, 더불어 태국 계와의 활발한 통혼으로 현재 태국 내 중국계 중 태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비율은 불과 7% 미만으로 나타난다. 스스로 중국계라는 인식이 있는 화교의 경우에도 태국 형식의 이름을 사용하는 등 행동 방식에서 태국 사람과 구별하기가 어려우며, 세대를 거쳐 혼혈 및 동화되면서 중국인이라는 민족적 정체성(Ethnic Identity) 없이 본인을 태국인으로만 인식하는 “화예(華裔)”의 비중도 높다.

1782년부터 현재까지 태국을 통치하고 있는 짜끄리 왕조(Chakri Dynasty)의 역대 국왕들을 한자리에 그린 집합 초상화,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이들 중국계는 태국 내에서도 그냥 같은 태국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 태국 왕실의 뿌리에도 중국계가 일부 섞여 들어가 있는데, 탁신 왕조를 세운 탁신 대왕의 부친과 현 태국의 왕실인 차크리 왕조를 세운 라마 1세의 모친이 중국계였다. 이 외에도 역대 총리들이나 정치인들도 중국계 혈통을 가지거나 중국계 조상을 가진 경우가 많다. 중국계 태국인들은 태국 경제를 장악한 것으로 유명하다. 태국 내 화교 기업의 비중은 전체 기업 수 기준 약 40%, 상장회사 시가총액 기준으로는 약 81%에 달한다. 특히 제조업의 90%, 상업의 80%, 철강업과 운수업의 70%, 방적업의 60%를 장악하고 있으며, 은행 금융업 역시 화교 자본에 장악되어 있다.
13세기경에 아유타야에 중국의 광동성, 복건성 출신 상인들이 정착했다. 19세기에 탈랑(Talang), 탄중(Than Jung), 살랑(Salang), 현재의 푸켓이 되는 말레이 반도의 북부에 있는 섬은 인도 무굴제국, 청나라 그리고 유럽을 이어주는 지역이었다. 이를 계기로 하여 명, 청 교체기 때 넘어온 중국인들은 푸켓 등 태국 남부 지방에 정착했다. 19세기 후반 조주(潮州) 현 산두(汕頭) 시에서 방콕으로 가는 정기 여객선이 취항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수많은 중국인들이 태국으로 유입되었다. 태국 화교의 60% 가까이가 산두(汕頭)항을 거쳐 간 조주 인들이다. 20세기 초부터 태국 정부는 중국인이 동화되지 않는 이유를 민족 교육에 있다고 판단하고 화교 교육과 화문 사용에 대한 제한을 가하는 등 민족주의와 동화정책을 실행하였다. 1932년에는 화교에 대한 지원을 제한하거나 중국식 이름을 태국 방식으로 바꾸게 하였다. 초창기 중국인 역시 중국 풍습을 고집하지 않았고, 태국 풍습을 따랐다고 알려졌으며, 특히 상업에 종사하거나 성실한 인물이면 중국인이거나 태국인이거나 가리지 않고 통혼하는 등 우수한 인물에 대해 탈 민족주의적인 경향을 갖기도 하였다. 그러한 결과로 인해 후손들은 태국 사회에 깊이 유입되었고, 중국계라는 인식이 있는 화교의 경우에도 태국 방식의 이름을 사용하는 등 행동 방식에서 태국인과 구별하기가 힘들게 되었다.
오늘날 아시아에서 군주제를 택하고 있는 나라는 말레이시아, 부탄, 브루나이, 요르단, 일본, 카타르, 캄보디아, 쿠웨이트, 태국이며, 이들 가운데 태국처럼 동남아시아에 속하며 국왕이 존재하는 나라는 말레이시아와 캄보디아, 그리고 브루나이 정도 남아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의 국왕은 9개 주에서 5년 임기로 선출하는 술탄이고, 캄보디아 국왕은 태국과 같은 입헌군주제의 왕이지만 1970년 쿠데타 이후 왕권이 약화된 형편이다. 반면에, 태국의 왕가는 불교를 중심으로 하여 아버지와 같은 자애로움으로 나라를 통치하면서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으며 동시에 굳건한 권위를 지켜오고 있다. 태국의 국왕은 입헌군주로서는 드물게 정치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 온 존재로 나타난다. 태국은 1932년 전제군주제가 폐지되고 입헌군주제가 선포된 국가로서, 법적으로 국왕은 정치적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현실 정치에서 국왕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태국에서는 무력의 상징인 군(軍)도 정치 개입의 명분을 위해선 국왕의 승인이 필요하며, 따라서 군은 국왕의 충실한 연대를 자청하고 있다. 태국의 군부를 ‘왕의 군대(Royal Army)’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에 대한 일례로 현 국왕인 푸미폰 아둔야뎃(Bhumibol Adulyadej) 대왕의 재임 중에 정권 장악을 목표로 한 군부 쿠데타가 수차례 발생했는데, 국왕은 그때마다 쿠데타의 정당성을 나름대로 판단해 왔다. 1973년 민주화 시위 때는 군사정부의 사퇴를 이끌어 냈고, 1992년 방콕 민주화 사태에서는 민주 세력을 지지해주었으며, 2006년 쿠데타도 묵시적으로 동의함으로써 권력 상층부에 위치하여 여러 국가적 횡포를 일삼아온 탁신 친나왓(Thaksin Chinnawat) 전 총리의 정치적 축출을 이끌어 냈다. 그뿐만 아니라, 가장 최근인 2014년 쿠데타도 최종적으로 국왕의 승인을 받으면서 잉락 친나왓(Yinglak Chinnawat) 총리의 퇴진과 더불어 군부 통치로 귀결 지을 수 있었다. 인도차이나 반도와 말레이 반도에 걸쳐 있는 비옥한 평야와 산림의 나라인 태국은 전체 인구 7,000만에 육박하고 있다. 대다수 시민들이 불교를 믿으며 전통적으로 태국의 국왕은 만백성의 어버이이자 스승으로 사랑과 자비, 그리고 불교적 윤리성에 입각한 통치자면서 법왕(法王)과 신왕(神王)의 성격을 지닌 강력한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왕의 언행이 곧 태국의 통치 이념이고 명분과 정통성을 가르는 잣대라고 할 수 있다.
태국의 왕실은 타이족이 세운 최초의 왕조인 수코타이 왕조(Sukhothai dynasty, 1238~1438년)에서 아유타야 왕조(Ayutthaya dynasty, 1350∼1767년)와 톤부리 왕조(Thonburi dynasty, 1767∼1782년)를 거쳐 1782년 라마 1세가 창시한 차크리 왕조(Chakri dynasty)로 이어진다. 오랜 불교 국가인 태국 국민들에게 불교적 가치는 만사의 으뜸 기준이며 국가 정체성의 상징일 뿐 아니라 국가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면, 태국 국왕은 헌법이 명시한 것과 같이 ‘불교도이며 종교의 수호자’로서 군림하는 인물이다. 따라서 불자로서 불교를 숭배하고 불교 교단인 승가의 후원자 역할을 다하는 왕이기 때문에 국민의 신뢰 속에서 국가 통합의 구심점 역할을 해낼 수 있는데, 이러한 왕권의 전통은 13세기 수코타이 왕조 때 불교 법왕의 통치 방식을 도입한 이래 지속되어 왔다. 이처럼 법왕의 통치 방식은 한 마디로 ‘아버지가 자식을 다스리듯이’ 나라의 통치자가 백성을 돌보는 것을 말한다. 수코타이 시대 왕의 칭호인 퍼쿤(Phoekhun)의 ‘퍼’는 아버지라는 뜻으로, 칭호에서부터 법왕을 자처한 당시의 온정적 통치 상을 유추할 수 있다.
아유타야 왕조 시대에는 법왕의 통치에 신왕의 풍모가 더해지면서 왕은 곧 신의 아들로서 신과 동일시되는 태국의 절대 왕정 체제가 수립되었다. 절대 왕정의 전통은 입헌군주를 표방하는 오늘날까지도 살아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단적인 근거가 “왕은 지존의 존재이고 누구도 왕의 지위를 침해할 수 없으며 왕을 비난하거나 고소할 수 없다.”라고 명시한 태국의 헌법으로 나타난다. 태국의 현 왕조인 차크리 왕가는 이러한 절대적인 왕권의 전통 위에 군림하고 있어 다른 입헌군주제를 추구하고 있는 국가들과는 명확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