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_칸첸중가_006_모국어

그날 오후, 유스호스텔의 임시 종업원 락바 라마는 다르질링을 떠났다. 그는 시킴의 수도 갱톡으로 가서 칸첸중가 트레킹 팀의 쿡으로 합류한다고 했다. 그가 손을 흔들고 사라진 언덕에서 사람들의 모습이 머리부터 나타났다. 몹시 지쳐 보이는 배낭여행자들이었다. 그들 남녀 4명은 우리나라 말을 하면서 내 앞으로 오고 있었다.
"택시 탈 걸 그랬나 봐요."
"슬슬 나올 때가 됐어요."
"지도 다시 볼게."
그들 중 하나가 걸음을 멈추고 손에 든 지도를 펼쳐보며 말했다.
"유스호스텔이 이쯤 어디에 있을 텐데….“
오랜만에 듣는 모국어가 반가웠지만 뜻밖의 일이라서 당황스러웠다. 나의 뇌리에 동포들과 어울려 폭음하며 지냈던 콜카타 마리아 호텔에서의 나날이 순식간에 스쳤을 때 나는 일단 돌아서서 그들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그들이 내 곁을 지나 저만치 멀어져 간 후에는 그들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들은 곧 유스호스텔을 찾아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락바 라마의 자리에 배치되었을 낯선 종업원이 그들을 인솔하여 이 방 저 방 구경시켜 주는가 싶더니, 여성 두 명에게 아래층 방을 주고 남성 두 명만 데리고 합숙방으로 올라갔다.
결국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나보다 열 살쯤 덜 먹은 서른 살 전후의 청년들이었다. 여자 둘은 콜카타에서, 남자 둘은 네팔에서 오다가 실리구리 버스터미널에서 만나 일행이 되었다고 했다.
동포들과 합숙이 시작되면서 양철배와 일기장은 서랍장 속에 감췄다. 될 수 있으면 함께 몰려다니는 일을 삼가려고 애썼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아래층에 방을 잡은 두 여성이 자주 올라왔으며, 새벽 산책길에 잠시 동행이 되기도 했고, 알리멘트에서 만나면 합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녁이면 벽난로 앞에서 벌어지는 술자리를 피하기도 어색했다.
합숙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새벽 산책을 나갔다가 아침 먹으러 들른 알리멘트에서 타파로부터 방금 옥탑방이 비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옥탑방은 알리멘트의 객실 중에서 내 마음에 드는 유일한 방이었기에 바로 예약했다. 그리고 유스호스텔의 합숙방으로 돌아와 배낭을 꾸렸다.
며칠 합숙하는 동안 정이 든 동포들은 조금 섭섭해 했다.
"같이 트레킹하자고 청할 참이었는데 말입니다."
"다섯이 함께 가면 저만 짝이 없잖아요. 하하하. "
웃으면서 농담처럼 말했지만, 반은 진심이었다.
알리멘트의 그 방은 사방 벽이 송판이어서 소나무 냄새가 났다. 문 앞에 서쪽으로 툭 터진 마당 같은 공간이 있어서 그만하면 조망도 후련한 편이었다. 특히 칸첸중가에서 남쪽으로 곧장 내려온 산닥푸와 팔루트 두 봉우리를 잇는 긴 능선이 잘 보였다. 네팔과 인도의 국경을 이루는 그 능선에서는 칸첸중가는 물론 마칼루, 로체, 에베레스트 등의 설산 파노라마를 후련하게 볼 수도 있다고 했다.
다르질링의 운무는 날마다 세력을 잃어갔다. 일조량이 많아지면서 양지 쪽 식물들은 다투어 꽃을 피웠다. 알리멘트에 묵는 서양 여행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트레킹을 떠났다. 더러는 락바가 간 씨킴으로, 더러는 산닥푸(3,636 미터)나 팔루트(3,600 미터) 쪽으로 떠난다고 했다.
알리멘트로 방을 옮긴 뒤 사흘이나 지났을까? 아침 산책길에 유스호스텔의 동포들을 만났다. 그들도 다르질링을 떠나는 중이었다. 그들은 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가서, 마니 반장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고 했다. 마니 반장은 바로 산닥푸 팔루트 능선 트레킹의 기점이었다.<</span>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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