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_칸첸중가_007_국경초소
.
네 명의 남녀 동포들이 트레킹을 떠난 그날은 온종일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들이 부러웠고, 그들과 함께 떠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오후가 되자 택시라도 불러 타고, 마니 반장으로 쫓아가고 싶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반기지 않을지도 모른다.’라는 의구심이 들면서 ‘며칠 후에 혼자 떠난다.’는 결론을 냈다.
그 이틀 후, 그러니까 알리멘트의 옥탑방으로 거처를 옮긴 지 닷새째 되는 날 새벽에 침낭과 우모복과 판초 우의를 배낭에 쑤셔 넣었다. 사전과 회화 책, 두꺼운 일기장, 안 입을 옷 등 알리멘트에 맡길 짐은 따로 보자기에 쌌다. 양철배는 가져갈까 두고 갈까 망설였다. 배낭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두고 가야 하지만 두고 가기엔 왠지 허전했다.
_마스코트 삼아 배낭에 달고 갈까?
-너무 크다. 비누도 반 토막 내서 가져가는 거 못 봤냐?
-그래도 가져가자. 행운을 가져다주지는 않아도 액운은 막아줄 거야.
-쳇, 배가 산으로 오르겠구먼.
-무슨 상관?
나는 혼자서 두 사람 연기를 하는 라디오 성우처럼 목소리를 달리하여 중얼거리다가 양철배를 배낭 덮개에 넣고 지퍼를 채웠다.
마니 반장으로 가는 버스의 승객 대부분은 현지 주민들이었다. 맨 나중에 올라와 통로에 선 서양 남녀는 허리를 구부리고 머리를 숙여도 버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머리 뒤통수가 지붕에 닿았다. 차창 밖은 희뿌연 운무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따금 운무 속에서 이상한 마을, 이상한 사람들이 환영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마니 반장 체크 포스트 도착 시간은 9시였다. 여권을 제시하고 입산 신고서를 작성했다. 시장에 있는 티베탄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나니 10시였다. 버스를 같이 타고 온 서양 남녀는 지프에 올라앉아 있었다. 지프는 몇 시간 만에 산닥푸까지 올라간다고 했다. 걸으면 이틀을 잡아야 하는 길을 몇 시간 만에 오른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고소 적응을 위해서라도 천천히 걸어서 올라가는 게 나았다.
한 손에는 길에서 주운 지팡이를, 다른 한 손에는 전날 광장에서 산 관광 지도를 접어서 들고 꾸준히 비탈길을 올랐다. 산모퉁이를 하나 돌았을 때 비탈길로 내려오는 소들이 보였다. 소를 몰고 내려오는 남자들에게 ‘나마스떼’하고 인사를 했더니 그들은 ‘타시델레’라고 화답했다.
‘나마스떼’는 ‘당신께 귀의합니다’라는 뜻의 인도나 네팔의 인사말이고, ‘타시델레’는 ‘많은 평화’라는 뜻의 티베트식 인사말이었다. 소를 몰고 내려가는 사람들은 자기네가 티베탄임을 밝힌 것이지 싶었다. 이 지역에는 티베트로부터 이주한 티베탄이 많이 산다고 했다.
마을 어귀에 이르자 룽따가 펄럭이는 게 보였다. ‘티베탄 찻집’이라고 쓴 판자가 걸린 외딴 농가에서 버터 차를 마셨다. ‘구루구루티’라고도 부르는, 버터와 소금을 녹인 차는 곰국 맛이 났다. 배가 든든해지고 힘이 나는 듯했다.
조금 더 올라가자 ‘지트레’라는 마을이 나왔다. 역시 티베탄 마을. 집집마다 하얀 룽따가 펄럭였다. 더 높은 언덕 위에 있는 ‘라미드라’ 마을에는 운무가 자욱했다. 춥고 배고파서 점심을 해결하려고 했는데 마을 전체가 빈집이었다. 그 마을은 여름 한 철에만 가축들을 데리고 올라와 방목하며 사는 목장 마을이었다.
첫날부터 날씨도 안 좋고, 배는 고프고, 트레커_trekker_들을 실은 지프가 자꾸 지나가자, 맥이 빠졌다. 차라리 지프를 탈 것을 그랬다는 후회도 없지 않았다. 오후 1시 20분, 삼거리에 있는 메구마(Megma) 마을의 티베탄 찻집(Sailung Tea House)에서 점심을 먹었다.
메구마를 벗어나자, 시야가 좀 트였다. 멀리 보이는 밋밋한 능선 위에서 흰말과 검은 말이 풀을 뜯고 있었다. 어디선가 가축을 부리는 듯한 여인의 목소리도 들렸다. 좀 더 가보니 외딴집이 있고 티베탄 여인이 염소들을 우리 안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오후 3시 톰링(Tomling) 도착. 쉬카(Shikhar)라는 이름의 자그마한 롯지가 마음에 들었지만, 숙박 예정지인 조바리까지 1시간 거리여서 좀 더 걷기로 했다. 조바리 가는 언덕 길목에는 대나무 울타리를 두른 집들이 많았다.
눈 녹은 물이 흘러 길이 질었다. 등산화에 달라붙는 흙덩이가 지겨워질 무렵에 희뿌연 운무 속에서 수많은 룽따와 탑들이 나타났다. 거기가 네팔과 인도의 국경이었다. 국경초소는 비어 있었다. 초소에서 빤히 내려다보이는 곳이 조바리 마을이었다.
조바리는 네팔 땅이지만 관광객들에게 월경_越境을 허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외국인 여행자들은 조바리에서 24시간 이상 체류할 수는 없다고 했다. 조바리에서 산닥푸로 가는 길과 네팔 동부 지역인 일람으로 가는 길이 갈라졌다.
삼거리 주막집 ‘호텔 인드라_Indra’의 침대 네 개짜리 방에 배낭을 내려놓았다. 침대 하나에 20루피. 밥도 1인분에 20루피. 석유등을 켠 비좁은 식당에는 서양 단체 여행자들이 저녁을 먹고 있었다. 백토를 칠한 벽에 비친 그들의 커다란 그림자들도 같이 밥을 먹는 듯해서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밥 먹고 나오니 밖이 깜깜했다. 방으로 돌아오면서 보니 옆방 도미토리에서는 서양 여행자들이 카드를 하고 있었다. 침대에 침낭을 펼치고 누우니 어느 방에서는 이불이 축축하다며 투덜거렸고 어느 방에서는 벌써 코 고는 소리도 들려왔다. 위층에서는 키득거리는 여자 웃음소리와 두런두런하는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span>계속>
#장편소설_칸첸중가_009_국경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