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돈세탁 마지막 단계는 ‘소송’
피해자 신고로 대포통장 동결되자
사기꾼들 “범죄 증명을” 소송 걸어
10건 중 9건 “통장 풀어라” 판결
이기철(가명) 씨가 대포통장 조직으로부터 당한 소송의 판결문을 3월 30일 대전 동구의 자택에서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2023년 4월 보이스피싱에 속아 900만 원을 잃은 것도 모자라, 돈이 송금된 대포통장의 주인으로부터 되레 소송을 당했다.“그 사람들, 법원에서 범죄자라고 판결했어요?”이기철(가명·72) 씨는 기자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질문부터 쏟아냈다. 3월 25일 대전 동구의 한 빌라. 방 하나를 여러 세입자와 쪼갠 15.6㎡(약 5평) 남짓한 그의 거처엔 옷과 약봉지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이 씨가 묻는 ‘그 사람들’이란 지난해 12월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조진수(39·가명) 일당이었다.
조진수는 보이스피싱범과 손잡은 대포통장 조직이었다. 대포통장은 남의 명의로 만들어 범죄에 쓰는 통장을 말한다. 2023년 4월 이 씨가 보이스피싱에 속아 입금한 900만 원은 이 일당의 대포통장을 거쳐 가상자산(코인) 지갑으로 빠져나갔다. 사기 친 돈의 꼬리를 지우는 ‘돈세탁’이었다.
괴롭힘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씨가 경찰에 신고하자 일당의 통장은 돈을 빼낼 수 없게 동결됐다. 그러자 조진수 일당은 통장 주인 이름으로 거꾸로 이 씨에게 소송을 걸었다. ‘나는 보이스피싱과 무관하고 물어줘야 할 빚도 없으니 통장을 풀어 달라’는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이었다. 적반하장식 소송이지만, 이기면 통장이 살아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안에 묶여 있던 피해자의 돈까지 합법적으로 빼낼 수 있었다.
참 좋은 시절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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