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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예술] 천년의 장단 장고(杖鼓), 치고 어르는 소리[3부 기획시리즈-②]
  • 이형구 기자
  • 등록 2026-06-27 16:46:56
  • 수정 2026-06-27 16:48:49
  • ② 깊이로 파고드는 음악의 법도, 영산회상(靈山會相)의 울림

영산회상(靈山會相)이 가르쳐준 것, 깊이로 파고드는 음악의 법도

 '음악이란 무릇 횡으로 넓히는 것이 아니라 종으로 파고드는 것이라는 깨달음은, 오랜 수련과 다양한 음악 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서서히 몸으로 익혀지는 것이지 어느 날 갑자기 머리로 이해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김동경 선생이 영산회상(靈山會相)이라는 음악 세계에 깊이 침잠하게 된 것도 그러한 오랜 내면의 숙성 끝에 이루어진 필연적 귀착이었다.

 영산회상은 한 시간 분량에 달하는 방대한 구조의 음악으로, 그 이름이 시사하듯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형상화한 불교 음악에서 비롯한 것이다. 억불숭유(抑佛崇儒)의 기치 아래 불교가 철저히 탄압받았던 조선 시대에도 이 음악만은 면면히 그 명맥을 이어왔다는 사실은, 음악이 지닌 생명력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왕조의 이념이 종교를 억누르는 데는 성공했지만,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진 소리의 기억을 지우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불가해한 생명력 덕분에, 영산회상을 모토로 삼아 불교 음악의 전통을 지금까지 이어온 나라는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선생은 이 음악에 집중하기로 했다. 국립국악원에서 연주되는 이른바 서울식풍류인, 경제풍류영산회상을 오랫동안 단소로 불었고, 관련 논문들을 섭렵하며 이론적 토대를 쌓는 한편 직접 연주를 통해 소리를 몸 안에 새기는 작업을 병행했다. 향제풍류의 흐름, 즉 전추산 음악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 것도 이 과정에서였다. 국립국악원 이전의 이왕직 아악부로부터 이어지는 국립국악원의 전통 속에서 전추산 선생의 향제풍류에서 선생은 음악이란 가락의 수량이 아니라 소리의 밀도로 완성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도가 수련을 통해 쌓아온 배경이 불교 음악과 만나는 지점도 흥미롭다. 선생은 무예 기반의 도가 수련을 하던 시절, 솔직히 불가(佛家) 쪽 수련을 우습게 여긴 적도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음악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과 다시 만나면서 두 세계가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가와 불가, 무예와 음악, 몸의 수련과 소리의 수련 - 모두가 자기를 비워냄으로써 무언가 더 큰 것에 도달하려는 다른 방식의 같은 길이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선생은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장단이라는 사실과 정면으로 대면하게 된다.

※ 갈고, 김동경선생 작(2013)


뼈가 흔들리면 몸이 쓰러진다, 장단의 본질과 악기의 진실

 함께 수학하던 동료 고수(鼓手)와 합주를 하던 날들이 있었다. 재능 있는 연주자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와 함께 연주를 하면 어딘가 모르게 힘이 빠졌다. 음악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겉돌았다. 처음에는 서로의 호흡 차이인가 싶었고, 그다음에는 연주자의 역량 문제인가 싶었다. 그러나 거듭된 경험 끝에 선생님은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품게 된다. 혹시 악기 자체의 문제인 것은 아닐까.

오랜 검증끝에 결론에 이르렀다. 악기가 문제였다. 정확히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장구라는 악기가 원래의 형태와 소리에서 얼마나 멀리 떠나와 있는지를 직시하는 것, 그것이 이후 수십 년에 걸친 복원 작업의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에 도달하기까지는 상당한 우회와 탐구가 필요했다.

오래된 음반들을 꺼냈다. 국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한성준(韓成俊) 선생이 친 장구 소리도 들어보았다. 한성준 선생은 우리 전통 장단의 체계를 정리한 20세기 초의 거인적 인물로, 그의 연주 기록은 당시 음악의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점이 된다. 그런데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선생님은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포착했다. 지금 우리가 듣는 장구 소리와 성음(聲音) 자체가 달랐다. 음량의 차이나 연주자의 역량 차이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악기 본래의 음색과 울림의 밀도가 달랐다. 1930년대의 음원들이 증언하는 소리의 품격은, 악기의 형태가 달라지기 이전과 이후가 이처럼 갈린다는 것을 청각으로 직접 증명하고 있었다.

추적이 시작되었다. 고수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사진 자료를 수집했다. 중앙대학교에서 민족문화유산 연구소 소장으로 재임중이던 김수현 교수가 보내온 사진 한 장이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사진 속에는 지금의 것과 사뭇 다른 비례를 가진 장구가 있었다. 가늘고 길었다. 지금의 장구가 짧고 뚱뚱한 체형이라면, 사진 속 악기는 좀 더 가늘고 길쭉한 형태였다.

"눈으로 듣고 귀로 봐라." 

선생이 자신에게 던진 이 역설적인 명령이 연구의 방법론이 되었다. 당시의 평균 신장, 함께 찍힌 가야금과 거문고의 실제 치수, 악기의 비례 관계를 하나하나 대입하며 자로 재고 추정을 거듭한 끝에, 사진 속 장구의 실제 길이를 약 70센티미터로 추산했다.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장구의 길이가 54에서 길어야 60센티미터 남짓임을 감안하면, 이는 단순한 치수의 차이가 아니라 악기의 근본적인 설계 철학이 달라진 것을 의미했다. 얇고 긴 악기는 밀도 있는 소리를 만들어낸다. 체적(體積)의 차이가 성음의 차이로, 성음의 차이가 장단의 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70센티미터짜리 장구를 직접 만들어 쳐보니, 오래된 음원 속 소리와 흡사한 밀도와 울림이 났다. 직관이 실증으로 확인된 순간이었다.

※ 장구 각 부분의 명칭(악학궤범 기준)


경북대 수장고와 함화진의 기록, 역사 속에 봉인된 숫자

 악기 복원이란 단순히 옛것을 모방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사라진 것을 증거들로부터 재구성하는 일종의 고고학이며, 동시에 소리를 통해 그 타당성을 검증해야 하는 감각의 학문이다. 문헌과 유물과 청각이 함께 작동해야만 비로소 하나의 방향이 잡히는 것이어서,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복원은 사변(思辨)에 머물고 만다.

 경북대학교 수장고에 1910년대 제작으로 추정되는 장구가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하나의 작은 기적이었다. 그러나 수장고는 쉽게 열리지 않았다. 오랜 교섭 끝에 악기를 정비하는 일을 위탁받고 나서야 마침내 직접 대면하는 기회를 얻었을 때, 선생은 곧바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악기가 거꾸로 걸려 있었던 것이다. 장구는 채로 치는 편면(鞭面)과 손으로 어르는 고면(鼓面), 두 면이 서로 다른 형태와 크기를 가지고 있다. 편면 쪽은 통의 직경도 작고 가죽의 테두리를 고정하는 위철(圍鐵)의 크기도 작다. 그러나 그 차이를 알지 못한 채 반대로 걸어둔 것이었다. 악기의 두 면이 왜 다른 형태와 크기를 가지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고 있었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실수였다. 수십 년을 수장고에서 거꾸로 걸려 지낸 악기는, 그 자체로 우리가 이 악기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는지를 증언하고 있었다.

※ 경북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는 전통 장고(2007년 김동경 선생 촬영)

 

 수리에 들어가는 일은 엄중하고 조심스러웠다. 하나하나 원래의 것 그대로가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풀고 드러내는 작업을 오랜시간동안 진행하고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실측을 할 수 있었다. 숫자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숫자들이 문헌 기록과 조응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1936년 함화진(咸和鎭) 선생이 편찬하여 남긴 『조선악기편(朝鮮樂器篇)』은 이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문헌 가운데 하나다. 함화진 선생은 조선 말기에서 일제강점기에 걸쳐 활동한 음악학자이자 실천적 음악인으로, 전통 악기들의 구조와 치수를 체계적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그가 『조선악기편』에 남긴 장구의 치수 기록은 애석하게도 일제강점기라서인지 일본 도량형 곡척(曲尺)으로 기록되어 있었고 전체길이는 2척 2촌이었다. 현대 단위로 환산하면 66센티미터에 해당한다. 사진 분석으로 추정한 70센티미터와는 오차가 있었지만 현대 연주되는 장구보다 최소 6센티미터나 길었다. 

※ 경북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는 전통 장고(요통) 실측(2007년 김동경 선생 촬영)

 또한 장구에서 고면의 지름을 가리키는 전통 용어인 '학(鶴)'처럼, 악기의 각 부위마다 깃들어 있는 이름들이 이 악기를 둘러싼 문화의 깊이를 새삼 가늠하게 했다.


 

 (③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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