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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출신 재벌인 알리셰르 우스마노프(Алишер Усманов)와 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가 커넥션, 그리고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의 관계
  • 알렉세이정 칼럼리스트
  • 등록 2026-06-28 16:55:13

미르지요에프 정권은 집권 이후 지금까지의 대외정책은 친 러시아적 경향을 띠고 있다. 이러한 평가의 중심에는 미르지요예프와 인척 관계를 가진 러시아 재벌인 우스마노프가 있다. 우스마노프는 우즈베키스탄 동부에 위치하는 페르가나 지방의 공업도시인 추스트(Chust)에서 출생하였으며, 검사였던 아버지를 따라서 수도인 타슈켄트로 이주하여 유년시절을 보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외교관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모스크바에 소재하는 국제관계대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76년 국제법을 전공하고 졸업한 우스마노프는 타슈켄트로 복귀하여 대외경제협회의 책임자로 일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우스마노프는 한 차례 실각을 당하여 실형을 살게 되는데 그가 받은 혐의는 사기였다. 

우즈베키스탄의 제2대 대통령인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Shavkat Mirziyoyev), 출처 : Britannica

8년 형을 선고받은 우스마노프는 6년 동안 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고르바초프에 의해서 사면되었는데 마침 뻬레스뜨로이까 개혁을 단행하고 있는 고르바초프에 있어 우스마노프는 중앙아시아의 개혁을 이끌 수 있는 적임자로 점찍고 있었던 것이다. 출소한 이후, 그는 사기혐의가 아니라 정치적인 탄압과 외압이 존재하여 억울하게 옥살이 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후 열린 재판에서 그는 무죄와 더불어 죄목이 조작되었다고 인정되어 그의 명예는 되찾아지게 된다. 이후 그는 다른 러시아의 올리가르히들처럼 러시아의 체제 전환기에 지하자원 개발을 통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기 시작하였는데, 가장 중점적인 것이 우즈베키스탄의 철광산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이후 1999년에 러시아-우즈베키스탄 합작으로 설립된 메탈로인베스트(Metalloinvest)의 최대 수혜자이자 주주가 되었으며 현재 러시아의 철광석 및 비철금속 개발과 투자는 우스마노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할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막대했다. 특히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특수군사작전에도 메탈로인베스트는 전차와 장갑차에 들어가는 금속들에 대해 막대한 원자재 개발에 앞장섰다. 이처럼 지하자원의 개발과 투자 외에도 우스마노프는 이동통신과 IT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여 그의 부를 지속적으로 축적해 나갔다. 한편 그는 러시아의 이동 통신 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6,500만 명 이상의 가입자를 보유한 메가폰(Мегафон)의 공동 소유자이며, 러시아 최대의 인터넷 업체인 Mail.ru의 지분 17.9%를 보유하고 있는 공동 소유자이기도 하다. 


옐친 정권 집권기에 러시아 재벌들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인물이었고, 푸틴의 집권 이후 영국으로 망명을 떠난 언론재벌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의 신문사 코메르산트(Коммерсантъ)를 우스마노프가 2006년에 인수하면서 미디어 분야에도 진출하게 된다. 그는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스포츠 분야에까지 투자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사가 되었다. 2007년 8월에 영국의 유명한 프로축구단 아스날(Arsenal F.C)의 지분 14.58%를 인수하여 실질적인 구단주가 되었다. 우스마노프 역시 젊은 시절에 국가대표 펜싱 선수였을 만큼 펜싱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여 국제펜싱연맹의 회장도 역임할 수 있었다. 우스마노프가 고향인 우즈베키스탄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게 된 사건은 2007년 12월에 예정되었던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서였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카리모프가 3선 연임에 걸려서 출마를 고민하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스마노프가 차기 대통령으로 거론된다고 라디오 자유 유럽이 10월 16일자 기사로 보도하면서부터 그는 중앙아시아에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 카리모프는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와 달리 재벌 중심의 국가 경제 발전을 선호하지 않았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폐쇄적인 경제구조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개인 재벌을 통한 경제 발전보다는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발전이 필요하다고 믿었던 인물로 말 그대로 "사회주의 체제"에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자국 내에 재벌이 출현할 수 없도록 개인 사업자들을 강력하게 통제하였으며 우즈베키스탄에는 고위 관료 출신의 부유층만이 존재하고 있을 뿐 사업을 통해 성장한 재벌은 전무했다. 카리모프 정권은 우스마노프와 같은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러시아 재벌이 모국에 투자하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미르지요예프는 자국의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우스마노프와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9.5 환율단일화 조치도 사실상 우스마노프의 권고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실제로 이와 같은 환율단일화 조치가 시행된 이후 우스마노프는 우즈베키스탄의 주요 정부 프로젝트 사업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투자도 진행하고 있다. 미르지요예프는 우스마노프 외에도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재벌들의 투자를 요청하며 이전카리모프 정권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우스마노프는 미르지요예프에게 있어 경제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목적으로도 이용할 가치가 매우 높은 존재이기도 했다. 우스마노프의 최대 강점은 다른 어떤 러시아 재벌들보다도 푸틴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에 있다. 이번 특수군사작전 때도 아스마노프의 투자는 정점을 이루었다. 


종교적으로 무슬림인 우스마노프의 부인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출신의 이리나 비네르(Ирина Винер)라는 인물로 유태인이다. 그녀는 소련 시기에 리듬 체조 우즈베키스탄 사회주의 공화국 대표 선수였으며, 1명의 아들을 가진 이혼녀였다. 비네르는 남편을 따라 러시아로 이주하면서 영국과 러시아에서 각각 리듬체조 국가대표 코치를 역임했던 인물이다.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의 신문사 코메르산트를 인수한 우스마노프는 푸틴으로부터 높은 신임을 얻게 되었고, 이와 동시에 그의 부인인 이리나는 러시아 리듬체조 국가대표 선수이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알리나 카바예바(Алина Кабаева)를 푸틴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카바예바가 푸틴의 연인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 이러한 계기인 것이다. 미르지요예프의 이와 같은 우스마노프와의 관계들로 볼 때 우즈베키스탄이 러시아에 의존적으로 갈 수 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미르지요예프는 우즈베키스탄의 중요 농작물이자 수출 효자 종목인 목화 생산량을 줄이고 이를 위해서 점차적으로 목화밭을 없앤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목화밭이 없어진 곳에는 러시아 수출을 목표로 다양한 과일들이 재배되고 있으며 과일들이 자라지 않는 곳에는 중화학 공장들이 차례로 건설되었다. 그리고 러시아의 막대한 자원을 받기 위해 석탄과 철광석 저장고를 잇달아 개설했다. 그리고 우랄 지역을 왕래하기 위한 철도도 개설하고 매일 같이 하루에 3회 이상 러시아를 왕래하는 산업용 열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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