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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와 동방정교회의 종교적 문화유산을 수용한 종교는 러시아 정교회?
  • 알렉세이정 칼럼리스트
  • 등록 2026-06-29 15:46:49

초기 기독교와 동방정교회의 종교적 문화유산을 수용한 종교는 러시아 정교회 뿐 아니라 가톨릭, 개신교, 유대교는 종교 예술에 대해 각기 다른 관점을 유지했고 현재까지 그러하다. 이콘 논쟁의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동방정교회는 종교 회화에 대해 비교적 관대했던 반면, 가톨릭과 개신교는 대체적으로 부정적, 유대교는 적대적이었다. 기독교 예술의 허용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논리는 대개 구약성서 구절과 예수의 성육신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한다. 

러시아 정교회 이콘,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찬성의 진영은 출애굽기 15장, 35장과 예수의 성육신을 근거로, 반대는 출애굽기 20장, 신명기 4장을 이유로, 그리고 예수를 선지자, 예언자로 간주하는 유대교는 구약의 십계명을 근거로 반대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신적 계시가 육신으로 현시한 기독교는 차치하더라도 형상을 엄격히 금지했던 유대교 역시 신적인 이미지를 이용했다는 점이다. 유대교가 종교예술에서 부분적으로 이교적인 것을 수용한 결과로 볼 수 있는데, “모세가 십계명을 받고 있을 때 이스라엘 민족은 자국의 안위를 위해 황금 송아지라는 부적을 만들었다. 당시 황소와 송아지는 중동지역 초기 문명에서 가장 일반적인 성스러운 상징물이었다.” 


1세기 경 유대인 미술에서는 이교도적 주제와 기법이 발견되었는데, “듀라 시나고그(Dura synagogue)에는 토라를 모시는 신전 위편에 오르페우스가 동물들의 마음을 잡고 있는 그림이 걸려 있다. 인간보다 월등히 크게 묘사되어 있는 모세는 이교도 미술에서 신이나 영웅을 묘사할 때의 전형적인 기법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일부 유대인들은 랍비의 초상 그림을 일종의 액막이나 부적 혹은 신앙생활의 보조물로 여기고 있다. 러시아 정교회의 경우 대표적인 것이 이콘이다. 이콘은 예술이 예술 자체를 초월하여 신적인 것들을 지향하기 위해 만들어진 성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사(7~8세기)에서 격렬하게 충돌했던 이콘 논쟁은 신적인 것들을 지향하는 이콘의 이미지와 의미의 관계에서발생할 수 있는 이콘의 정체성에 대한 두려움을 가시적으로 표출한 것이었다. 당시 대부분 문맹자인 일반 대중들의 교화 수단, 이교도 국가와 대중들을 기독교로 개종하는 문제, 기독교 공인 이후 서서히 분리되기 시작한 기독교 세력 간의 이권 충돌, 이슬람 세력의 급격한 확장에 따른 종교, 정치적 관점들이 예술적 이미지 논란으로 분출된 것이었다. 


지난 한 논쟁의 결과는우상(Idol)은 배격하고 성상은 숭상하여야 하며 형상(Image)은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이콘은 신적인 것들의 표상으로서 일종의 상징으로 규정되었고, 이콘의 관람자에게 신성에 대한 인간의 숭배(Latreia)와 공경(Proskynesis)의 개념을 분별하게끔 하였다. 그런데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종교 예술의 태생적인 정체성의 문제가 오늘날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듯이, 이콘의 이미지와 의미의 관계는 인종, 역사, 사회, 문화적 층위에 따라 서로 얽혀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이콘의 정체성 문제가 비잔틴의 후계자로서 동방정교회의 종주국으로 자리매김한 러시아에서 확연히 드러났다는 것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이콘은 이론적 측면에서 신적인 계시의 통로, 진리의 담지자, 성례전적인 예배 의식의 일종, ‘영원한 세계로 향하는 창’이기도 했지만, 실천적 측면에서는 현세의 질병과 위협으로부터 개인의 안전을 염원하거나 악귀를 내쫓고 전쟁에서 국가의 승리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실질적으로 러시아에서 정교회를 신봉하는 모든 가족은 나름대로 기적의 이콘(Чудотворная Икона)을 숭배하고 있다. 이러한 숭상은 러시아 정교회 신자들의 종교 생활의 전체 혹은 일부분을 차지하는데, 넓게는 마을, 도시, 국가 전체의 종교 생활의 단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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