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철학 네트워크=김홍성 ]
장편소설_칸첸중가_008_체왕 롯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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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트는 새벽에 눈이 떠졌다. 마을에 나가 여기저기 어슬렁거렸다. 네팔의 일람 쪽으로 통하는 골목길에는 새벽부터 옥수수 단을 머리에 인 남자들이 지나갔다. 마을의 한 노파는 향로에 숯불을 피워 창밖에 걸어 놓고 향나무 가지를 올려 연기를 피웠다. 자못 경건한 모습이었다. 뭉클뭉클 피어나는 향연(香煙)이 산중 마을의 새벽을 더욱 신비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8시 조바리 마을을 출발, 40분 정도 걸어 갈리바스(2,621m) 언덕에 도착했다. ‘갈리바스’란 ‘대나무골’의 뜻이라는데 대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길가에 서너 채의 찻집이 늘어서 있었다. 맨 끝 찻집 마당에서 두 여인이 나란히 앉아 아침 햇볕을 쬐고 있었다. 까맣고 토실토실한, 곰 새끼 같은 강아지들도 햇볕 속에 나른하게 앉아서 졸고 있었다.
이곳 산닥푸 일대의 개는 충성스럽고 용맹하다는 얘기를 두 여인에게서 들었다. 양지바른 비탈에는 네팔의 국화(國花)인 랄리구라스 묘목밭이 있었다. 어린나무들을 직사광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밭두렁에 햇빛 가리개를 해놓아 우리나라 인삼밭 같았다.
갈리바스에서 두 시간쯤 급경사를 오르니 까이야까따 마을이 나왔다. 구멍가게 앞 양지바른 마당에서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의 머리카락을 헤치며 이를 잡고 있었다. 가게 주인들이었다. 급경사를 오르느라 땀을 많이 흘려 목이 말랐는데, 가게 안에서 시큼한 막걸리 냄새가 났다. 한 사발 마시고 싶다는 시늉을 했더니 한 여성이 일어서서 안으로 들어가자고 손짓했다.
안은 바로 부엌이었다. 황토를 이겨서 따독따독 손으로 빚은 부뚜막이 예술이었다. 아궁이며 화덕 구멍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아 소박하게 만들었다. 부뚜막 위 천정에는 시렁을 매달아 장작들을 가지런히 쌓아 두었고, 벽의 선반에 진열한 양은 컵이나 양철 접시 같은 주방 용기들은 잘 닦아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막걸리는 선반 밑 한 말들이 플라스틱 통에 잔뜩 들어 있었다. 금방 걸러서 담아놓은 듯했다.
가난하지만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매사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들이라고 여겨졌다. 그런 사람들이 빚은 옥수수 막걸리를 커다란 양철 컵으로 한 잔 가득 퍼주어서 단숨에 마셨다. 더 마시고 싶을 만큼 맛이 좋았지만 참았다. 이곳 까이야까따 마을의 아랫길은 도드레이라는 마을을 거쳐 림빅으로 내려가는 지름길이었다.
해발 3,000미터에 오르니 그늘진 곳에는 발목이 빠질 정도의 눈이 쌓여 있었다. 잠시 후 탑과 룽따가 보였다. ‘검은 연못’이라는 뜻의 ‘칼리 포카리’에 도착했다. 시커먼 물이 고인 연못가에 고목이 한 그루 서 있었다. 연못가에 지붕을 양철 슬레이트로 덮은 목조 가옥도 한 채 있었다.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고, 빈집 뒤 푸른 하늘로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서고 있었다.
칼리 포카리 마을의 ‘셰르파호텔’이라고 부르는 주막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조바리에서 만났던 중년의 영국인들이 셰르파호텔의 제법 넓은 야영장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 5명은 한 사람이 하루에 50달러씩 내는 열흘 일정의 패키지 트레킹 중이라고 했다. 포터 7명, 쿡 1명, 가이드 1명 등 모두 9명의 현지인이 그들 5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따라다녔다. 7명의 포터는 야영 장비와 식량, 취사도구 외에 세숫대야, 접는 의자, 접는 식탁까지 짊어지고 다녔다. 그들은 영국인들이 앞마당에 펼친 식탁 주변에서 차를 마시는 동안 현지인들은 뒷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찌우라(증기에 찌고 눌러서 말린 쌀)를 손으로 집어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락바 라마가 떠올랐다. 락바 라마는 1주일쯤 전에 다르질링 유스호스텔을 떠나 시킴으로 갔다. 기다리던 칸첸중가 트레킹 관련 일자리가 생겼다고 그는 말했었다. 그는 분명 시킴으로 간다고 했지만, 나는 혹시나 해서 셰르파호텔 뒷마당에서 간식인지 점심인지 모를 찌우라를 열심히 먹고 있는 7명의 현지인 중에 혹시 락바 라마가 있지 않은지 잘 살폈다.
락바 라마는 물론 거기 없었다. 가이드도 하고, 요리사도 하고, 때로는 포터 일도 한다고 했던 락바 라마. 그는 내게 트레킹 가자고 제안했었다. 아마 설산 칸첸중가를 처음 본 그날이었을 것이다. 락바 라마는 내게 자기가 가이드 겸 쿡 일을 하겠으니 취사 장비와 식량을 짊어질 포터 한 명만 고용하면 된다고 했었다. 비용이 문제가 된다면 멤버 한두 명을 더 추가할 수도 있다며 천천히 생각해 보라고 했었다. 그때는 내가 만사가 다 귀찮을 때여서 그런 트레킹은 더 이상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칼리 포카리의 해발 고도는 3,108미터. 산닥푸는 해발 3,606미터다. 산닥푸까지 8킬로미터밖에 안 남았지만 고소 적응을 위해 쉬기로 했다. 마을 맨 위에 있는 호텔 체왕 롯지(Chewang Lodge)에서 배낭을 벗어 내렸다. 집 앞 언덕에서 초록색 룽따가 산뜻하게 펄럭이는 체왕 롯지는 티베탄 남매 셋이 운영했다. 셋이 서로 도와 가며 음식을 장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막내 체왕은 큰 절에서 스님 되는 공부 중에 방학을 맞아 누나들을 도우러 왔다고 했다.
그들이 장만한 인도 네팔식 백반(白飯)인 달밧떨커리가 맛있었다. 달은 녹두죽, 밧은 흰밥, 떨커리는 채소 반찬인데, 이 집에서는 감자와 배추 비슷한 싹을 같이 볶은 것이었다. 백반을 담아온 쟁반을 물리자, 밖은 어느새 캄캄해졌다. 무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밤새도록 창문이 덜커덩거렸다. 한밤중에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보니 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은하수도 선명했다. <</span>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