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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5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가?》
  • 조율여백
  • 등록 2026-07-05 12:50:42
  • 수정 2026-07-05 12:55:52

● 위 이미지는 인공지능을 통해 생성 되었습니다.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가?》

                             조율여백 이수진


 "왕이 법이 아니라, 법이 왕이다."

이 문장을 접하며 오랫동안 품어 온 생각을 다시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인류를 하나의 집단으로 단순화하여 바라보기에는, 인간이 각자 지키려는 대상과 방향은 너무나도 다릅니다.


겉으로는 모두 같은 인간이라는 유기적 구조를 지니고 살아가지만, 그 내면에는 서로 다른 가치와 목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신이 무엇을 향해 살아가는지 충분히 드러내거나 성찰하지 않은 채 살아갑니다.


그 결과 과도한 탐욕과 쾌락, 유린과 소유, 그리고 영원한 지배를 추구하는 욕망이 반복됩니다. 순환과 책임을 잃은 채 스스로 왕이 되려는 욕망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으며, 그러한 반복이 오늘날 인류사의 한 단면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만 인간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자연을 바라보면, 인간이 당연하게 여겨 온 많은 욕망이 자연의 질서에서는 오히려 과도한 부당함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연은 순환하며 공존하지만, 인간은 종종 소유와 지배를 영속시키려 합니다. 또한 자신의 관점을 절대화하면서 개방과 성찰을 거부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를 개선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 갈등과 대립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오늘날 인간이 끝까지 지키려 하는 것은 때로는 자연과 세상으로부터 얻은 정당한 권리가 아니라, 약탈과 유린이라는 부당한 권리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객관화와 개방, 구조화와 의미화 없이 스스로를 절대화하려는 과시적 권력일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입출력의 균형과 관리, 그리고 순환이라는 질서를 외면한 채 끝없는 소유와 영속만을 추구하는 태도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흐름을 보며, 인간이 지켜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합당한 원리와 질서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 사회를 넘어 자연과 역사, 그리고 존재의 흐름을 함께 살펴보며 합당한 순환 구조를 이해하고, 이를 더 나은 방향으로 체계화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법은 단순한 제도나 규칙이 아닙니다.

감사와 사랑, 반면교사를 통한 분노, 교감에서 비롯되는 슬픔, 시작과 끝이 이어지는 미소, 역사와 연구, 그리고 감내와 같은 가치들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중심 원리를 이루는 삶의 알고리즘에 가깝습니다.


저는 이러한 가치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고, 어떻게 존재와 문명을 보다 합당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구조화하고 성찰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방향은 개인에 머물지 않습니다.

집단을 넘어, 국가를 넘어, 인종을 넘어, 자연을 넘어, 더 나아가 존재 전체를 향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제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특정한 사람이나 권력이 아닙니다.


합당함이 기준이 되고, 합당함이 법이 되며, 그 어떤 권력보다도 합당함이 가장 높은 원리가 되어야 한다는 방향성입니다.


저는 언젠가 인간이 사람을 중심에 두기보다 합당한 질서를 중심에 두는 문명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며, 그 가능성을 작은 기록과 성찰을 통해 이어가고자 합니다.



김석환선생님의 화답

제가 비관적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합당함이 기준이 되는 세상은 인간이라는 종이 절멸하는 시점부터 시작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마치 인류가 탄생하기 이전의 어느 세상처럼.


아니면 공룡이 먹을 것이 부족해 절멸하고(기후변화가 됐든 어쨌든 최후의 결과는 그랬을 것이라는 저의 추론.) 인간이라는 새로운 종이 나타났듯이 인간종이 멸종되면 또 새로운 종이 지구의 지배자가 되거나 달이나 화성같이 생명이 살 수 없는 별이 되거나.ㅎㅎ


김석환 선생님께


선생님의 말씀은 충분히 가능한 하나의 비관적 전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조금 다른 관점도 함께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어떤 종이든, 어떤 존재든 지금 이 순간의 기회를 누리기까지는 수많은 존재들의 가여운 감내와 희생의 역사가 축적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러한 역사에 대해 단순한 감사의 감정을 넘어, 존재론적 의미를 지닌 소중한 유산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이든 자연이든 문명이든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가치들은 일관되게 조화와 공존, 그리고 상황에 맞는 합당한 범위의 조율을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인류가 언젠가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형태의 존재가 등장하여 새로운 문명을 이루게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새로운 존재 또한 부당한 소유와 지배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그러한 존재들이 공통적으로 보일 특징은 개방성, 객관성, 구조화, 의미화가 부족하거나 미흡하다는 점일 것입니다. 스스로를 성찰하고 수정하는 능력이 부족할수록 왜곡은 반복되고, 부당함 또한 다른 모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존재의 상위 질서에는 하나의 일관된 원리가 있다고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원리는 완전한 심판이나 단절보다는, 불완전한 존재에게도 다시 기회를 허용하는 방향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그 기회가 무한한 면죄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스스로를 돌아보고 변화할 가능성이 남아 있는 한, 존재는 다시 조화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부여받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저는 비관 속에서도 작은 희망을 놓기보다는, 그러한 기회를 합당하게 이어 갈 수 있는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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