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은 명목상 삼권 분립이 확립된 민주정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라흐바르(최고지도자)가 삼권 위에 군림하여 정부나 국회가 통과시키는 어떠한 법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게다가 군통수권을 갖고 있으며 그로 인해 군직의 대부분의 직책을 임명할 수 있는 임명권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란 국민이 선거로 선출한 대통령에 대한 인준을 해줄 수 있지만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 다만 대통령과 국회의원 및 라흐바르를 선출하는 율법 전문가 회의에서 후보를 심사하는 헌법수호위원회의 인사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라흐바르는 사실상 이란의 실질적인 통치자로 평가받았던 것이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 특유의 신정 체제에서는 라흐바르가 국가 원수이고 대통령은 사실상 정부 수반에 불과하다. 따라서 라흐바르는 국가 내 모든 권한을 행사하고 있으며 이란의 최고권력자는 대통령이 아니라 라흐바르이다.

2026년 7월 4일 이란 테헤란에서 벌어잔 알리 하메네이의 장례식, 출처 : BBC
신정 체제 이란의 두 번째 최고 권력자였던 알리 하메네이는 직접 정책을 입안하거나 추진하는 인물이 아니다. 다만 이슬람 율법 전문가 회의(Assembly of Experts)에서 그가 선출되었고 그의 승인 없이는 어떤 결정도 집행되지 않는다. 하메네이의 글과 연설로 볼 때 이란 국내외 정치적인 목적과 목표를 가장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하메네이의 막강한 권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2000년 8월에 하메네이가 보낸 서한 한 통으로 인해 의회에서 논의되던 언론을 개혁하자는 법안이 철회되었다. 2003년 6월 언론 개혁을 요구하는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자 미국의 사주를 받는 용병들이라 이들을 지칭하여 이들에 대한 시위 진압을 지시했다. 이러한 지시 한마디에 모든 이란 내의 정부 조직들이 긴밀하게 움직였고 결국 해당 시위는 쉽게 진압되었다. 이러한 부분들은 하메네이가 얼마나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인 것이다. 그래서 이란 대통령들이 아무리 개방적이고 서방에 우호적이라 해도 최고권력자인 하메네이가 용인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슬람 혁명 수비대와 종교경찰들은 그동안 숱한 시위와 통제를 자행하면서 인권 탄압을 했다. 이란의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고 이란의 기자들에 대한 엄청난 탄압을 명령했으며 이를 기준으로 강력한 통치를 했다. 실제로 수많은 언론인들과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 그리고 민간단체 회원들이 감옥에 투옥되기도 했다. 더불어 2009년 경제난, 실업율, 신정 정치 등에 이란 국민들이 시위를 벌였다. 여기에 분명 미국의 보이지 않는 개입 또한 있었을 것이다. 하메네이는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여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물론 하메네이의 이러한 탄압은 세계적 비난을 받았지만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폭동에 준하는 시위는 국가 체계를 무너뜨리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참고로 독일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 도이칠란트(FTD)에서도 장기 집권으로 인권을 탄압하는 지도자로 당장 2012년에 물러나야 할 지도자는 북한의 김정은과 함께 하메네이가 지목되었다. 그리고 2008년 워싱턴 포스트에서도 세계 최악의 독재자로 선정됐을 정도였다.
2014년 들어서는 이란에서 하루에 3명 꼴로 처형이 이루어질 정도로 사형이 늘어났다. 물론 그 중에는 범죄자도 있지만 상당수가 양심수이거나 정치범이었다고 한다. 당시 노벨평화상 수상자 시린 에바디가 이를 증언했는데 당시 이란에서는 샤리아 법으로 인한 인권 유린이 지속적으로 발생되었다. 그러면서도 하메네이는 유화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테헤란에서 여성들의 히잡은 10년 전인 2016년에도 잘 쓰지 않았다. 필자 또한 그 시기에 이란 테헤란을 두 번 방문했는데 머리카락과 목선이 드러나는 두건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풀어줄 때는 풀어주고, 엄격해야 할 때는 매우 엄격했다. 공화주의라기보다는 공화주의를 내세운 왕정이나 다름없었다. 하메네이는 극심한 반이스라엘 성향이고 팔레스타인에 우호적이었다. 파타와 하마스, 팔레스타인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을 펼치던 인물들이 이란에 오면 성대히 대접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배후를 위협하던 하마스와 레바논 헤즈볼라를 공식적으로 후원했다.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의 하마스와 전쟁을 벌일 때도 하메네이가 적극적으로 하마스와 가자 지구 주민들에게 도와주었다.
그러다보니 미국은 테러단체 후원국이라 비난했으며 이스라엘에게서는 악의 세력을 지원하는데 악의 진원자로 여겨져 온갖 증오를 받았다. 2019년 11월에는 반(反) 정부 시위가 발생했을 때, 이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으로 최소 180명, 최대 450명이 4일 사이에 죽거나 다쳤다. 그러나 이것이 어느 정도 숫자가 정확한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이같은 진압을 하메네아가 명령한 것으로 판단되어지지만 실제로 그러한 명령은 하메네이가 내렸는지 또한 알 수 없다. 내정 문제는 대통령의 권한이고, 그가 임의로 바시지 민병대에게 명을 내렸을 수도 있는 것이다. 2021년에는 경제난과 물 부족 사태에 대한 미해결, 이어 각종 문제가 발생하자 2022년 식량·에너지 위기인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을 유발되었다. 이는 코로나 등으로 인해 좋지 않은 경기를 보여왔던데다 그동안 쌓여 왔던 미국의 제재가 합쳐져 일어난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친팔레비 왕정주의자들과 미국의 사주를 받은 자들이 국민들을 선동하여 2021년과 2022년에 연쇄적인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에 테헤란에는 치안 유지를 목적으로 하여 군을 배치하고 다른 도시에서는 심지어 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기도 하는 등 피해가 지게 되었다. 2026년 1월 8일에는 2025~2026년 이란 반정부 시위로 인해 공공기관이 점령당하고 모스크와 마드라사가 불에 탔으며 시위 규모가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확산되었다. 이에 인터넷 차단 조치와 함께 이슬람 혁명수비대를 주도로 하여 진압 작전을 진행했고, 가까스로 진압되었지만 트럼프의 쿠르드족 사주 및 색깔혁명 시도의 정황이 드러나면서 이란 시위 자체가 순수한 민주주의 시위가 아닌 폭동이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전쟁이 시작되었고 15시간 만에 관저에서 일가족과 함께 폭사당하며 36년간 이어졌던 그의 통치는 끝이 났다. 하지만 그의 차남인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라흐바르 지위를 승계했고, 결국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하메네이를 죽인 것은 오히려 이란 시민들을 단합하게 만들었다. 이란 내에서 하메네이는 순교자가 되었고, 이틀 전부터 진행되고 있는 하메네이의 장례식에는 무려 2,000만 명의 시민들이 운집하여 그를 추모했다.
나는 전에도 얘기했지만 하메네이를 좋아하거나 그를 추모하지 않는다. 사실 시아파를 연구했던 수니파 무슬림으로써, 그는 최악의 인물이자 독재자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슬람과 중동 내의 이란이라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미국이나 서방 세력과 싸웠다. 물론 그것이 자신의 권력을 위한 영달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실제로 그는 많은 사람을 죽이고 탄압했다. 물론 그 숫자가 1만, 2만, 4만, 혹은 7~10만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통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독재가 들어가면서 이를 유지하기 위한 희생은 필히 따르는 법이다. 그렇지만 같은 무슬림일지라도 자신과 종파가 다른 수니파 무슬림의 피를 많이 묻혔다. 지도자로써 누구나 공과 과가 존재하며 이를 연구하고 평가하는 것은 우리 같은 역사학자의 몫이다. 다만 그를 온전히 추모할 수 없다는 것은 1. 같은 무슬림들을 살해했고, 2. 그를 반대하는 목소리들에 대한 탄압이 혹독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하메네이에 대해 추모를 하지 않지만 그의 죽음으로 인해이란이 모즈타바와 신정 정권에 오히려 시민들이 결속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현재 유리한 상황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메네이의 장례식을 보고 있는 동안 나는 그에 대한 공과 과를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