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상의 핵심은 '작가(지식 창조자)'와 '저술가·평론가(지식 전달 및 현실 분석가)'의 본질적인 차이를 짚고, 유시민 전 장관의 본분은 전자가 아닌 후자(1급 정치평론가)에 있다는 점을 영성적·역사적 관점(제정분리 등)을 곁들여 설명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영량과 수준에 맞는 '본분(本分)'을 지닌다 [01:47]. 직업에 귀천은 없다지만,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자리를 찾아 그 길을 묵묵히 걷는 것이야말로 삶의 진정한 가치일 것이다 [01:01]. 그런 면에서 최근 정치권을 떠나 자신을 '작가'로 불러달라며 대선 주자 명단에서조차 이름을 빼달라 요청한 유시민 전 장관의 행보는 흥미롭다 [03:32].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그의 선택은 존중받아 마땅하며, 실제로 그는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내며 대중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04:15]. 그러나 그가 스스로를 정의한 ‘작가’라는 호칭이 과연 그의 본질에 부합하는가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흔히 글을 써서 책을 내는 사람을 모두 ‘작가’라고 칭하지만, 본질적인 의미에서 작가(Writer/Artist)와 저술가(Author)는 엄연히 다르다. 작가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가치나 창작물을 무(無)에서 유(有)로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04:33]. 화가나 소설가, 시인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고차원의 진리나 인간의 영성을 현실의 언어로 길어 올리는 존재들이 이에 해당한다 [04:38, 10:45]. 반면, 방대한 지식을 섭렵하여 이를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고 전달하는 사람은 '저술가' 혹은 '학자'라고 부르는 것이 선진국 기준에서도 더 정확한 명칭이다 [04:56, 05:25].
역사적으로 보면 정치와 종교가 일치했던 제정일치 사회에서는 신의 뜻을 전달하는 제사장(브라만)이 현실을 다스리는 정치인(크샤트리아)보다 위에 있었다 [07:06, 07:36]. 그러나 고차원적 이상만을 좇다 보니 현실과의 괴리가 생겼고, 결국 세상은 현실을 직시하고 순리에 맞게 판단하는 '제정분리'의 길을 택했다 [08:19, 09:15]. 정치는 철저히 현실에 뿌리를 박고 백성들의 삶을 살피는 영역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09:29, 12:08].
이 맥락에서 유시민이라는 인물을 들여다보면, 그는 보이지 않는 영성이나 세상에 없던 창조적 진리를 좇는 ‘작가’의 세계보다는 철저히 현실의 역학 관계를 분석하고 읽어내는 ‘현실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다 [13:14]. 그는 대단히 명석하며 현존하는 인물 중 단연 ‘최상급(1급)의 정치평론가’이다 [13:26]. 마치 뛰어난 스포츠 선수가 은퇴 후 훌륭한 해설가나 감독이 되어 경기를 총괄적으로 분석하듯, 그 역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정치를 날카롭게 비평하는 자리에 있을 때 가장 빛을 발한다 [13:31, 13:43].
글을 유려하게 잘 쓰고 대중적인 책을 많이 집필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두가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06:03]. 유시민 전 장관은 현실을 분석하는 지적인 능력이 탁월한 인물이지, 예술적 혹은 영성적 창조를 행하는 작가와는 결이 다르다 [13:53]. 그가 스스로를 작가라는 틀에 가두기보다는, 자신의 진짜 역량인 '1급 정치평론가'이자 '저술가'로서 현실 정치와 사회를 냉철하게 짚어내는 본분에 충실하기를 기대해 본다 [13:26, 13:57]. 우리가 인물과 현상을 바라볼 때 현실에 뿌리를 둔 올바른 기준과 총괄적인 진리의 관점을 모두 인정할 때, 비로소 사회를 바라보는 눈도 더 현명해질 것이다 [14:17, 14:26].
[사용자] 해당 영상에는 '작가란 별게 아니라 동호회 문예지에 일이백만원 주면 되는것'이란 의미의 구절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없던가요. '작가'에 對한 신비적인 찬양의 意圖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제미니] 제 불찰입니다. 지적해 주신 말씀이 전적으로 옳습니다. 영상의 본뜻을 다시 정밀하게 확인해 보니, 연사께서는 '작가'라는 호칭에 신비주의적인 권위를 부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 사회에서는 어휘 구사력이 부족하다 보니 글을 조금 끄적이고 책 한두 권 내면 쉽게 작가라고 불러주며 그 호칭이 남발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꼬집고 있었습니다 [05:45, 06:03].
실제로 영상 6분 대를 보면 "국내 동인지나 시인협회 같은 데 가입해서 돈 몇십만 원, 백만 원 주고 짜 맞춘 글 활동만 해도 작가가 될 수 있다"며 호칭의 가벼움을 직접 언급하는 구절이 명확히 존재합니다 [06:18]. 즉, '유시민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고귀한 작가가 아니다'라는 찬양의 의도가 아니라, "작가라는 타이틀 자체가 한국에서는 아무나 쉽게 다는 흔한 명칭인데, 굳이 유시민 전 장관처럼 명석하고 지식이 풍부한 '1급 평론가'가 자신에게 맞지도 않는 옷인 '작가'라는 가벼운 호칭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뉘앙스입니다 [13:26, 13:57].
이러한 화자의 냉소적이면서도 명확한 현실 인식을 반영하여, 작가에 대한 신비주의적 찬양을 걷어내고 영상의 본래 의도인 '한국 사회의 호칭 남발 문제와 유시민의 진짜 본분'에 초점을 맞춰 칼럼을 전면 수정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작가(作家)’라는 호칭만큼 흔하고 가볍게 남발되는 것도 드물다. 한국어의 어휘 장벽과 지적 인프라의 아쉬움 탓인지, 대중은 그저 글을 조금 쓸 줄 알거나 책 몇 권을 엮어내면 대뜸 ‘작가’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주곤 한다 [05:45, 06:03]. 현실을 냉정히 들여다보면, 국내의 수많은 동인지나 문학협회 같은 곳에 얼마간의 비용을 지불하고 짜 맞춘 듯한 글 몇 편만 실어도 누구나 쉽게 작가 타이틀을 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06:18]. ‘작가’라는 말에는 우리가 막연히 동경하는 대단한 신비주의나 고결한 권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06:13].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최근 정계를 떠나 자신을 한사코 ‘작가’로 불러달라 요청하는 유시민 전 장관의 모습은 어딘가 어색하고 본분에 맞지 않아 보인다 [03:32, 04:08]. 그는 대중적 인기를 얻은 저서를 여러 권 집필하며 판매고를 올렸지만, 그것이 그를 ‘작가’로 규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04:15]. 본질적으로 작가란 세상에 없던 창작을 하는 화가나 소설가 같은 영역을 뜻하지만 [04:33], 남보다 많은 지식을 정리해 대중에게 명쾌하게 전달하는 이는 ‘저술가’ 혹은 ‘학자’라고 부르는 것이 선진국 기준에서도 더 정확한 명칭이다 [04:56, 05:25].
그렇다면 유시민이라는 인물의 진짜 본분(本分)은 어디에 있는가? 그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창조하는 예술가나 종교적 구도자의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10:45]. 그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명석하며, 우리 사회에서 단연 ‘최상급(1급)의 정치평론가’이다 [13:14, 13:26]. 마치 현역에서 은퇴한 명선수가 해설가나 감독으로 변신해 경기장 전체의 흐름을 날카롭게 분석하듯 [13:31], 그 역시 직접 정치판에 뛰어들지 않더라도 링 밖에서 현실 정치의 역동성을 분석하고 비평할 때 가장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다 [13:43].
유시민 전 장관은 현실을 분석하는 머리가 대단히 비상한 인물이다 [13:26]. 그런 그가 굳이 한국 사회에서 아무나 돈 몇 푼 들이면 쉽게 얻을 수 있는 흔하디흔한 ‘작가’라는 타이틀을 탐닉할 이유가 없다 [06:18]. 그것은 그에게 맞는 옷도 아닐뿐더러, 그의 탁월한 분석적 재능을 오히려 퇴색시키는 일이다 [13:57].
그가 스스로를 작가라는 모호한 틀에 가두기보다는, 자신의 진짜 역량인 '1급 정치평론가'이자 '저술가'로서 현실 사회를 날카롭게 짚어내는 본연의 역할에 집중해 주기를 바란다 [13:26, 13:57]. 우리 사회 역시 무분별한 호칭의 거품을 걷어내고, 인물이 가진 진짜 쓰임새와 현실적 가치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현명한 눈을 가져야 할 때다 [14:17, 1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