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시기 일리리아인들이 알바니아와 발칸 지역들에 정착하면서 로마 제국과 슬라브, 고트족들이 오기 전까지 원주민으로 남아있었다. 로마 제국이 발칸을 정복한 이후, 일리리아인들은 로마인들과 혼혈하면서 계속 발칸에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한참 후에 들어온 슬라브족들은 남슬라브계 민족을 형성하며 발칸에 정착했고 이 때부터 로마인과 믹스된 로망스-일리리안들과 대립의 역사를 갖게 된다. 이 로망스-일리리안들이 바로 알바니아인들의 혈통적 직계 조상들이다. 이들은 중세 시기에 불가리아 제국 및 세르비아 왕국과 끊임없이 대립해왔다. 그리고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침공이 시작되면서 로망스-일리리안들은 스칸데르베그(Skanderbeg)를 중심으로 오스만 제국과 대립해 나간다. 현대 알바니아인들의 스칸데르베그에 대한 존경은 대단하다. 스칸데르베그의 가문인 카스트리오티 가문의 문양인 검은 독수리는 현재 알바니아 국기의 문양이다.

Live from Tirana as people protest against coastal development project linked to Jared Kushner, 출처 : Politico Europe. 2026.
제12차 러시아-투르크 전쟁이 발발했지만 오스만 제국이 패배한다. 그러면서 러시아의 영향으로 같은 슬라브계 민족들인 세르비아와 불가리아가 독립을 선언하게 되면서 오스만의 영향력이 약화된 발칸 지역의 알바니아인들은 슬라브계 민족의 발호에 큰 위협을 느끼게 된다. 무슬림인데다가, 오스만 제국에 적극 충성하여 그에 대한 댓가도 받았었고, 무려 42명의 오스만 제국 재상들이 알바니아계였기 때문에 남슬라브계 민족들에게 있어 터키인과 동급 으로 취급되면서 적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들이 거주하는 영토가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그리스와 불가리아 등으로 분할되어 넘어갈 것을 우려하게 된다. 따라서 알바니아인들은 민족적 위기를 넘기기 위해 모임을 갖기로 했다. 불리한 전황에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의 전쟁이 한창이던 1877년 12월 12일에 코스탄티니예에 알바니아 민족지도자들이 모여 "알바니아 민족의 권리 보전을 위한 중앙위원회(Central Committee for the Preservation of the Rights of the Albanian People)"가 개최되어 알바니아 민족주의가 탄생한다.
지역 단위로 흩어져 있어 남슬라브계 민족에 의해 자 민족의 안보를 우려하던 알바니아인들이 처음으로 단체행동을 개최했다. 그리고 1878년 초에 체결된 산 스테파노 조약에서 알바니아인 상당수가 거주하던 지역들이 영토 할양에 포함이 되니 알바니아인들은 서로 단결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어 1878년 6월 10일, 47명의 알바니아인 오스만 베이들이 코소보 프리즈렌에 모여 알바니아 민족 영토 전체를 보전하기 위해 오스만 제국를 지지하는 것으로 결의하게 된다. 당시 맺어진 프리즈렌 동맹은 오스만 제국에 충성하는 것으로 종결했지만 첫 회의에서 알바니아 민족주의 지도자들의 통합과 자치, 개혁 등의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모였다는 것 자체가 당시 오스만 지배 하의 흩어져 살고 있던 알바니아인들에게 큰 의미가 되었다. 따라서 이렇게 결성된 프리즈렌 동맹은 알바니아 민족주의적 성향이 매우 두드러지는 단체였다. 오스만 제국은 비록 러시아와 전쟁에서 패전으로 끝이 났지만 오스만 제국의 영토 보전을 지지하는 알바니아 민족단체를 초기에는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이 프리즈렌 동맹 각서를 보고 이에 대한 불편함을 느껴 동맹 인사들이 자신들을 알바니아인이 아닌 "오스만인"으로 정의할 것을 요구하게된다.
이에 반발한 알바니아 민족주의자들은 오스만 제국과 갈등이 빚어지게 되었으며 프리즈렌 동맹은 만장일치로 압딜 프라셔리(Abdyl Frashëri)를 동맹 대표로 뽑아 그의 영도 하에 알바니아 자치와 반 오스만 성향을 갖게 되면서 스칸데르베그 이후, 400년 만에 군사행동을 나서게 된다. 이처럼 프리즈렌 동맹은 30,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오스만 제국에 대항한 반란에 나서게 되자 알바니아의 독립을 우려한 오스만 제국은 동맹의 해체를 요구하게 된다. 이처럼 프리즈렌 동맹과 오스만 제국의 첫 충돌은 베를린 회의로 인해 몬테네그로 영토 할양을 처리하고 있던 제독 메흐메트 알리 파샤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으며 프리즈렌 동맹은 여기서 메흐메트 알리 파샤를 포함한 오스만 지휘관 다수를 전사시키는 대승을 거둔다. 프리즈렌 동맹은 1879년에서 1881년간 알바니아 민족 영토를 할양 받아 점유를 확립하러 오는 몬테네그로의 군대와 지속적으로 격돌하여 패퇴시켰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주변국들과 충돌하여 독립을 꿈꾸던 프리즈렌 동맹을 좋지 않게 보던 베를린 회의의 강대국들은 오스만 제국에 알바니아의 반란을 진압할 것을 요구했다.
국제 사회의 압력으로 인해 오스만 제국은 데르비시(Dervishes) 파샤 장군 휘하의 대규모 진압군을 편성하여 프리즈렌 동맹을 공격했고 아직도 강력한 오스만 정규군에게 1881년 4월, 프리즈렌이 함락당하며 동맹은 해체되었다. 이로써 알바니아 민족지도자들 상당수는 타국으로 망명하거나 오스만 제국에게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그러나 프리즈렌 동맹은 알바니아 민족주의에 초석이 되었고 결국 알바니아 민족주의의 근대적 태동으로 여겨졌다. 1905년 알바니아 해방 비밀 결사가 결성되고 1912년에 코소보 프리슈티나에서 발생한 알바니아 봉기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한 프리즈렌 동맹에서 결의된 알바니아 영토를 구성하는 4개 빌라예트(Vilayet, 州)들은 대알바니아주의를 제창하며 영토를 수복하자는 선동에 나서는 알바니아 민족주의자들의 국경이 되었다. 트럼프의 장녀 이방카 트럼프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알바니아 생태보호구역인 사잔(Sazan) 섬에 16억 달러(약 2조 4,000억 원) 규모의 초호화 리조트를 개발하려 했다. 이에 현재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와 남부 해안 일대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격화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들은 트럼프가 딸과 사위를 앞세워 알바니아의 영토를 침공하고 있다 여겼다.
국민의 허락을 받지 않은 무단 개발은 시민단체들이 거세게 비난하고 나섰으며 야당에게조차도 의회에서의 절차를 무시한 개발 사업 추진으로 인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검찰이 조사에 착수하는 등 정치 문제로까지 비화하게 된다. 이는 이방카 트럼프가 지난달 31일 공개된 한 팟캐스트에서 지중해 한가운데 있는 아름다운 섬과 5마일(약 8㎞)에 달하는 환상적인 알바니아 해변을 개발할 것이라며 대규모 리조트 건설 계획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 문제가 됐다. 아드리아 해에 있는 해당 부지는 알바니아의 유일한 섬인 사잔(Sazan) 섬과 주변 해양 국립공원의 습지, 해안경관보호구역 등을 포함한 넓은 해안을 아우르고 있는 지역들이다. 지중해 몽크물범의 서식지이자 바다거북의 산란지이고, 플라밍고와 달마티안 펠리컨 등 멸종 위기종 조류들이 다수 서식하는 지역으로 나라는 가난하지만 사잔 섬 일대의 자연 보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대단한 곳이다. 그리고 이방카와 쿠슈너가 환경보호 평가나 주민공청회도 없이 리조트 기초 공사부터 시작하게 되자 시민들은 이를 침공으로 규정하고 크게 분노했다.
해안가에 철조망 울타리가 세워졌고, 불도저와 트럭 등 중장비를 동원해 오래된 소나무 숲을 깎아 내고 있다며 현지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국민들과 환경운동가들을 사설 보안업체 직원이 폭행하면서 여론이 악화되었다. 생태보호구역에서 이와 같은 무단 개발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사회적 고려도 하지 않았으며 환경적 고려나 정식으로 계약을 허가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불도저가 진입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이에 분노한 알바니아 국민들은 알바니아가 두바이처럼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Albania does not want to become like Dubai)고 적힌 피켓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서식지 파괴 위기에 놓인 분홍 플라밍고 모형을 들고 시위에 참여했기 때문에 이는 ‘플라밍고 시위’라는 별칭까지 붙어졌다. 수도 티라나에서는 6월 초, 매일 시위가 열려 개발 사업 취소를 요구 중이며, 갈수록 규모가 불어나고 있는 실정이고, 여기에 알바니아의 민족 영웅인 "스칸데르베그" 사진까지 등장했다. 그리고 "알바니아 민족의 힘으로 침략자들을 몰아내자(Let's drive out the invaders with the power of the Albanian people)"라는 내용의 피켓도 보였다. 이방카와 쿠슈너, 에디 라마 총리의 불법적인 행위로 인해 잠들어 있던 알바니아의 민족주의 깨우게 된 것이다.
에디 라마 총리는 2013년 9월부터 현재까지 무려 13년 동안 4선을 연임한 총리다. 라마는 쿠슈너와 이방카의 휴양지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라마 총리 재임 시기인 2024년 2월 알바니아에서는 ‘환경 보호법 개정안(Amendamenti i Ligjit për Mbrojtjen e Mjedisit)’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는데, 이 법안에 의하면 비록 환경 보호구역이라 할지라도 5성급 이상의 최고급 리조트 및 환대 시설에 한해서는 개발 제한을 면제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당시에는 이런식으로 사잔 섬을 개발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아무도 몰랐다. 쿠슈너와 이방카가 에디 라마 총리를 만나 이면합의(Secret Agreement)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다. 당시에 이 법안을 제출한 이유는 해양 도시인 블로러에 신공항을 개설하기 위해서였고, 의회도 그렇게 알고 있었기에 그 대상이 사잔 섬이 아닌 블로러 일대로 생각했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블로라에 신공항을 건설 중인 것이 리조트 유치와 맞물려 계획한 것 아니냐며 야당의 비판이 나왔다. 라마는 이에 대해 사잔 섬의 리조트 사업 부지는 사유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알바니아의 토지법애 의하면 바다와 모래사장은 공공 재산이다. 이것이 사유지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불법적인 이면 합의가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특혜 및 정경 유착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니 알바니아 특별 반부패 검찰청은 해당 법안의 통과 과정과 개발 허가 배후에 유력 정치인들의 유착이 있었는지에 대해 전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그럼에도 라마는 자연과 공존하는 개발을 하겠다고 고집을 세우고 있다. 라마는 과거 공산주의 고립 국가였던 알바니아를 고급 휴양지로 탈바꿈하기 위해 이와 같은 투자는 필수적이라 주장했다. 따라서 국외 투자자들을 적대시하는 국가라는 오명을 씌워질 수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라마는 관광객이 하룻밤에 2,000유로를 지불하면 지역 사회가 이득을 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돈을 버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과정에서의 문제다. 여기에 불법적인 행위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고, 의회와 주민들의 아무런 상의도 없이 진행했다는 것에서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리고 라마의 그러한 주장은 알바니아 남부 해변 일부가 그리스의 부유층들에 의해 사유화되면서 일반인들이 해안을 이용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늘어난 경험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라마의 주장은 설득력을 전혀 얻지 못하고 있다.
사태가 악화되면서 에디 라마 총리의 탄핵 및 퇴진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알바니아 국민들은 라마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으며 나라의 재산을 국민의 동의 없이 함부로 이방카, 쿠슈너 부부에게 판매하려 한 행위에 적극적으로 규탄하고 있다. 에디 라마는 현재 궁지에 몰려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방카, 쿠슈너 부부의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 전 세계가 규탄하고 있다. 결국 플라밍고 시위는 알바니아의 자주성, 강렬한 민족주의를 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