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편소설_칸첸중가_005
알리멘트
날마다 운무 속을 돌아다니다가도 밥때가 되면 알리멘트에 가서 밥을 먹었다. 점심은 길거리에서 군것질로 때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침저녁은 알리멘트의 식탁에 앉아 제대로 먹었다.
알리멘트는 유스호스텔의 부속 식당과는 달리 차림이 다양했다. 맛도 그만하면 좋았다. 주문한 음식이 빨리 나왔다. 타파 구릉과 그의 부인과 어린 딸 모두가 친절했다. 이따금 흘러나오는 옛날 팝송이 좋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그냥 눌러앉아 식당 카운터 옆 책장에 수북이 쌓여 있는 오래된 비망록들을 들추곤 했다. 비망록에는 여러 나라 여행자의 육필 기록이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었다. 만화도 있었고, 우스갯소리도 있었으며 자못 심각한 구절도 있었다. 또한 각종 여행 정보와 감상이 자세히 적혀 있기도 했다.
맥주를 한 병 시켜놓고 비망록을 들추다가 귀에 익은 옛날 팝송이 들리면 잠시 추억에 잠기는 알리멘트에서의 저녁 시간은 푸근했다. 알리멘트의 주인 타파 구릉은 나보다 대여섯 살 많기는 했지만, 감상적인 팝송이 풍미하던 60년대 말에 영국군 용병이었던지라 어딘지 모르게 정서가 통했다. 내가 맥주를 시키면, 혹은 맥주를 시키지 않고 있어도 손님이 뜸할 때면 어느 결에 귀에 익은 음악이 흘러나오곤 했다.
숙소를 아예 알리멘트의 위층으로 옮길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알리멘트의 방들은 유스호스텔의 합숙방에 이미 익숙해진 내게는 비좁았으며, 드나드는 손님이 많아 부산스러웠다. 거긴 내게 어울리지 않았다. 심하게 앓고 있던 나를 보살펴 주었던 락바 라마와 유스호스텔의 합숙방을 떠날 수 없었다.
나는 유스호스텔의 벽난로에서 사그라지는 작은 불꽃을 바라보다가 혼자 잠드는 쓸쓸함에 익숙해져 있었다. 양철배 속에 쭈그리고 앉아 촛불을 쬐며 해무(海霧) 속을 떠다닌다는 공상을 끝내기도 싫었다.
그렇게 2월이 다 가고 3월이 왔다. 내 일기장의 3월 1일 페이지에는 '새벽부터 오전 내내 설산 칸첸중가가 보였음. 오후부터 다시 운무'라는 짧은 기록이 있다. 이제 그날의 기억을 보충해 본다. 제목은 햇빛이다. 다음과 같다.
햇빛
죽어 가는 붕어가 더러운 웅덩이의 수면 위로 떠오르듯 잠에서 깨어나고 있을 때 새소리가 들렸다. 처음 듣는 것처럼 새삼스러운 새소리였다. 애틋하고 귀여웠다. 잘 들어보니 한 마리가 우는 게 아니고 두 마리가 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쌍의 종달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푸른 보리밭을 짓누른 끝없이 푸른 하늘이 떠올랐고, 눈이 저절로 떠졌다. 합숙방 천장이 거기 있었다. 천장은 폐유와 해조류가 뒤덮여 빛을 차단한 컴컴한 수면 같았다.
깨진 유리창과 그 창턱으로 옮겨둔 양철배가 보였다. 그것들은 희미한 역광을 업고 윤곽만 드러내고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았다. 불현듯 침낭의 지퍼를 내리고 일어나 깨진 유리창으로 다가갔다. 유리창 구멍에서 흘러드는 바람에 운무가 섞여 있지 않았다.
창문을 열었다. 창밖은 그냥 맨 하늘, 운무가 사라진 하늘이었다. 크레용 냄새가 날 듯 짙은 남색 하늘에 숱한 별들이 박혀 있었다. 그중에는 샛별도 있었다. 새벽 4시 30분. 히말라야의 일출을 가각(街角)의 방해 없이 보고 싶었다. 서둘러 숙소를 빠져나왔다.
광장에 이르렀을 때만 해도 내 머리 위에서 반짝반짝 빛나던 별들은 순환도로에 접어들자, 점점 희미해졌다. 순환도로의 중간에 도착했을 때는 샛별만 남아 글썽이더니 이윽고 그것마저 희미해지면서 공제선이 선홍빛으로 물들어 갔다. 그 빛은 칸첸중가의 흰 이마도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이윽고 동쪽 하늘 전체가 붉게 물들더니 검은 톱날 같은 능선 뒤에서 크고 둥근 해가 새빨간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설산 칸첸중가는 순간마다 미묘하게 변하는 빛 속에서 하얀 봉우리들과 능선과 설면을 드러냈다. 거기서 숨쉬기마저 거북한 감동이 냉랭한 공기를 타고 물결쳐 왔다.
해는 빠르게 솟고 있었다. 검은 산등성 뒤에서 그 온전한 모습을 다 나타내는 순간에는 퉁겨지는 것만 같았고, 바로 그 순간에는 얼마나 많은 새들이 일제히 울어댔는지 모른다.
공제선 위로 해가 완벽히 둥근 모습을 드러내고, 하늘을 나는 새들이 아주 많아졌을 때쯤에야 나는 내가 이슬에 젖은 철제 난간에 기대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산비탈에 순환도로를 내기 위해 조성한 축대를 따라 길게 설치한 난간에는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를 사람들이 드문드문 경건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오전 내내 이리저리 어슬렁거렸다. 나는 이제 막 거기 도착한 휴가 여행자처럼 활기와 호기심에 차 있었다. 광장과 순환도로와 산비탈 마을과 시장도 활기가 가득했다. 햇살과 푸른 하늘은 그렇게도 좋은 것이었다.
순환도로와 광장에는 많은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환한 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백일하(白日下)에 드러나 이미 밋밋해져 버린 칸첸중가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 누더기를 벗어 이를 잡는 거지들, 주인 없는 개들도 덩달아 껑충거리고 있었다.
산비탈 골목 여자들은 빨래와 이불과 옷가지들을 내다 너느라고 분주했다. 양지바른 담벼락에 앉아 소꿉 노는 아이들이 입은 낡고 후줄근한 수제 스웨터는 햇살 속에서 진달래꽃 무더기처럼 소담스러웠다. 광장도 활기에 차 있었다. 운무 속에서는 눅눅한 양잿물 조각처럼 보였던 좌판 상인의 암염(巖鹽)이 햇살 아래서 자수정처럼 빛났다.
죽은 물고기처럼 햇살 위에 떠 있는 자들도 없지 않았다. 천지에 가득한 활기를 더욱 여실히 보여주려는 듯 악취를 풍기며 길바닥에 쓰러져 자는 부랑자들이 그들이었다. 개를 끌어안고 자는 자도 있었고, 시큼한 토사물에 퉁퉁 부은 뺨을 대고 자는 주정뱅이도 있었다.
골목 밑에서는 운무가 스멀스멀 낮은 포복으로 광장을 향해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운무는 돌아 볼 때마다 한 발씩 가까이 따라붙더니 티브이 타워 언덕에 올랐을 때는 어느새 발목을 휘감았다. <</span>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