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세비야는 카르타고가 안달루시아를 정복하면서 그 역사가 사실상 시작이었다. 1차 포에니 전쟁에서의 패배와 더불어 굴욕적인 강화는 당연히 많은 카르타고 인들의 원성이 극도로 높았으며, 특히 전쟁으로 단련된 무인 계급에서 분노와 원한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러한 무인들 중 하나가 하밀카르 바르카스(Hamilcar Barcas, B.C 270 ~ B.C 228)였다.

B.C 202년, 고대 로마 공화정과 카르타고가 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격돌한 자마 전투(Battle of Zama)를 묘사한 16세기의 유명한 판화 작품, 출처 : British Museum
대대로 카르타고에서 장군을 역임한 가문의 후계자인 그는 카르타고 군의 장성으로 시칠리아에 파견되어 로마군을 몇 차례 대패시켰지만, 카르타고의 전체적인 패배와 굴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하여 종전 후 1년 뒤에는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한 카르타고 용병대가 사르데냐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이들의 요청에 응한다는 명분으로 파병한 로마의 군대가 사르데냐까지 점령해버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다.
그러한 상황이다 보니 카르타고의 상권은 축소되고, 지중해 연안국들이 카르타고보다 로마와 교역을 벌이게 됨으로 인하여 다시 전력을 보강해서 설욕할 전망도 불투명하게 되었다. 이에 로마에 거대 배상금을 갚고 로마에 복수하기 위한 새로운 기지를 찾을 수밖에 없게 되었고 이에 이베리아 반도의 히스파니아에 상당한 양의 은광이 발견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게 된다.
그곳은 그 때까지만 해도 로마인들도 히스파니아에서 거대한 은광이 발견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로마가 잘 모르는 곳에서 군사 훈련을 하고 배상금도 완납하며 로마를 침공할 수 있는 지역에서 새로운 전략을 위해 히스파니아로 넘어가 로마와의 결전을 준비하기로 했다. 히스파니아는 이미 페니키아 시대부터 종종 상인들에 의해 익히 알고 있던 지역인데다가 카르타고가 안달루시아 지역에 조금씩 식민지를 확장하고 있었다. 이는 카르타고가 이베리아 반도에 입성한지 오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하밀카르는 이베리아 반도에 진출하여, 페니키아인들의 뒤를 이어 경제적 부를 늘려가면서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반도 내에 여러 식민 도시를 건설했는데, 그 중심 거점이 카르타헤나(Cartagena, “새로운 카르타고” 라는 뜻)였다. 또한 스페인 최대의 항구 도시이자 지중해에서 가장 큰 도시인 바르셀로나 역시 카르타고인들이 세운 도시다. 그러면서 카르타고는 당시 피레네 산맥 남쪽의 반도 대부분 지역을 쉽게 장악해갔다, 이베리아 반도는 당시 이베리아인과 켈트족이 거주했는데 약 10년 동안 치루어 왔던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패배함으로써 이베리아인과 켈트족은 카르타고에 복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