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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 이종철 칼럼니스트
  • 등록 2026-07-04 21:40:48
  • 수정 2026-07-04 21:44:02

    그림 출처: 제미나이

발터 벤야민의 <이야기꾼>이라는 글에는 스페인 이비사섬 서쪽 해안의 칼라 옌티아(Cala Llentya) 절벽에 위치한 이비사의 해시계 이야기가 나온다. 이 해시계에는 다음의 글귀가 적혀 있다. "마지막 시간은 많은 이들에게 온다." 벤야민은 이 글에 대해서 의미 심장한 글을 덧붙인다. "오늘날 시민들은 죽음으로부터 깨끗하게 보존된 공간 속에 살고 있다. 그들은 영원의 건조한 거주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끝이 다가오면, 상속자들에 의해 요양소나 병원으로 치워진다." 


여기서 '마지막 시간'이 무엇일까?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종말의 시간이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필연적으로 맞이하는 죽음의 시간이다. 중세인들에게 죽음은 삶과 동떨어진 낯선 현상이 아니었다. 로마 병정들이 개선행진을 할 때 포로로 잡힌 노예들이 합창하는 소리가 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당신들이 지금은 승자의 영광을 누리고 있을지 몰라도, 당신들 역시 패자가 되고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죽음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사실상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있는 것이다. 일찌기 어둠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os)가 말했듯, 삶이 시작하는 순간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길래 삶이 빛나는 것이다. 월명사가 쓴 신라의 향가 <제망매가>에도 그와 비슷한 구절이 있다. "죽고 사는 길, 예 있으매 저히고". 


그런데 현대인들은 이런 죽음을 망각하고 외면할 뿐만 아니라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삶의 세계로부터 배제시키고 있다. 우리의 삶은 결코 단절이 없고, 죽음은 삶과 다른 세계로 간주된다. 현대인들은 죽음을 예외적이고 병리적인 현상으로 관리되고 있다. 벤야민이 지적하듯, "오늘날 시민들은 죽음으로부터 깨끗하게 보존된 공간 속에 살고 있다. 그들은 영원의 건조한 거주자들이다." 하지만 죽음은 삶의 의미를 깨우쳐 주는 실존의 중요한 계기이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소중한 것이고, 그 삶의 의미가 살아날 수 있다. 죽음은 삶의 매 순간의 의미를 깨닫게 해줄 수 있다. 만일 인간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고 하면 어떻게 살아 있다는 것의 소중함을 알 수가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벤야민은 죽음에 무지하고 죽음을 외면하는 현대인들을 '영원의 건조한 거주자들'이라고 한 것이 아닐까? 이런 건조한 거주자들은  죽음을 자신들의 삶과 다르게 타자화한다. 죽은 시신은 그저 사물처럼 처리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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