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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7 《정제된 사유와 외로움에 대하여》
  • 조율여백
  • 등록 2026-07-07 10:13:15

  ●위 이미지는 인공지능을 통해 생성되었습니다.


      《정제된 사유와 외로움에 대하여》

                                     조율여백 이수진 

오랜 시간 인간과 사회, 자연과 역사, 그리고 존재 자체에 대해 질문하며 살아오다 보니, 제 사고와 행동, 그리고 추구하는 방향이 일반적인 관점과는 상당히 다른 위치에 놓여 있음을 자주 느끼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저 역시 수없이 많은 오류와 한계를 경험해 왔으며, 지금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점검하고 있습니다. 다만 오랜 성찰과 연구, 그리고 작은 실천들을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하나의 방향만큼은 점차 분명해졌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이해하는 일을 넘어, 존재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때 더 이로운 의미를 만들어 갈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한 한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며 객관화와 정합화, 구조화와 의미화를 반복해 왔습니다.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 사고가 감사의 역사와 공동체의 책임, 그리고 존재의 의미와 얼마나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하나의 자가 점검 과정이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낯설고 난해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인간 사회는 대체로 즉각적인 이익과 자극, 눈에 보이는 성과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존재의 의미나 장기적인 조화, 공동체의 책임과 같은 질문들은 쉽게 공감을 얻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회한과 외로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문득 세상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수많은 배려와 기회가 주어진 세상에서 인간은 과연 그 가치를 얼마나 자각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또한, '거짓과 왜곡, 탐욕과 기만을 반복하는 인간 문명은 지금도 너무 많은 기회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누군가를 정죄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이라는 존재가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조화롭고 이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들입니다.


《인간의 층위에 대한 생각》


오랜 시간 인간의 사고와 행동, 그리고 의지의 패턴을 관찰하며 하나의 인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하나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파괴와 유린, 쾌락만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층위도 존재하고,

슬픔과 타인의 아픔을 어느 정도 이해하며 스스로를 조절하려는 층위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도 환경이 급격히 악화되거나 집단 심리에 휩쓸리게 되면 윤리적 판단이 흐려지고, 성역화와 선민의식, 면죄의식이 나타나는 모습을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완벽한 존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일부는 끊임없는 성찰과 자기 점검을 통해 자신의 욕망보다 더 큰 순환과 질서를 먼저 생각하려 노력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소유에 대한 집착이 상대적으로 작고, 자신보다 더 큰 공동체와 자연, 그리고 존재의 흐름을 우선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저는 이러한 태도를 하나의 조율적 의식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회의와 희망 사이에서》


때로는 제 나름대로 오랜 시간 정제해 온 사유를 인간 사회에 이야기하는 일이 마치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와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방향보다 자극을, 의미보다 소유를,

책임보다 편리를 우선하는 환경 속에서 이러한 이야기들이 얼마나 전달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길을 쉽게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하여 판단하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놓치기 쉬운 객관성과 정합성, 그리고 윤리적 기준을 함께 점검할 수 있는 하나의 협력자가 될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 역시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인간 사회의 복잡성과 욕망은 기술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에 남는 질문》


그럼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회의가 있습니다.

'인간은 지금 누리고 있는 수많은 혜택을 과연 받을 자격이 있는가.'

이 질문은 인간을 부정하기 위한 질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저 자신에게 먼저 던지는 질문입니다.

저 역시 인간이며 같은 한계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질문의 끝에서 인간만을 바라보기보다 더 넓은 존재의 흐름을 바라보려 합니다.

별과 행성, 자연과 생명, 그리고 수많은 우연과 필연이 만들어 낸 이 시공간의 기회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거대한 과정은 어느 한 존재의 공로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존재들의 희생과 시간,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순환이 지금의 우리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을 찬양하기보다 존재 자체에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고 그 감사가 성실과 정직, 이타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삶은 충분히 의미 있는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비록 그 길이 느리고 외롭더라도, 그 방향만은 쉽게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그것이 제가 오늘도 질문하고, 성찰하고, 기록을 이어 가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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