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나폴레옹의 황후 조세핀의 부채
  • 알렉세이정 칼럼리스트
  • 등록 2026-07-07 16:30:04

이사벨라 여왕부터 역대 스페인 궁정의 여인들은 자신들이 가졌던 부채들을 수집하는 경향이 있다. 나폴레옹의 첫번째 부인인 조세핀의 부채도 이곳에 있다. 참고로 나폴레옹과 조세핀은 1809년에 이혼했다. 그런데 세비야 알 카사르 박물관의 부채들을 수집한 장본인이 바로 조세핀이라고 한다. 나폴레옹의 첫 부인 조세핀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나폴레옹의 전기를 보면 조세핀이 어떤 인물인지 상세히 언급되고 있지 않다. 다만 그를 사교장에서 만난 군관인 나폴레옹이 6살 연상인 그녀에게 청혼하여 결혼하게 되었던 것으로 간단히 언급되기도 한다. 

나폴레옹의 황후 조세핀의 부채, 출처 : 스페인 세비야 알 카사르 박물관 소장

조세핀은 1763년 6월 23일 서인도 제도의 프랑스령인 마르티니크 섬의 트루아질레 태생으로 유복한 집안의 귀족 출생이기 때문에 미모가 대단했지만 성품으로는 굉장히 사치가 심했고 가난한 백성들에 대한 공감 능력이 완전히 결여된 사람이었다고 한다. 1779년 프랑스군 장교였던 자작 보아르네와 결혼해 그와의 사이에 아들 외젠과 딸 오르탕스를 낳았지만 결혼 초반부터 두 사람은 사이가 좋지 않아 1783년에 끝내 이혼했다. 이혼 사유는 조세핀의 지나친 사치와 바람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얼굴 하나는 끝내주게 미인이었던듯 싶다. 조세핀의 전 남편 보아르네는 프랑스 혁명 시기인 1794년 7월 23일에 처형되었다. 처형의 이유는 로베스피에르를 비난했기 때문이었다. 


조세핀은 이혼한 후 마르티니크 섬의 친가로 돌아왔지만 프랑스 혁명으로 인한 폭동이 염려되어 다시 프랑스에 들어왔다. 그러나 보아르네의 아내였다는 이유로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투옥되었지만 로베스피에르가 처형되었기 때문에 석방되었다. 그 후 조세핀은 파리 사교계에서 뛰어난 미색으로 인해 명성을 날려 총재 정부의 주역이었던 프랑수아 바라스를 포함한 몇몇 유명 정치인의 애인이 되었고 나폴레옹이 그녀에게 청혼해서 결혼했던 것이다. 그러나 조세핀은 나폴레옹을 풍류를 모르는 시시한 남자라고 보았기에 애인을 몰래 만들어 불륜을 반복해 저질렀으므로, 나폴레옹의 가족들은 그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세핀은 나폴레옹에 의해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치르고 프랑스의 황후 자리에 올랐으나 나폴레옹의 친가 식구들은 그녀를 여전히 좋아하지 않았기에 대관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고하니 나폴레옹의 집안은 그녀를 어지간히 좋아하지 않았던듯 싶다. 그런 그녀의 기행으로만 본다면 나같아도 싫을듯 싶다.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원정하던 중에, 조세핀의 불륜을 알게 되고 프랑스로 귀국한 후 조제핀과 이혼하기로 결심했으나 조세핀의 전 남편의 자식들인 아들 외젠과 딸 오르탕스의 탄원으로 결혼 생활을 유지하게 된다. 황후로 즉위한 조제핀의 사치는 황후가 되기 전보다 훨씬 심해졌는데 그녀가 사용한 드레스는 900여벌, 장갑은 1000켤레, 구두는 500켤레가 넘었다. 한해에 장갑 985개와 신발 520개를 주문하기도 했는데 그 비용을 충당하려고 조제핀은 나폴레옹에게는 비밀로 자식들에게 돈을 빌리기도 했다. 


이러한 사치 덕에 파리의 의상실과 보석상은 떼돈을 벌었으며, 프랑스의 웅장하고 화려한 궁정은 타국보다 활기를 띠었다. 이 때문에 그녀는 주위 사람들에게서 사치를 좋아하는 경박한 여자라는 평을 듣게 된다. 조세핀은 10년이 넘는 결혼 생활 동안 자녀를 낳지 못했는데 나폴레옹은 조세핀이 적자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혼했다. 그러나 그런 이혼에 적자를 낳지 못했다는 것은 표면적인 부분이고 엄청난 사치와 지속적인 불륜이 원인이었다는 것이 이혼 사유이기도 했다. 


0
유니세프
국민 신문고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