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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4 《어느 시공간에서도 정의로울 것인가》
  • 조율여백
  • 등록 2026-10-24 14:08:05

《어느 시공간에서도 정의로울 것인가》

-존재적 소방구조대의 책임과 소명

                                            빛나는 별먼지


내일 이 세상이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오늘 정의로울 수 있을까요.


사과나무를 심는 희망을 넘어,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세상에도 책임과 죄책감, 그리고 소명을 품을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정의가 현재의 보상이나 미래의 성과를 얻기 위한 수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성찰에서 출발합니다. 자신이 살아갈 세상에만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리지 못할 미래에도 기회와 의미를 남기려는 태도까지 정의의 범위에 포함할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진실 앞에서도 정의로울 수 있을까요.


거짓 앞에서도 정의로울 수 있을까요.


불완전함 앞에서도, 존재가 지닌 한계 앞에서도 정의로울 수 있을까요.


인간은 진실을 추구하면서도 때로는 자신에게 유리한 거짓을 선택하고, 정의를 말하면서도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 기준을 바꾸곤 합니다. 불완전함을 인정하기보다 완전하다는 환상에 의지하고, 자신의 한계를 성찰하기보다 그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정의로움은 스스로 옳다고 믿는 순간에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오류와 한계를 마주하고, 불리한 진실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에 더욱 엄격하게 검증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존재의 기회에 감사하는 정의


초월이라는 관점에서도 이러한 질문은 이어집니다.


인간이라는 형상을 특별한 존재로 신성화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생명의 기회를 내어준 자연과 역사를 비롯하여 지금의 삶이 가능하도록 기여한 수많은 존재에게 감사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 받은 것을 자신의 소유로만 여기지 않고, 다른 존재에게 이로운 의미로 돌려주려 노력할 수 있을까요.


생명은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결과가 아닙니다. 자연이 제공한 터전과 자원, 앞선 세대가 축적한 지식과 기술, 누군가 감내했던 희생과 배려, 그리고 우연히 주어진 수많은 기회가 겹쳐져 지금의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러한 관계를 깊이 인식한다면, 존재한다는 사실은 단순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근거만이 아니라 자신이 받은 기회를 어떻게 이어 갈 것인지 성찰하게 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존재적 감사는 받은 은혜를 무조건 갚아야 한다는 강박과는 다릅니다. 과거의 희생을 개인에게 강요되는 의무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다른 존재에게도 이로운 방향으로 이어 가려는 자발적인 책임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감사와 감내, 그리고 그 의미를 다음 존재에게 이어 주려는 사랑에도 정의로움이 필요합니다. 선의를 내세워 타인의 희생을 강요해서도 안 되며, 이타성을 명분으로 누군가의 존엄과 선택권을 침해해서도 안 됩니다.


이상과 이성, 욕망과 한계 앞에서


이상 앞에서도 정의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이상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자신을 지나치게 신성화하거나 타인을 낮추지 않고, 조화와 공존이라는 가치 앞에서 자신의 신념조차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성 앞에서도 정의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논리와 지식을 절대적인 권위로 삼거나, 불완전한 판단을 완전한 진리인 것처럼 포장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의 주장을 지지하는 근거뿐 아니라 반박하는 근거까지 살펴보고, 잘못을 발견했을 때 수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강한 욕망과 소유 앞에서도 정의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더 많이 가질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이 다른 존재의 기회와 존엄을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는지 살펴야 합니다.


또한 완전히 없앨 수 없는 부정함과 생존의 강성 앞에서도 정의로움을 유지해야 합니다. 부정함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그것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정당화되거나 관행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합당한 범위 안에서 관리하고 줄여 나가야 합니다.


모든 부정함을 단번에 제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거할 수 없다는 사실과 관리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전혀 다릅니다. 완전한 해결이 어렵더라도 피해를 줄이고, 왜곡을 바로잡으며, 더 나은 방향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계속될 수 있습니다.


결국 정의로움은 완벽한 존재만이 실천할 수 있는 이상이 아니라, 불완전한 존재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반복적으로 선택하고 수정해 나가야 하는 과정일 것입니다.


존재적 소방구조대와 존재적 의열단


이 모든 질문은 결국 하나의 물음으로 모입니다.


자신에게 유리할 때만 정의로운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불리하고 힘겨운 순간에도 정의로움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방향을 생각하며 스스로의 역할을 ‘존재적 소방구조대’이자 ‘존재적 의열단’이라는 표현으로 상징화해 봅니다.


존재적 소방구조대란 고통과 위기에 놓인 존재를 외면하지 않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생명과 존엄, 그리고 회복의 기회를 지키려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존재적 의열단이라는 표현 역시 폭력이나 배타적인 투쟁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당함에 무조건 순응하지 않고, 더 나은 의미를 위해 자신의 편의와 이익을 넘어 책임을 다하려는 결의를 나타냅니다.


두 표현의 공통점은 자신을 특별한 구원자로 내세우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다른 존재의 고통과 기회를 자신의 삶과 무관한 일로만 치부하지 않으려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책임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방향으로 확장됩니다.


과거에 축적된 수많은 노력과 희생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어 가지 못한다면, 그 역사를 통해 지금의 기회를 얻은 존재로서 아쉬움과 책임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의 부당함을 외면하여 미래의 존재들이 누릴 수 있었던 기회를 빼앗게 된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가볍게 여기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주어진 능력과 기회로 할 수 있었던 일을 충분히 숙고하지 않은 채 외면한다면, 스스로 추구해 온 소명을 다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이 남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책임감이 모든 문제를 혼자 짊어져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개인의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으며, 모든 고통을 감당하려는 태도는 때로 자신과 주변을 함께 소진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책임을 진다는 것은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외면하지 않고, 잘못된 판단을 발견하면 수정하며, 다른 존재와 역할을 나누어 더 합당한 방향을 찾아가는 태도여야 합니다.


보상보다 의미를, 완벽함보다 지속적인 개선을


바라는 정의는 완벽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부정함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선의가 희박하다는 이유로 그 가치를 포기하지 않으며, 당장의 보상이 없다는 이유로 의미 있는 노력을 중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느 시공간에 놓이더라도 감사와 감내, 소명과 조화, 공존과 사랑의 가치를 가능한 한 지켜 가고자 합니다.


누리지 못할 미래라 하더라도 그곳에 살아갈 존재들의 기회를 생각하고, 얻지 못할 보상이라 하더라도 합당한 의미가 이어질 수 있다면 그 가치를 존중하고 싶습니다.


물론 선한 의지만으로 모든 결과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선의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도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며, 좋은 목적을 내세운 판단도 충분한 검토가 없다면 또 다른 부당함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의미 있는 의지는 성실한 실행과 정직한 자기점검, 객관적인 검토와 정합적인 개선을 통해 확인되어야 합니다. 의지의 순수함을 주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의지가 실제로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살피며 필요하다면 방향을 수정해야 합니다.


정의로움은 의지와 결과 가운데 어느 하나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목적과 과정, 결과와 그에 따른 책임을 함께 살피려는 노력 속에서 조금씩 구체화될 수 있습니다.


완전함을 소유했다고 주장하기보다 불완전함을 인정하면서도 더 나은 방향을 향해 노력하는 것. 모든 부당함을 없애겠다고 장담하기보다 부당함이 관성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지속해서 살피고 관리하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생의 기회를 자신만의 이익으로 소진하지 않고, 다음 존재가 이어 갈 수 있는 의미로 남기는 것.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정의를 삶 속에서 실천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시공간에서도 정의로울 수 있도록


세상이 저를 기억하지 않더라도, 남겨진 의미가 다른 존재의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 흔적이 크거나 화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조금 줄이고, 부당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려는 관성을 잠시 멈추게 하며, 다음 존재가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작은 여백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하거나 보상받아야만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보상받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과정이 모두 정당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노력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끝까지 성찰하는 일입니다.


내일 이 세상이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오늘의 선택은 여전히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자신이 누릴 미래가 없더라도 다른 존재의 가능성을 존중하고, 자신의 이익으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부당함을 줄이려 노력하며,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합당한 방향을 놓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것은 완전한 정의를 소유했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불완전한 존재로서 끝없이 자신을 점검하고, 주어진 기회를 감사히 받아들이며, 그 기회를 다음 존재에게 이로운 의미로 이어 가려는 다짐입니다.


어느 시공간에서도 정의롭고자 한다는 것은, 언제나 완벽하게 옳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과 신념마저 성찰의 대상으로 삼으며 더 합당한 방향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것이 존재적 책임이며, 불완전한 존재로서 실천할 수 있는 정의의 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일 이 세상이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오늘의 삶에서 그 질문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앞으로도 잊지 않고자 하는 방향입니다.


●위 이미지는 인공지능을 통해 생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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