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복
세 스님은 북인도 쿠시나가르_Kushinagar에서 석가모니 붓다 8대 성지 순례를 끝냈다. 한 스님은 쿠시나가르에 남고, 한 스님은 첫 순례지였던 네팔의 룸비니로 갔다. 무상 스님은 왔던 길을 되짚는 길을 택했다.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천신만고’ 끝에 비하르주의 수도 파트나 외곽에 도착했을 때 무상 스님의 몰골은 말 그대로 걸사_乞士였다. 며칠 쉬면서 빨래도 하려고 찾아 들어간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여행자들이 입다가 두고 간 옷가지 중에 더 입어도 될 만한 것들을 세탁하여 팔고 있었다.
첫날은 못 봤고, 다음날은 무심하게 봤는데 셋째 날에는 꾀가 났다. 게스트 하우스 로비에는 다리미질까지 해서 얌전하게 걸어둔 힌두풍의 새것 같은 옷가지들도 보였지만 스님은 세탁해서 대충 접어놓은 허름한 옷가지 중에서 골랐다. 무릎을 가리는 정도의 펑펑한 반바지 두 개와 얇은 면으로 만든 헐렁한 긴팔 티셔츠 두 개였다.
방에 들어와 누군지 모를 여행자가 입었던 옷을 입고 서서 금방 벗어 놓은 동방아(간편하게 입는 짧은 두루마기)와 적삼과 바지 등 먹물들인 겉옷들을 내려다보자니 눈물이 핑 돌았다. 출국할 때는 빳빳하게 풀을 먹여서 날아갈 듯 산뜻했던 먹물 옷들이 풀이 죽고 여기저기 닳아서 넝마처럼 보였다. 아니, 구렁이가 허물을 벗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게스트 하우스를 떠나 역으로 향하는 스님의 배낭 속에는 성지의 사원에서 예불하고 기도할 때 동방아 위에 둘렀던 가사_袈裟만 들어 있었다. 그 가사는 비구니계와 함께 받은 진정한 의미의 승복이었다.
변복_變服했을 뿐인데 천애 고아로 사바세계에 내던져진 것 같았다. 불안하고 무섭고 외로웠다. 군중들이 후줄근한 곡물 자루처럼 앉고 눕고 서성이는 파트나 역전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기가 질리고 숨이 막혀서 주저앉을 뻔했다.
5년 넘게 입었던 군복을 벗었을 때의 느낌이 되살아났다. 국가가 부여하고 통제하며 보호하는 제복을 벗고 일반 사회에 적응하는 데는 알몸으로 기는 애벌레의 고통이 따랐다고 했다. 밖에 나가기가 싫었다. 무섭고 외로웠다. 그래도 거기는 태어나서 자란 익숙한 땅이었다. 전화만 걸면 달려올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는 곳이었다. 파트나는 달랐다. 인도 전역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범죄가 많은 비하르주의 수도가 파트나였다. 또한 인구가 많은 도시였지만 아는 주민은 아무도 없었다.
가까스로 광장을 가로질러 건물 안으로 들어간 스님은 중음신들을 연상시키는 군중들 속에서 동양인 여행자 넷을 발견했다. 두 남자는 한국인이었고 두 여자는 일본인이었다. 그들도 바라나시로 간다고 했다. 순례 중에 많은 한국인들을 만났지만 그렇게 반가운 적은 없었다. 그들 넷은 모두 바라나시가 초행이었지만 스님은 바라나시는 물론 거기서 가까운 사르나트까지 두 도반과 함께 한 순례를 통해 이미 경험한 곳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만행은 파트나역에서 시작되었다. 스님은 그들과 일행이 된 것만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스님은 아는 소리를 삼가고 말을 아꼈다. 대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사바세계의 희로애락을 듣는 일이 마치 어렸을 때 듣던 라디오 드라마처럼 경이로웠다. 바라나시에 도착해서 잠시 같은 숙소에 머물다가 헤어질 때까지 그들 중 아무도 스님이 승려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대필 작가
“반바지에 티셔츠, 더벅머리에 선글라스를 끼고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콜카타 하우라 역전 광장으로 걸어 나온 배낭여행자, 그는 무상 스님이었다.”
내 일기장에 기록된 스님의 만행 이야기는 위와 같이 끝났는데, 사실대로 말하자면 저 끝 문장은 나의 상상이었음을 밝힌다. 스님은 시킴_Sikkim에 가서도 말을 결코 길게 하지 않았다.
“그토록 단단하게 뭉쳐져 있던 도반들의 화합과 인내는 성지에서 깨지고 또 깨졌다. 성지 순례 도중에도 물론 참회하고 또 참회했지만, 순례를 마친 후에는 서로 주고 서로 받은 상처를 각자 다스리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앞에서 소개한 저런 얘기도 실은 내 나름대로 재구성한 것이었음을 마저 밝힌다. 저런 식의 추상적인 재구성이 조금도 만족스럽지 않지만, 저런 방식으로 쓰는 버릇이 귀신처럼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내가 술에 몹시 취해서 얼토당토않은 않은 거짓말을 꾸며내어 뇌까리는 버릇을 못 고치는 그것과도 같다.
페마네 뚱바집에서는 칸델라(압축식 석유등)가 토치램프_torch lamp 같은 소리를 내며 백열등보다 훨씬 밝은 빛을 뿜고 있었다. 스님의 성지 순례 얘기가 끝나자 나는 말했다.
“그래도 성지 순례를 마치셨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아니, 훌륭한 거죠.”
“그럴까요?”
“저도 몇 년 전에 셋이 떠났다가 혼자 귀국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티베트의 카일라스를 목표로 떠났는데 수속이 여의치 않아서 백두산으로 갔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직업과 관련이 있는 여행이었나요?”
“그런 셈이죠. 셋 다 글 쓰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세 분 다 작가라는 말씀이군요?”
“둘은 확실한 작가지만 저는 좀 어정쩡합니다. 여성 잡지 기자 명함을 가진 대필 작가라고나 할까요? 여성 잡지에 나오는 ‘육필 수기’는 대부분 잡지 기자들이 취재원의 얘기를 듣고 재구성해서 쓴 겁니다. 독자들의 특별한 흥미를 끌 수 있겠구나 싶은 사람을 일간지나 주간지 기사에서 찾는 데서 우리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일부러 서울에서 아주 먼 곳에 사는 사람만 찾았습니다. 그렇게 멀리 한 번씩 바람 쐬는 게 좋았습니다. 그러느라고 회사 출장을 전국으로 다녔습니다.”
“전국으로요?”
“네, 전국으로요. 부산의 어느 카바레 댄서의 얘기도 듣고, 귀순한 남파 간첩 얘기도 듣고, 아편 몇 개를 뒷마당에 심은 죄로 남편이 교도소에 수감되자 섬에 혼자 남은 부인 얘기도 듣고 그랬죠. 저명인사의 부인이나 따님, 연예인, 종교인 등등 취재원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랬군요.”
“한 달에 두세 꼭지씩 육필 수기를 쓰면서 3년을 그렇게 정신없이 살았더니 진이 다 빠지더군요. 그때가 여성 잡지 전성기여서 여성 잡지들이 자꾸 생겼습니다. 그만두고 몇 달 쉬어도 창간하는 잡지사에서 일 좀 해 달라고 했죠. 세 번째 직장부터는 데스크 직속으로 기자들이 제출한 수기를 읽고 교열 보는 일을 했습니다. 그건 더 지겨운 일이었지요. 한때는 대기업 홍보실에서 사보를 만들기도 했고요.”
입이 말라서 뚱바를 한 모금 길게 빨았다. 스님도 나처럼 한 모금 길게 빨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좀 전처럼 “그러셨군요.”라고 말한 후 내 눈을 바라보았다. 스님은 내 얘기를 더 듣고 싶은 것 같았다. 나도 말할 상대가 앞에 있는 게 기뻤다.
“저도 실은 승려가 되고 싶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승려가 되겠다고 가출했다가 잡혀 오기도 했고요. 어찌어찌하다 정신 차리고 보니 이미 아내가 있고 애도 있는 겁니다. 식구들 밥벌이를 해야만 했죠.
“지금은?”
“지금도 미련이 남아서 만행 다니는 스님들이 제일 부럽습니다.”
“......”
“뚱바 한 통씩 더 할까요?”
“하세요. 그런데 저는 그만할게요.”
“아, 그러시면 저도 그만하렵니다. 칸델라를 켜놔서 실내 공기가 탁하네요. 자, 일어날까요?”
밖의 공기는 과연 맑았다. 올 때보다 별들이 더 많이 보였다. 숨을 쉬면 별빛이 심장을 스치는 듯했다. 나오기를 잘했다 싶었다. 스님도 같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그러나 미련이 남았다. 뚱바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하고 싶은 얘기가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승려가 되겠다고 가출했던 이야기 말이다.
우리가 걸어오는 사이에 전기가 들어왔는지 알리멘트의 창문들이 빛을 뿜고 있었다. 문을 열자, 타파가 환한 얼굴로 반겼다. 그는 다음 날 정오 무렵에 파업이 풀린다고 했다. 그러나 갱톡으로 가는 버스 운행이 바로 재개될지는 미지수이니 10인승 합승 지프를 이용하는 게 낫다면서 좌석을 예약하겠냐고 물었다. 스님도 나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타파는 전화로 좌석 두 개를 예약하고서 아슬아슬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예약한 좌석이 마지막 남은 두 좌석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12시 10분까지 합승 지프가 우리를 태우러 올 거라고 했다. 요금은 버스비의 두 배쯤이었다. 스님은 타파와 나를 향해 합장한 후, 나에게는 '내일 봐요'라고 말하고 돌아서서 계단을 올라갔다.
혼자 남아서 타파에서 몇 가지 확인했다. 합승 지프는 다르질링에서 갱톡까지 보통 5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도중에 두어 번 카페에 들러서 차를 마실 시간이 있다고 했다. 타파는 카페에 여성 승객용 화장실이 있는 카페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제야 나는 스님은 화장실이 급해서 바로 방으로 올라갔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방에 돌아와 고등학교 때 승려가 되겠다고 가출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금방 한 페이지가 다 찼다. 스님과 뚱바를 마시며 떠드는 기분으로 썼기 때문일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또 한 페이지가 차고, 또 한 페이지가 차면서 기나긴 이야기가 이어졌다. <</span>계속>
#장편소설_칸첸중가_031_변복_대필작가
ㅕㄴ복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