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性尊重’을 源泉封鎖하는 現代人의 生活樣式
폐쇄된 성채(城砦)와 잃어버린 시선 — 현대적 고립과 여성 존중의 사회학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30대와 40대를 넘어 싱글로 살아가는 유능하고 매력적인 여성들을 만나는 일은 더 이상 생소한 풍경이 아니다. 흔히 사회학자나 인구학자들은 이를 단순한 남녀 조건의 불균형이나 사회적 성역할의 변화, 혹은 스펙과 학력에 따른 결혼 시장의 선택 차이로 설명하곤 한다. 그러나 과연 인간의 삶과 연대의 문제를 단순히 도표와 수치, 혹은 '조건의 맞물림'이라는 사회과학적 틀로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문제를 조금 더 깊이 성찰해 보면, 그 이면에는 우리가 지나쳐 버린 ‘주거 환경의 변화’와 ‘공동체의 해체’라는 물질적·구조적 서사가 자리 잡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의 주거 형태는 대가족 제도나 낮은 담장의 마을 공동체에 기반해 있었다. 물론 그 시절이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다소 팍팍하고 궁핍한 환경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거칠게나마 이웃과 친족이 서로의 삶을 지켜보고 얽혀 살던 시절에는, 집안 내부의 일이라 할지라도 외부의 시선과 도덕적 평판이라는 일종의 ‘사회적 견제 장치’가 작동하고 있었다.
조선시대나 이전 세대를 단순히 ‘남존여비’라는 자극적인 프레임으로만 단정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대부 가문이든 민가든, 부인의 높은 자질과 덕망이 입증되면 시부모나 형제, 이웃, 나아가 하인들까지 시선이 존재하는 한 함부로 아내를 업신여기거나 폭력을 행사하기 어려웠다. 외부의 시선은 집안이라는 작은 사회 내에서 훌륭한 인품을 가진 여성의 지위와 존엄을 보호해 주는 일종의 울타리가 되어 주었던 셈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로 접어들며 도시는 방음재와 두꺼운 철문으로 무장한 ‘아파트’라는 효율적인 밀폐 공간으로 채워졌다. 핵가족화와 주거의 완전한 격리는 인간에게 고독한 자유를 선사한 듯하지만, 역설적으로 철문 안쪽의 공간을 외부의 시선과 통제가 전혀 미치지 않는 ‘작은 봉건 성채’로 만들어 버렸다.
외부와의 통로가 단절된 밀폐된 공간 내부에서는 사회적 지위나 지성이 무색해진 채, 자칫 가장 야만적인 힘의 논리나 일방적 권력 구조가 작동하기 쉬워진다. 오늘날 똑똑하고 유능하며 스스로의 삶을 가꿀 줄 아는 여성들이 결혼이라는 선택 앞에서 유독 깊은 주저함과 불신을 갖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결혼이라는 결단이 곧 아무런 보호막도 없는 밀폐된 성채 속에 홀로 갇히는 불확실한 모험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수한 인재들의 사회적·인간적 고립은 개인의 불행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가 누릴 수 있는 풍요로운 지혜와 행복의 자원을 낭비하는 안타까운 비극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냉정한 격리의 시대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해답은 단순한 옛날로의 회귀가 아닌, ‘새로운 차원의 열린 공동체’를 모색하는 데 있다. 과거 중국 광동성의 토루(土樓)나 현대 유럽의 새로운 코하우징(Co-housing) 모델처럼, 개별 가구의 독립된 사생활과 안락함은 완벽히 보장하되, 중앙의 광장이나 공용 공간을 통해 이웃 및 친지들과 끊임없이 교류할 수 있는 연대형 주거 공간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뜻을 같이하는 친구나 동료, 친척들이 일정 수 이상 모여 거주하며, 사생활의 쾌적함과 함께 공동체의溫情(온정)과 시선을 동시에 공유하는 삶의 양식. 서로가 서로의 안전망이자 거울이 되어줄 수 있는 주거 구조야말로, 밀폐된 아파트가 만들어낸 현대인의 고독과 관계의 불안을 치유하는 유의미한 열쇠가 될 것이다.
단단히 잠긴 철문 뒤에서 홀로 고립되는 삶에서 벗어나, 서로의 존엄을 따뜻하게 지켜봐 줄 수 있는 시선이 존재하는 거리를 되찾는 것. 그것이야말로 현대인이 잃어버린 여성과 인간에 대한 참된 존중을 회복하고, 더불어 삶의 풍요로움을 구원하는 지혜로운 길일 것이다.

[隨筆整理:제미니Gemini]
[原論] https://www.youtube.com/watch?v=Q-RBhDDhv-g&t=411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