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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의 속담철학: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 이종철 칼럼니스트
  • 등록 2026-10-24 22:48:49

 

책상 위에 읽다 만 책들이 위태롭게 쌓여 있다. 독서 중에 밑줄을 긋고, 나중에 인용하겠다는 생각으로 찍어 둔 페이지 사진과 스크랩 자료가 컴퓨터 폴더마다 가득하다. 정작 원고지를 펼쳐 들면 그 문장들이 어디에 숨었는지 찾을 길이 없다. 한참을 뒤져 간신히 찾아내도 지금 쓰려는 글의 맥락과는 영 겉돈다. 모을 때는 다 보석 같았는데, 막상 쓰려니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해묵은 속담이 자료 더미 앞에서 새삼 따갑게 다가온다. 그동안 나는 서재에 구슬을 얼마나 많이 모았는가만 자부했지, 정작 그것으로 무엇을 빚어냈는지는 묻지 않았다.

 

이 속담의 무게중심은 명사인 ‘구슬’이 아니라 동사인 ‘꿰다’에 있다. 구슬은 그 자체로도 반짝이지만, 하나의 목걸이가 되려면 까다로운 안목과 결단을 거쳐야 한다. 어떤 빛깔을 고르고 어떤 순서로 배치할지, 알과 알 사이의 여백은 얼마나 둘지 가늠해야 한다. 아깝다고 가진 구슬을 전부 줄에 매달면 잡동사니가 될 뿐이다. 결국 꿴다는 것은 선택하고 배열하는 일이며, 무엇보다 과감히 버리는 일이다.

 

공자가 말한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정신도 바로 여기에 맞닿아 있다. 어느 날 공자가 제자 자공에게 “너는 내가 그저 많이 배우고 다 기억하는 사람인 줄 아느냐?”라고 묻자, 자공은 그렇다고 답한다. 그때 공자는 “아니다. 나는 하나의 이치로 모든 것을 꿰뚫을 뿐이다”라고 일갈한다. 여기서 ‘관(貫)’은 흩어진 구슬이나 엽전을 하나의 끈으로 꿴다는 뜻이다. 파편화된 박학다식(博學多識)을 넘어, 대상을 관통하는 자기만의 중심 사유가 있어야 비로소 앎이 완성된다는 말이다.

 

글쓰기와 삶의 지혜도 이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대가들의 현란한 아포리즘과 철학자의 이름을 줄줄이 나열했다고 해서 좋은 글이 되지는 않는다. 남의 말은 풍성한데 정작 그것을 ‘일이관지’할 자기만의 질문, 즉 구슬을 꿸 ‘실’이 없는 글은 공허하다. 세월이 쌓인다고 저절로 지혜가 생기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겪은 일을 아프게 복기하고 성찰의 실로 꿰어낼 때만, 흩어진 일상의 경험은 비로소 삶의 무늬가 된다.

 

그러니 이 속담을 “배웠으면 현실에 써먹어라”라는 천박한 실용주의로만 읽을 일은 아니다. 당장 세속의 이득이 되어야만 보배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제 읽은 한 줄의 문장이 타인의 고통을 건너다보게 하고, 오래전 겪은 뼈아픈 실패가 오늘의 오만을 붙잡아 준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앎이 삶에 스며들어 세상을 보는 눈을 바꿀 때, 구슬 한 알은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문제는 오늘날 우리 주변에 구슬이 넘쳐난다는 데 있다. 스마트폰만 켜면 온갖 정보와 해설이 쉴 새 없이 밀려든다. ‘저장’을 누르면 내 지식이 된 것 같고, ‘공유’를 누르면 사유에 동참한 듯한 착각에 빠진다. 여기에 인공지능은 질문 하나만으로 매끄러운 문장까지 단숨에 빚어낸다. 그러나 남이 꿰어 준 목걸이를 빌려 걸고 내 솜씨인 양 자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이 타당하고 무엇이 빠졌는지 스스로 사유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보의 바다에서 더욱 공허해질 뿐이다.

 

나아가 구슬을 꿰었다고 해서 언제나 보배가 되는 것도 아니다. 입맛에 맞는 사실 몇 조각을 편리한 순서로 이어 붙이면 그럴듯한 궤변이 탄생한다. 불편한 진실을 도려내고 유리한 사례만 엮어내면 편견도 치밀한 논리의 옷을 입는다. 파편화된 지식을 연결하는 능력 못지않게, 그 연결 자체를 의심하는 성찰이 절실한 이유다. 내가 꿴 실이 사태의 진실을 드러내는지, 아니면 내가 보고 싶은 허상만 비추고 있는지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나 역시 책상 앞에서 할 일을 다시 생각한다. 자료를 더 찾기 전에 지금 가진 것으로 한 문단을 써 볼 것, 인용문을 붙이기 전에 내가 묻고 싶은 것을 분명히 할 것, 완벽한 구상을 기다리기 전에 작은 일 하나를 끝낼 것. 꿰는 과정에서 구슬의 흠도 발견하고, 처음 생각한 모양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서 말의 구슬 앞에서는 누구나 부자가 된 듯한 기분에 취한다. 하지만 목걸이 하나를 완성하려면 온전한 자기 시간과 고독한 판단을 대가로 내놓아야 한다. 어쩌면 우리가 선뜻 글을 시작하지 못하는 까닭은 재료가 부족해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막상 꿰어 놓았을 때 드러날 내 서툰 솜씨가 두려워, 오늘도 핑계 삼아 구슬 한 알을 더 모으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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