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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_칸첸중가_030_촛불_만행
  • 김홍성
  • 등록 2026-11-01 13:06:26


촛불

서쪽 능선에 별들이 돌아와 있었다. 어디 갔다가 인제 왔나 싶게 듬성듬성 보이는 별들이 반가웠다. 별들과 나 사이에 언제 그렇게 도타운 정이 생겼나 싶기도 했다. 스님도 오랜만에 보는 별들이 반가웠는지 걷다가 멈추고 다시 걷다가 또 멈추면서 한참씩 별들을 바라보았다.

파업으로 차가 다니지 않는 저녁 거리는 한적했다. 행인이 많지 않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산책하기 그만이었지만 너무 어두웠다. 정전이었다. 파업으로 인한 단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걷던 길가의 창문마다 촛불이 어른거렸다.

페마네 뚱바집 창가에도 촛불이 켜져 있었다. 무심코 문을 열었는데 안에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테이블마다 촛불이 켜져 있어서 생일 파티를 하는 것 같았다. 늘 그랬듯이 ‘안녕하세요.’ 하며 반갑게 맞이한 페마가 우리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네 명이 앉는 탁자에 세 명이 앉아 있었는데 일행이 아닌 현지인 한 사람을 옆 탁자로 합석시키면서 만든 자리였다. 나란히 앉아 있는 남녀가 나란히 앉은 우리에게 가벼운 목례를 한 후 그들의 대화를 이어갔다. 일본어였다. 서른 살 전후의 일본인 남녀는 만두와 뚱바를 앞에 놓고 있었다.

우리도 만두와 뚱바를 주문하고 스님에게 뚱바에 관해서 설명했다. 앞에 앉은 커플은 일본어로, 우리는 우리말로 소곤대는 중에 우리 뚱바가 왔다.

스님은 페마가 보온병을 들고 와서 뚱바 통에 뜨거운 물을 붓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정말 곡차로군요’ 했다. 빨대로 한 모금 빨아 보고는 ‘많이 마시면 취하겠네요’ 했다. 김이 나는 뜨거운 만두를 한 입 먹어 보고는 ‘알리멘트보다 낫네요’ 했다.

스님은 각양각색의 현지인들이 촛불을 켜놓고 우글거리는 그 우중충한 장소에 적응하기가 어려운 듯했다. 그래도 뚱바의 빨대를 빨면서 만두 한 접시를 다 비웠다.

다시 와서 뚱바 통에 뜨거운 물을 살금살금 붓고 난 페마에게 스님을 소개했다. 페마는 반색하면서 합장했다.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합장으로 답례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구니 스님이 그런 대폿집에서 남자와 나란히 앉아 고기만두를 안주로 술을 마시고 있으면 혀를 끌끌 찰 일이지만 다르질링의 불교도들이 주로 모이는 페마 네 집에서는 그리 유난스럽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티베트의 스님들은 염소나 야크 같은 짐승의 고기를 거의 주식처럼 먹는다는 정도는 스님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칸첸중가 기슭에서의 뚱바는 술이 아니라 남녀노소는 물론 승속이 한자리에서 함께 즐기는 발효차 정도라는 걸 현장에서 바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님은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출가하기 전에 저도 이런 대폿집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네? 방금 이런 대폿집을 하고 싶다고 하셨나요?”

“네. 정말. 꼭 이런 대중적이고 허름한 대폿집에서 저 보살님 같은 여주인 노릇을 해보고 싶었어요. 지금도 미련이 남아 있어요. 저 보살님 정말 부럽습니다. 큰스님 같아요.”


잠시 멍했었다. 비구니로써 있을 자리가 아니다 싶어서 불편한 줄 알았는데 페마가 부럽다니! 페마가 큰스님 같다니!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보온병을 들어서 마개를 빼고는 내 뚱바 통에 조심조심 뜨거운 물을 부어 주면서 말했다.

“어때요? 잘하고 있나요?”

“네, 하지만 큰스님한테 좀 더 배우셔야겠습니다.”

“그야 물론이죠. 흐흐흐. 아예 여기 취직할까요?”

그때 페마가 왔다. 페마는 한쪽 끝이 부러진 재봉 가위를 들고 와서 초의 심지를 짧게 잘랐다. 심지가 너무 길어서 촛농이 줄줄 흐르고 촛불이 일렁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페마는 무심하게 다른 테이블의 심지를 자르러 갔다. 내가 스님에게 물었다.

“출가하시기 전에는 뭘 하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괜찮으시면 말씀해 주시죠.”
스님은 잠시 긴장하는가 싶더니 이내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낮게 소리 내어 웃었다. 

“흐흐흐……. 군인이었어요.”
“군인이라면 여군이셨다는 얘기로군요?”
“네, 여군 하사관이었어요. 더 자세한 건 지금 말씀드리기가 좀 그렇습니다.”
“네,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죠. 그런데…. 동작 그만! 차렷! 마리아 호텔에서 저한테 그런 명령했던 것 기억나세요? 뒤에다 욕을 붙여서 말입니다. 그 뒷날부터 안 보이셨으니 기억나실 겁니다.”

“그랬나요?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그날 너무 취했어요. 누군가가 저를 방에 데려다줬다는 기억이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처사님이셨군요?”

“네, 저였습니다. 그러면, 제 따귀를 때렸던 것도 기억이 안 나겠네요?”
스님은 바로 대답하지는 않았다. 대신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승려로서 그렇게 취해 보기는 처음이었어요.”

“군에서는 무척 취한 적이 더러 있었다는 얘기도 되는군요?”

"그렇습니다. 말년에는 거의 중독 수준이었죠. 하하하.”
 

만행


실내가 밝아졌다. 파상이 촉광이 높은 칸델라 석유등을 들고 들어와 카운터 탁자 위에 올렸다. 실내가 밝아지자, 촛불을 끄는 손님들이 있었고 그대로 둔 손님들도 있었다. 일본 청년이 촛불을 꺼도 되겠냐고 영어로 물었다. 오케이 했더니 그는 ‘땡큐’하면서 엄지와 검지로 심지를 잡아서 우리 탁자의 촛불을 껐다.

스님과의 대화가 다시 이어졌다.

“출가하신 지는 몇 년이나 되셨는지요?”

“출가 하고 십 년이 안 된 스님들은 저처럼 이렇게 만행할 처지가 못 될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십 년까지는 안 놔줘요. 절에서 이런저런 소임을 맡아 일하고 있어야 때가 되면 강원에도 보내 주고 선원에도 보내 주고 그럽니다. 그러다 보면 십 년이 금방 지나가죠. 저는 작년 4월에 도반들 셋과 성지 수행을 나왔던 겁니다.”

“성지 수행? 성지 순례와 같은 말인가요?”

“예, 같은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룸비니부터 열반하신 쿠시나가르,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와 최초로 설법한 사르나트까지 4대 성지와 그 주변의 8대 성지에 속하는 지역들을 비구니 셋이 순례했던 거지요. 겨우 석 달 좀 넘는 동안에 십 년 공부 나무아미타불 될 뻔했던 일이 곳곳에서 벌어졌어요. 십 년을 공부하고도 나라는 인간이 겨우 이 정도인가 싶어서 무참했고요. 그때 얘기는 지금 하고 싶지 않아요. 천천히 할게요.”

나중에 시킴의 욕숨이나 조레탕에 머물 때 더 들은 바에 의하면 스님들의 성지 순례 여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세 비구니의 화합이었다. 숙소, 음식, 교통편의 선택은 물론이고 머무느냐? 떠나느냐에 대한 판단에 숱한 갈등이 따랐다. 결국 다수결로 정하기로 했는데 그럴 때마다 점점 서로가 불편해졌다. 처음에는 감수하고, 중간에는 인내하며 감추었으나 결국 짜증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폭염과 피로, 그리고 신경 쇠약으로 인해 점점 더 서로를 견디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스님 표현에 의하면 ‘성질 못된 인간이 중 된다’라는 말이 있는데 결국 못된 성질이 제각기 다 드러나더라고 했다. 큰 절의 강원에서 또 만나고 또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도반이 되었던 세 스님은 의기투합 된 상태로 떠났지만 목적한 순례가 끝난 후에는 서로에게는 물론 자기 자신에게도 넌더리가 났다.

성지 수행은 결과적으로 인내를 시험하는 수행이었다고 스님은 말했다. 그토록 단단하게 뭉쳐져 있던 화합과 인내는 성지에서 깨지고 또 깨졌다. 성지 순례 도중에도 물론 참회하고 또 참회했지만, 순례를 마친 후에는 서로 주고 서로 받은 상처를 각자 다스리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span>계속>

#장편소설_칸첸중가_030_촛불_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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