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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_칸첸중가_027_다리 밑_이산가족
  • 김홍성
  • 등록 2026-10-22 19:40:10
  • 수정 2026-10-22 21:39:10



다리 밑

잠시 이어진 둘 사이의 어색한 침묵을 스님이 먼저 깼다. 스님은 상체를 기울여서 내 앞에 놓인 컵과 맥주병을 양손에 하나씩 천천히 집어 들더니, 왼손의 컵에다 오른손의 맥주병을 조심스럽게 기울였다. 스님은 컵에서 맥주 거품이 넘치기 직전에 병과 컵을 차례로 내려놓은 후, 병을 들었던 오른손으로 컵을 들고 왼손으로 살짝 받쳐서 내 앞에 내려놓았다. 스님은 다시 허리를 곧게 편 다음,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해 보였다. 그 동작이 무슨 의례를 치르는 것처럼 진지했다.
 
나는 그 잔을 바라보며 합장을 해 보인 후에 컵을 들어서 몇 모금 마셨다. 맥주가 술 같지 않고 감로수처럼 달게 느껴졌다. 첫 한 모금이 그렇게 달게 느껴질 때는 과음하기 십상이었다. 새삼스럽게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컵을 내려놓자, 스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그러면 이제 언제부터 그런 거짓말을 꾸미기 시작했는지 말해 줄 수 있나요? 천천히 생각해 보시고 생각날 때 말해 주셔도 괜찮습니다.” 
내가 잠시 머뭇거리자, 스님이 다시 말했다.
“우선은 그냥 생각나는 얘기를 하셔도 됩니다. 제가 잘 들어 드릴게요.”
“네, 고맙습니다. 우선 목 좀 더 축이고 시작하겠습니다.”

내 딸이 반년 전에 영국으로 유학 간 경위를 스님에게 얘기한 것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스님은 내 이야기를 잘 들어 주었다. 이야기하는 보람을 느꼈다. 나는 스님 앞에서 맥주를 마셔가면서 더 많은 과거의 얘기를 주절거렸다. 그 얘기는 다음과 같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고향 동네로 돌아와 K와 짝이 되어 빈둥댈 때였다. K 역시 서울로 유학해서 고등학교를 마쳤는데, 어머니가 재가하자 홧김에, 해병대에 지원하여 합격, 입대할 날을 받아 놓은 처지였다. 


어느 날 술에 취해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괴로워하는 K에게 내가 말했다. 우리 아버지도 네 아버지처럼 친아버지가 아니라고. 내 친아버지는 육이오 때 전사했으므로 얼굴도 모른다고. 비밀이니까 너만 알고 있으라고.

우리 둘만의 아지트였던 ‘House of the rising sun_해 뜨는 집’에서였다. '해 뜨는 집'은 미군 전용 유흥 업소 ‘홀 하우스’의 간판이었다. 아랫동네에 주둔했던 미군 부대가 철수한 직후여서 미군 부대 정문 근처의 유흥 업소들은 대부분 빈 집이었다. 

우리는 소주를 사 들고 주인이 문을 잠그고 떠난 ‘홀 하우스’의 문을 열고(잠금장치는 누군가가 이미 망가트린 상태였다) 들어가서 컴컴한 홀 가운데에 놓인 아주 커다란 탁자 위에 촛불을 여러 개 켜놓고 서서 소주를 병째 들고 마셨다.
 

K의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와 친했다. 두 분 모두 각자 분주해서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모임이 있을 때면 가끔 만나는 사이였다. 어느 날 K의 어머니가 우리 어머니를 찾아와 K에게 들은 내 거짓말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게 사실인지를 넌지시 물었다.
 

우리 어머니는 물론 정색하고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K의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 말을 믿지 않았다. 애가 왜 그런 거짓말을 했겠느냐, 나도 재혼한 처지니까 다 이해한다, 이 동네에서 우리가 제일 친한 사이 아니냐면서 사실을 말해 달라고 졸랐다.

우리 어머니는 황당했다. 안 그래도 우리 아버지가 워낙 늙어 보여서 훨씬 젊어 보이는 우리 엄마가 재취라는 소문이 돌고 있던 차에 동네 친구로부터 그런 추궁을 당한 우리 어머니는 어이가 없었다. 어머니는 사실 동네에 도는 소문에 무관심했다. 아니, 관심을 둘 틈이 없었다. 아버지와 더불어 워낙 바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동네에 몇 안 되는 의사였고, 어머니는 의사의 전천후 조수 노릇을 하느라고 시장에 장 보러 다닐 때도 뛰어다닐 정도였다. 그러니 동네 친구가 찾아와 그런 추궁을 하고 가도 자식이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틈이 없었다. 

나중에, 그러니까 며칠 후, 어머니가 틈이 좀 났는지, 한 번 물어보기는 했다. 너 왜 부모 얼굴에 똥칠하고 다니느냐고.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지 몰랐지만, K의 어머니가 찾아와서 묻더라는 바람에 바로 알았다. 

“심심해서 장난했어요.”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돌아서서 K를 찾아 나섰다. 비밀을 지켜달라고 했는데, 그가 비밀을 지켜 주지 않은 것에 화가 났다. “이 새끼 오늘 죽인다.”라고 생각하고 아랫동네로 찾아 나섰던 건데 골목에서 딱 마주친 K가 오히려 나보다 더 화를 냈다. 그가 말했다. 

“너 이 개새끼 왜 나한테 거짓말했어?”

“거짓말 아니야 이 개새끼야.”

“우리 엄마가 네 엄마한테 가서 물어보니 네 엄마는 그게 거짓말이라고 했다던데?”

“새끼야, 우리 엄마가 네 엄마한테 거짓말한 거야. 어떤 엄마가 그걸 정말이라고 하겠어? 너야말로 개새끼다. 둘만 알자고 한 약속을 저버린 놈은 너야. 이 개새끼, 같은 처지라서 믿었는데….”

그때 저 말을 뱉으며 나는 눈물까지 흘렸던 것 같다. K는 내 눈물을 믿었고, 아차 싶었는지 순해졌다. 그리고 집에서 엿들었던 새 아버지와 엄마의 대화도 전해 주었다.

“우리 엄마도 네 말을 믿더라. 네 엄마가 그렇게 젊고 고운데 늙은 의사랑 사는 게 좀 이상하다고 했어. 네 아버지도 실은 전처와 이혼한 사이라는 소문도 돈다더라. 널 의심한 건 미안해. 나도 우리 엄마에게 일부러 알려 준 건 아니야. 엄마에게 용돈 좀 달라고 조르다가 얼결에 나온 말이었어.”

그때 내가 K에게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분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의부_義父가 싫어서 해병대에 지원한 K의 처지를 동정하면서 좀 더 공감한답시고 나 또한 같은 처지임을 말하고 싶었고, 또 하나는 아버지에게 미운털이 박힌 아들이 아버지를 원망하고 그런 아버지를 늘 두둔하는 어머니가 미웠다는 것이다.

아주 어렸을 때 부모에게 들은 이야기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는 나를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얘기였다. 어처구니없는 얘기지만 어린 마음에는 너무나 서러워서 곱씹었던 것 같다.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부모의 거짓말은 우리 자랄 때는 누구나 한번은 듣게 되는 얘기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들은 아이 중에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친부모를 찾겠다고 대문 밖으로 나가는 아이들도 있다.

내 딸이 그랬다. 서울 도봉구에 살 때 약수터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런 거짓말을 했던 것인데, 어린 딸은 애비의 거짓말을 사실로 믿고 이미 지나온 길목의 돌다리까지 걸어가서 다리 밑을 내려다보며 엉엉 울었다. 어떡하나 보려고 꾸며낸 얘기였다고 달래고 또 달래서 간신히 등에 업었다. 등에 업혀 집으로 가는 중에 딸은 또 울기 시작했다. 딸은 울면서 또 물어봤다. 

“나 엄마 아빠 딸 맞지? 다리 밑에서 주워 온 거 아니지?”


이산가족


스님이 말했다.

“천애(天涯)를 느꼈던 걸까요? 천애고아(天涯孤兒)라고 할 때의 천애 말입니다. 갑자기 무섭고 춥고 막막해진 세상에 처해서 올려다본 하늘이 천애라던데 …….”
스님은 내 잔을 가져가서 마저 채운 뒤에 다시 내 앞에 놓은 뒤에 하던 말을 이었다.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하는 건 일종의 예방주사가 아닐까 싶어요. 어른이 되어서 어느 날 갑자기 천애에 맞닥뜨리면 감당하기 어려울 테니까 부모 슬하에서 미리 느껴보라는 예방주사 말입니다.”


나는 방금 맥주가 채워져 거품이 나는 유리컵을 들어 목젖을 적시고 말했다.
“흐흐흐, 그렇게도 깊은 뜻이 있었을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옛날 어른들이 심심해서 순진한 애들 데리고 그냥 장난친 거였어요. 제가 우리 애한테 그랬듯이 말입니다.”

“부모는 장난으로 해 본 말이지만 어린이들은 그 말을 듣고 천애를 느낍니다. 순진할수록 갑자기 그렇게 막막한 상황에 봉착하는 것이죠. 부모들의 그 장난은 대대로 내려온 것이고, 그건 어쩌면 천애의 맛보기가 아닌가? 싶어요.”

스님은 내 유리컵에 잠시 보냈던 시선을 들어서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물었다. 

“사바세계라는 말이 무슨 뜻인 줄 아시죠?”

“글쎄요, 고생스러운 세상이라는 뜻 아닌가요? 고해처럼 말입니다.
“대충 맞아요. 그런데 사바세계라는 말에는 ‘참고 견디면서 사는 세상’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절에서 많이 하는 얘기입니다. 어차피 모두 참고 견디면서 사는 세상이라니까 처사님 눈에 갑자기 생기가 도네요.”
“네. 저는 즐겁습니다만, 스님은 좀 걱정되시죠? 지금 이 자리는 술 마시지 말라는 계를 파계할지도 모르는 자리니까요.”.”


스님은 내 말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글쎄요. 파계해야 할 때 파계하지 못하는 것도 또 다른 파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계에 대해서는 불교 자체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니까, 그건 다음에 따져보기로 하고요, 오늘은 그냥 딸 얘기를 더 해 보세요. 거짓말한 얘기도 좋고요. 저는 재미있게 듣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몇 달 만에 우리말 한번 후련하게 해 봐야겠네요. 우선 목 좀 더 축이고요."

컵에 남은 맥주를 마저 비운 나는 제법 긴 이야기를 했다. 딸에게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라는 거짓말을 한 이후였는지 그 전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 때도 딸이 서너 살 때였는데요. 그러니까 내가 얘를 업고 술집에 갔어요. 동네에서 1차, 2차 거친 뒤에 3차로 시내에 들어갔습니다. 외상도 주고 택시비도 달라면 주는 단골집이었어요. 무척 취했죠. 딸이 울었어요. 집에 가자고요. 그래. 가자, 하고 업었는데 전화가 왔어요. 애 엄마였어요. 어디냐고 물어요. 안 가르쳐 준다고 했죠. 애는 어쨌냐고 그래요. 업고 있다고 했죠. 빨리 오라고 그래요. 알았다고 하고 술집에서 나왔어요. 그런데 집에 가기 싫었어요. 전화받을 때는 몰랐는데 전화 끊고 나니 술이 갑자기 확 취하더라고요. 어디 막막한 천애 밑에 가서 그냥 울어 보고 싶었어요.

제가 어디로 갔겠어요? 택시 기사에게 여의도로 가자고 했어요. 그때 막 시작된 ‘KBS 이산가족 찾기’ 행사하는 곳 말입니다. 뉴스를 보면 이산가족 찾는 사람들로 하루 종일 굉장치도 않았던 곳이었죠. 하지만 자정 넘어서 찾아가는 사람이 누가 있었겠어요. 저하고 제 등에 업힌 제 딸 뿐이었습니다.

가로세로 겹겹이 길게 늘어서 있는 보드 판 숲속에서 저는 마음 놓고 울었어요. 내 눈높이의 보드 판에는 찾는 가족의 인적 사항을 적은 쪽지들이 붙어 있었어요. 본적 함경남도 함흥시 성천리 1구 9반 이런 주소만 읽어도 눈물이 다시 펑펑 쏟아졌어요. 내 등에 업혀 자다 깬 딸도 같이 울었어요.

아빠 여기 어디야, 집에 가, 빨리 집에 가자. 딸은 그렇게 떼를 쓰며 울었지만 저는 어느덧 느긋한 곡조로 울고 있었습니다. 어디로 갈거나, 어디로 갈거나, 내 고향 찾아서 어디로 갈거나 ……. 아시는지 모르겠네요. 김영동이 작사 작곡했다는 노래입니다.

이 산을 넘어도 내쉴 곳은 아니요, 저 강을 건너도 내쉴 곳은 없어라. 곡조가 구슬프잖아요. 어디로 갈거나, 어디로 갈거나, 내 고향 찾아서 어디로 갈거나 ……. 마음속으로 노래하면서 곡조에 맞추어 울었던 겁니다. 진짜 눈물을 흘리면서 말입니다.

우습지 않으세요? 부모님이 이북에서 피난 나온 사람들이니까 우리도 이산가족이기는 하지만 딱히 찾아볼 친척도 없으면서 한밤중에 술 취해서 애 업고 여의도 가서 그런 청승을 떨었던 것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와요. 아니, 다시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흐흐흐 …….

이렇게 되려고 그랬나 봅니다. 딸은 제 어미랑 영국으로 떠났고, 쫄딱 망한 저는 결국 콜카타로 날아와 밤마다 마셨던 거죠. 낮에는 늘어져 자고 말입니다. 흐흐흐 ……. 그러다가 다르질링에 온 겁니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저승에 온 것 같았어요. 온통 운무뿐이고, 제 눈에는 사람들도 이상했어요. 운무 속에서 운무를 흡입하며 사는 외계인들 같았어요. 흐흐흐, 재미있나요?

세탁 맡긴 침낭을 찾았으니, 이제는 시킴으로 갈 겁니다. 칸첸중가에 좀 더 가까이 가보려고요. 거기 사는 사람들, 마을들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뚱바! 아, 뚱바라는 술 아시나요? 여기 다르질링에도 있습니다. 제가 내일 맛보게 해 드릴게요. 틀림없이 좋아하실 겁니다.

트레킹은 정말 잘한 일 같아요. 산길을 1주일쯤 걸었죠. 날마다 지치도록 걷고 밤이면 꼬꾸라져 자지만 새벽이면 맑은 정신으로 깨어나 일출을 맞이했어요. 그런 일상이 여러 날 계속 이어지니까 몸도 마음도 산뜻해 지더라고요. 산뜻해 진 걸 느끼고, 그게 좋아서 들떴는데, 하산해서는 술을 마시게 됐어요. 람만의 룸부 네 집이었지요. 룸부 네 집에는 까말라가 있었는데 ……. 아, 지루하시군요? 곧 끝낼게요. 조금만 더 들어 주세요. 중요한 얘기가 아직 남았어요.“

<</span>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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