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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없는 인간과 아직 오지 않은 삶의 가능성
  • 이득재
  • 등록 2026-11-02 18:56:28

[에세이철학 네트워크=이득재 ]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

 

인간에게는 저마다의 특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성격, 능력, 직업, 계급, 출신, 민족, 신념과 같은 것들이 한 사람을 설명하는 기준이 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누구인지 묻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대답하기 위해 이러한 특성들을 동원한다. 사회 역시 개인을 특정한 특성에 따라 분류하고 평가한다. 어떤 사람은 유능한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무능한 사람이며, 어떤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실패한 사람이다. 개인은 자신에게 부여된 특성들을 통해 사회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때로는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인간』은 바로 이와 같은 인간 이해에 의문을 제기한다. 인간을 규정하는 특성들이 과연 그 사람의 본질을 설명하는가? 우리가 한 인간을 특정한 특성으로 설명할 때, 그 사람에게서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질의 소설에서 특성 없는 인간이란 아무런 개성도 능력도 갖지 못한 인간을 뜻하지 않는다. 주인공 울리히는 수학자이며, 지적 능력과 판단력을 갖춘 인물이다. 그는 무기력하거나 세상에 무관심한 인물도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속한 세계를 예리하게 관찰하고, 그 세계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가치와 규범을 의심한다. 그에게 문제는 특성이 없다는 사실이 아니라, 인간을 설명하는 특성들이 마치 변할 수 없는 본질인 것처럼 굳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특성은 한 인간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를 나타내는 동시에, 그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규정하는 사회적 기준이 된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특성에 맞추어 살아가고, 사회는 그 특성에 따라 인간을 이해하고 관리한다. 무질은 이러한 관계를 통해 근대 사회가 개인을 고정된 정체성 안에 가두는 방식을 드러낸다.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이 바로 현실감각과 가능성감각이다. 현실감각은 이미 존재하는 세계를 주어진 사실로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현실감각을 가진 사람은 현재의 질서와 제도, 관습과 규범을 현실의 조건으로 인정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 물론 현실을 파악하는 능력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현재의 현실이 마치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수 없는 필연적인 질서인 것처럼 받아들여질 때 발생한다. 반면 가능성감각은 현실을 유일한 현실로 간주하지 않는다. 지금 존재하는 것은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세계는 다른 방식으로도 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능성감각을 가진 인간에게 현실은 완결된 결과가 아니라 아직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들이 잠정적으로 굳어진 상태다.

 

울리히가 특성 없는 인간인 까닭은 바로 이 가능성감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하나의 성격이나 직업, 사회적 지위로 확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데 그치는 것도 아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특성을 새롭게 획득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을 특정한 특성으로 고정하는 사고방식 자체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특성이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틀이기도 하다. 사람을 특정한 성격으로 규정하면 그 사람의 행동은 그 성격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그가 다른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은 예외나 일탈로 취급된다. 이처럼 특성은 인간의 다양한 가능성을 이미 알고 있는 몇 가지 속성으로 환원한다. 울리히는 그러한 환원을 거부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소설의 배경인 카카니아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카카니아는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모델로 한 가상의 국가다. 이곳에서는 황제의 즉위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국가적 사업인 '평행운동'이 추진된다. 평행운동은 국가의 위대함과 문화적 우월성을 드러낼 역사적 기념사업을 구상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국가적 이상은 관료주의와 허영, 민족주의와 개인적 야심이 뒤얽힌 거대한 공회전으로 변한다. 사람들은 국가와 인류의 미래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속한 사회적 지위와 이해관계를 지키는 데 몰두한다. 미래를 준비한다는 사업이 오히려 기존 질서를 반복하는 것이다.

 

무질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히 오스트리아 제국의 낡은 제도나 관료주의에 대한 풍자가 아니다. 그가 비판하는 것은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언어조차 기존 현실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회의 상태다. 평행운동의 참여자들은 새로운 시대와 국가의 이상을 말하지만, 그들이 상상하는 미래는 이미 존재하는 가치와 위계의 연장에 불과하다. 그들은 현실을 넘어서는 미래를 이야기하면서도 현실을 구성하는 특성들, 즉 국가적 위대함, 사회적 명예, 성공, 권위와 같은 기준을 그대로 유지한다. 이 점에서 평행운동은 가능성을 말하면서 가능성을 차단하는 역설적인 사업이다.

 

울리히는 이러한 세계에 속해 있으면서도 그 세계의 가치들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현실의 질서가 자연스럽거나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임을 감지한다. 따라서 그의 태도는 단순한 냉소주의와 구별된다. 냉소주의가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적당히 살아가는 태도라면, 울리히의 가능성감각은 현실이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현실에 적응하는 능력이 아니라 현실을 다른 가능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능력이다.

 

소설 후반부에서 울리히와 여동생 아가테의 관계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무질은 기존의 도덕적 규범과 사회적 관계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경험을 탐색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다른 상태'다. 다른 상태란 일상적인 의식과 판단, 사회적 규범이 작동하는 방식이 흔들리는 경험을 가리킨다. 이 상태에서는 나와 타자, 주체와 객체, 정신과 신체를 구분하는 익숙한 경계가 느슨해진다. 인간은 자신을 독립적이고 폐쇄적인 개인으로 경험하는 대신 타자와 세계에 연결된 존재로 경험한다.

 

이때 다정함은 단순히 친절하거나 상냥한 감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고정된 개인으로 유지하려는 태도가 약화되고, 타자와 세계에 자신을 열어놓는 경험에 가깝다. 인간은 타자를 자신의 욕망이나 판단에 따라 규정하는 대신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 역시 변할 수 있는 존재임을 경험한다. 이러한 경험은 인간을 고정된 특성들의 집합으로 이해하는 관점과 대립한다. 특성이 개인을 독립적이고 확정된 존재로 만드는 사회적 규정이라면, 다른 상태는 그러한 확정성이 흔들리는 경험이다. 울리히와 아가테의 관계는 이처럼 기존의 인간관과 사회적 관계를 넘어설 가능성을 탐색하는 소설의 중요한 계기가 된다.

 

물론 무질이 제시하는 가능성이 곧바로 새로운 사회제도나 정치적 대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특성 없는 인간』은 현실의 모순을 분석하고 그것을 제거할 구체적인 정치적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의 독특함은 현실을 구성하는 범주들이 얼마나 자명하지 않은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우리가 성격이라고 부르는 것, 능력이라고 부르는 것, 정상적인 삶이라고 부르는 것은 과연 인간에게 본래 주어진 것인가? 아니면 특정한 사회가 인간에게 부여한 규정인가? 무질은 이러한 질문을 통해 인간을 이미 완성된 존재로 간주하는 관점을 해체한다.

 

따라서 『특성 없는 인간』의 핵심은 특성을 제거한 인간을 상상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인간을 하나의 특성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을 의심하는 데 있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규정과 일치하는 존재가 아니며, 현재의 현실에 의해 완전히 소진되는 존재도 아니다. 인간에게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이 남아 있다. 가능성감각은 바로 그 잉여를 감지하는 능력이다. 현실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현재의 질서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 인간이 지금의 자신과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감각하는 능력이다.

 

이런 의미에서 울리히는 특성이 없는 인간이 아니라 아직 하나의 특성으로 확정되지 않은 인간이다. 그는 자신이 무엇인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대신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열어놓는다. 무질이 비판하는 것은 개성의 부재가 아니라 개성을 고정된 속성으로 이해하는 사회이며, 그가 탐색하는 것은 정체성의 완성이 아니라 정체성을 넘어설 가능성이다. 『특성 없는 인간』은 우리에게 묻는다. 인간을 설명하는 데 익숙하게 사용하는 특성들이 정말 인간을 이해하게 해주는가, 아니면 인간이 다른 존재가 될 가능성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가? 이 질문은 무질의 시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능력과 성과, 직업과 지위, 성공과 실패로 끊임없이 분류하는 오늘날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특성 없는 인간이란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 아니라, 주어진 세계가 규정하는 자신으로만 살아가기를 거부하는 인간이다.

 

무질의 『특성 없는 인간』에서 특성과 가능성감각의 관계는 ‘인간을 규정하는 것’과 ‘인간이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음을 감각하는 것’의 대립으로 정리할 수 있어. 다만 특성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뜻은 아니야. 핵심은 특성을 인간의 고정된 본질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의 현실적 표현으로 이해하느냐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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