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대국의 역사적 책임과 한반도의 전략적 자율성
[에세이철학 네트워크=황인오 ]
마음씨 좋은 이웃 형님은 누구인가?
-강대국의 역사적 책임과 한반도의 전략적 자율성

황인오(한반도 1 거주민)
강대국의 구심력 투사 관성
최근 중국은 동북공정, 서해 구조물 설치가 보여주는 서해의 내해화 시도, 중국 공군의 잦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진입, 두만강 하구 출해권 문제 등을 둘러싸고 한국과 조선으로 구성된 한반도 두 국가에 적지 않은 우려를 안겨주고 있다.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자신의 국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문제는 이러한 사례들이 국익 추구 과정에서 강대국들이 주변 국가들에 대해 흔히 보여 온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중국이 자신의 국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한반도와 맺어온 역사적 관계에 대한 성찰과 책임의식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중국은 주로 조공 책봉 관계였던 수천 년의 교류 역사와 전통적 질서를 강조한다. 그러나 역사란 영향력을 주장할 권리만이 아니라 책임을 함께 묻는 것이기도 하다. 더욱이 역사적 관계는 어느 한쪽의 시혜나 은혜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륙 중국과 한반도 국가들은 오랜 세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함께 역사를 만들어 왔다.
마음씨 좋은 이웃 형님은 누구인가?
임진왜란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16세기 말 동아시아 국제전으로 번진 이 전쟁에서 조선은 국토가 초토화되는 막대한 희생을 감수하였다. 흔히 당시 명나라의 참전을 재조지은(再造之恩)이라 부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조선의 희생은 일본의 팽창이 대륙으로 직행하는 것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따라서 임진왜란의 역사는 일방적인 은혜의 서사가 아니라, 서로의 생존과 안보가 깊게 얽혀 있었던 동아시아 공동의 역사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균형 잡힌 접근일 것이다.
19세기 말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인 정세변동에서 중국이 보여준 일련의 행보도 좋은 사례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중국은 종주권을 강화한다는 명분 아래 조선 내정에 깊숙이 개입하였다. 원세개는 사실상 총독에 가까운 권한을 행사하며 조선의 외교와 개혁정책에 깊숙이 개입하였다. 청나라는 조선을 자주적 근대국가로 성장시키기보다 전략적 완충지대로 유지하는 데 더 큰 관심을 기울였다. 오히려 고종과 조선 정부의 근대화 정책을 지연시키거나 방해하기까지 했었던 사례도 적지 않다. 1887년 고종이 박정양을 주미 전권공사로 임명하였으나, 원세개의 압력으로 출발조차 못하고 한성에 묶였다. 고종이 추진한 미국·프랑스 차관 교섭도 원세개가 앞장서 방해하여 번번이 무산시켰다. 조선의 자주적 외교와 재정 확보를 체계적으로 차단한 것이다. 조선 최초의 근대화 개혁인 갑오개혁은 청나라가 한반도에서의 간섭 주도권을 상실한 이후에야 비로소 시작될 수 있었다. 종주권을 내세웠지만 종주국으로서 책임과 품격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결국 조선은 동학농민혁명에 이르기까지 10년 이상 근대화와 자주 국가 건설에 필요한 귀중한 시간을 잃었고, 중국 역시 일본과의 경쟁에서 패배함으로써 동아시아 질서 전체가 격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2002년에는 북한이 신의주 특별행정구를 설치하고 중국인 기업가 양빈을 초대 행정장관으로 임명하였을 때, 중국 당국은 임명 발표 불과 일주일 만에 양빈을 구속하고 18년 형을 선고함으로써 북한의 자주적 개방 시도를 대놓고 좌절시켰다. 북한의 자주적인 경제 개방과 발전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중국의 의지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서해 내해화 시도, 동북공정 등 현재의 행태와 그 결이 다르지 않다. 이보다 앞서 1876년 일본과 조선이 수교하는 강화도 조약 체결을 전후하여 청나라 외무아문에서 조선에 대한 직접적인 지배나 병합 가능성까지 검토되었다는 사실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실제 정책으로 채택 되었는지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강대국은 언제든지 이런 선택지를 투사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고, 이는 강대국이 주변국을 대할 때 우호와 형제애의 언어만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국제정치는 이상과 함께 힘과 이해관계가 작동하는 시공간이다.
상호작용의 선순환은 어떻게 가능한가.
반면 현대 중국의 성립과 발전 과정에서 한반도가 수행한 역할 역시 결코 작지 않았다.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독립투쟁 과정에서 중국이 한반도 독립운동 세력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던 것처럼, 중국공산당이 대륙을 통일하는 과정에서도 만주의 조선인 사회와 훗날 북한 국가 형성의 기반이 된 세력들은 적지 않게 기여했다. 또한 개혁개방 이후 중국이 세계 경제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한국의 자본과 기술, 경영 경험은 중요한 참고 모델이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중국과 한반도의 관계가 일방적인 시혜나 은혜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 기여와 상호 의존의 역사였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오늘날 중국이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조공책봉 체제의 기억을 현대에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베스트팔렌 체제 이후 발전해 온 주권국가 질서와 2차대전 종전 이후 확립된 주권국가 간의 상호 존중의 원칙을 더욱 충실히 실천하는 것이다.
21세기의 중국은 한반도를 세력권이나 완충지대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동등한 파트너로 대해야 한다. 역사적 영향력을 말하기 전에 역사적 책임을 먼저 돌아보아야 하며, 과거의 위계를 회복하려 하기보다 미래의 협력과 공존을 설계해야 한다.
한반도 국가들, 그 중에서도 개방 경제와 국제협력을 통해 발전해 온 한국은 어느 한 강대국에 대한 의존을 심화시키기보다 다양한 전략적 선택지를 확보하는 데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점점 커지는 이웃 나라의 구심력 속에서 스스로 전략적 자율성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선택지를 가져야 한다. 진정한 우호는 종속이 아니라 상호 존중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자율성은 고립이 아니라 여러 선택지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덧붙이는 글
https://v.daum.net/v/20020926114323086?fbclid=IwY2xjawS54iZleHRuA2FlbQIxMABicmlkETFyUTJsTWp4WmRWSUhBZUlkc3J0YwZhcHBfaWQQMjIyMDM5MTc4ODIwMDg5MgABHkN66Fqu7bHlES80StI0O-8SRnVPTNDK93lctf_5L3ljylIL69WjcsEWAzWz_aem_mQmTRUApZeVOsJHq033ZM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