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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에서 지배적인 종교가 되었던 상좌부불교
  • 알렉세이정 칼럼리스트
  • 등록 2026-07-08 18:06:52

상좌부불교가 동남아시아에서 지배적인 종교가 되기 전 이 지역 왕국들은 다양한 종교를 믿고 있었다. 1세기경 세워진 동남아 최초의 왕국인 부남(Funan, 扶南, 68~550) 왕국에는 상좌부와 대승불교 모두 성행했다. 6세기 중엽 진랍(真臘, Chenla, 550~802) 왕국이 대두하자 부남의 영토는 축소되었으며 7세기 중엽에는 멸망했다. 진랍 왕국은 힌두교가 번성했던 것으로 보이며, 불교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차오프라야 강 유역에 세워진 몬족의 타와라와디 왕국(Dvarav-ati, A.D. 6~13C)은 상좌부불교를 신봉했다. 타와라와디 왕국이 번성하고 있을 때 수마트라 섬에서는 스리비자야(Srivijaya, 650~ 1377) 왕국이 발흥했다. 이 왕국은 대승불교를 믿었다. 

태국의 전통 불교 회화 양식으로 그려진 사원 벽화(Mural Painting), 출처 : Royal Thai Art

이라와디 강 하류 삐(Pyay, Prome)를 중심으로 쀼족의 왕국(Pyu city states, 驃國, B.C. 2~A.D. 11세기)도 세워졌다. 쀼족은 티베트-버마 계통으로 나중에 버마족으로 흡수되었는데, 그들은 상좌부, 대승불교와 힌두교, 민속신앙이 혼합된 종교를 믿고 있었다. 미얀마 남부 몬족 왕국에서는 상좌부불교가 전래하여 타통(Thaton)을 중심으로 번창했다. 베트남 중남부 지역에는 참(Cham)족이 세운 임읍(林邑, 占城, 占婆, Champa, 192~1832) 왕국이 있었는데 이 왕국은 힌두교와 대승불교를 믿었다. 타이족이 중국 남부로부터 이주해 오기 전 현재 태국 지역은 캄보디아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다. 타이족이 남중국(南詔國, 大理國, 650~1253)에 있을 때는 중국의 불교인 대승불교를 믿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후 크메르 왕조에서는 힌두교와 불교가 혼합된 종교를 믿었다. 태국에서는 불교사원이 단순 종교시설 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학교, 장례식을 치르는 화장터까지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책임을 분담하고 있다. 태국의 장례식은 보통 3일이나 5일 동안 진행하는데 한국과 같이 검은색 옷을 입으며 금요일에 장례식을 치르면 안 좋다는 미신도 있다. 장례식 규모는 보통 소박하게 진행하며 4명의 스님들이 염불을 외운다. 입관 전 빈소에서는 고인과 조문객 간에 중요한 의식이 펼쳐지는데, 흰 천으로 덮은 고인의 한 쪽 손을 밖으로 내밀게 한 다음 그 손에 법수(法水)를 붓는 것이다. 이때 저마다 ‘고인과 우리가 지은 죄업을 모두 씻어주십시오’라고 염송하니 죽은 자와 산 자 모두의 업을 정화하는 관욕(灌浴) 의식이라 하겠다.


장례기간 동안 고인이 편히 머물 수 있도록 작은 집을 지어 침구에서부터 주방용품에 이르기까지 마련해두는 정성을 쏟기도 한다. 발인을 할 때면 고인의 관이나 상여를 묶은 끈을 길게 이어 장례행렬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잡고 화장장으로 향한다. 화장을 하기 전에 조문객들은 작은 지화(紙花)를 제단에 바쳐 고인의 저승길을 축복하고, 이들 꽃은 관에 넣어 함께 태운다. 화장은 5일장이나 7일장을 마치고 행하는 ‘생화장’과, 백일 또는 몇 년 간 주검을 보관해두었다가 행하는 ‘건화장’으로 구분된다.상좌부불교는 고대 태국의 왕권을 정당화하는 통치 이데올로기이자 민중의 신앙 대상으로서 태국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람캄행 대왕의 뒤를 이어 수코타이 왕국의 불교를 크게 진흥시킨 왕은 리타이(Lithai, 1347~1368 또는 1374)였다. 


리타이 왕은 그의 저서인《불교 우주론(Traiphuum Phra Ruang, 일명 Traibh-umikatha)》을 통하여 우주 구조를 설명하고 태국사회의 사회적, 정치적 기구의 정당화를 설명했는데, 이러한 설명은 오늘날까지도 태국사회에서 정치적 유용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철학자라고도 불릴 만큼 불교철학에 조예가 깊었고, 삼장(三藏)을 두루 이해한 최초의 군주였다. 목뜨마(Martaban)에 있던 스리랑카 스님을 수코타이로 초청해 불교의 융성을 도모했으며 자신도 출가생활을 했다. 이 때부터 태국에는 단기출가의 습속이 만들어졌다. 또한 그는 최초로 비구와 사미승을 위한 학교를 설립했다. 이웃 나라들에 불교를 전파하기도 했으며 많은 사원, 불상, 불탑을 건축하고 산 위 4곳에 불족적(佛足跡)을 모셔 두기도 했다.


태국의 불교는 이른 새벽이면 누런 법복을 걸친 탁발 승려들이 사원을 나서 행렬을 시작하고 신도들은 정성스럽게 이들에게 공양을 바친다. 태국의 승려들은 어느 나라에서보다도 사회적 지위가 높다. 태국에는 아름다운 왕궁과 많은 사원들이 있는데, 짜끄리 왕조의 수호사원으로서 에메랄드 사원과 수코타이 중심부에 있는 최대 사원인 왓 마하탓, 유서깊은 절 왓 아룬 등 3만여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사원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불교의 영향으로 기독교의 십계명처럼 태국 상좌부 불교의 5계를 일상적으로 지킨다. (살생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술과 마약을 삼가라) 그러나 도덕적으로 교육을 잘 받지 못한 시골 사람도 많고, 가축을 도축하는 등 어쩔 수 없는 경우를 합리화하려고 각종 변명을 붙일 때가 많다. 


태국에서 불교와 민간신앙의 혼합 시기는 대체로 수코타이 왕국 이후로부터 가시화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원인은 이때부터 불교의 대중화가 싹트기 시작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불교는 태국에 유입된 이후 쉽게 포교를 할 수 있었다. 이것은 외래종교인 불교가 태국에 들어와 각기 신관ㆍ제의ㆍ사제ㆍ종교적 사상체계ㆍ신도의 태도 면에서 서로 교류하면서 수수관계가 이루어졌다. 이 종교는 동남아식의 종교로 변용된 모습을 보인다. 그것은 외래종교로서의 생존이 전통적인 태국의 종교적 토양을 떠나서는 살아나가기 어려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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