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상업적인 면으로 인하여 벌어들인 부는 온 국민들을 나태하게 했다. 특히 상업적으로 부유함을 쟁취한 지주와 일반 서민들의 빈부의 격차는 상당했고 카르타고 도시 전체가 거지들과 고아들이 많았으며 더구나 일반 시민들이 로마와의 전쟁에서 조국 카르타고를 위해 투쟁할만한 명분도 없었고 시칠리아를 획득함으로써 일반 서민들이 갖게 될 이득이 많지 않았다. 그럼으로 인해 확실한 동기부여와 더불어 바다에서 강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전쟁은 카르타고가 승리할 것이 확실했고 방심했다.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 The Decline of the Carthaginian Empire - WGA23169
둘째, 군은 대부분 용병으로 할당했다. 용병의 기용은 카르타고에 의한 충성보다 용병 개인 가족에 대한 충성이 우선시 되었다. 따라서 통솔자는 주로 카르타고 장군이었지만 군령이 무너지고 상관에게 저항했으며 상관인 카르타고 장군은 이에 대해 무자비한 엄벌로 오히려 용병들의 원성을 샀다. 카르타고에 대해 목숨걸고 전쟁을 벌여야 할 이유도 없기 때문에 충성도가 있을리 만무했다. 결국 군의 기강이 무너지고 군 통솔자들의 명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니 군 전체의 기강이 흔들리게 되었다.
셋째, 귀족과 공무원이 부패했고 부패한 귀족과 공무원은 해외에 재산을 은닉했다. 제3차 포에니 전쟁 때 이들 귀족들은 대거 카르타고를 탈출했고 결국 카르타고가 멸망할 때까지 최후로 도시를 지켰던 이들은 빈부격차에서 가장 하급인 노예들과 시민들이었다. 이는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이 시칠리아에 투자했던 부유한 귀족층들은 자신들이 시칠리아에서 쌓아놓았던 부유한 재산들이 위협 받을까 두려워했고 국가와 일반 시민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내놓은 군대는 귀족의 재산을 지키기 위한 사병들로 대거 채워졌고 국가에 대한 충성의 의미가 퇴색되었기 때문에 패배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카르타고에 몰리면서 신흥국가인 로마에게 무너진 치명적인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로 인한 히스파니아의 은광 발굴은 그러한 타락성을 더욱 부추겼고 결국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을 비롯한 카르타고 장군들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고 이들을 견제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히스파니아도 로마에게 잃고 카르타고 군이 이탈리아에서 고립되자 결정적으로 자마에서 패배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종합적인 원인이 결국 카르타고가 로마에게 패망하는 이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