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전통문화예술] 천년의 장단 장고(杖鼓), 치고 어르는 소리[3부 기획시리즈-③]
  • 이형구 기자
  • 등록 2026-07-08 12:14:31
  • ③ 칠포위각(漆布爲殻)의 비밀, 표면이 소리를 결정한다

칠포위각(漆布爲殻)의 비밀, 표면이 소리를 결정한다


 장구의 복원은 형태와 치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소리를 결정하는 것은 나무의 형태뿐 아니라 재질, 그 표면을 처리하는 방식, 악기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의해서도 크게 좌우된다. 선생이 옻칠 방식에 주목하게 된 것은 그러한 탐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수순이었고, 계룡의 작업장에서 25년째 옻칠을 연구하고 있는 것도 그 필연의 연장이다.

 동아시아 삼국의 옻칠 기법은 유사한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중국의 협저태칠기(夾紵胎漆器), 일본의 건칠(乾漆), 그리고 우리의 칠포위각(漆布爲殼)기법은 틀을 만들고 옻칠과 삼베를 겹겹이 쌓아올려 형태를 만들어 낸 뒤, 틀을 제거하는 옻칠기법이다, 각 나라별 불리는 이름만 다를 뿐이다. 우리의 칠포위각방식은 악학궤범에 가장 소리가 좋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전통 장구의 고유한 제작법으로 쓰였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유물로는 한 점도 내려오지 않아 아쉽다. 이 방식은 단순히 표면을 아름답게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악기의 구조적 안정성과 음향적 특성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기술적 선택이었다. 소리를 고려해 틀을 만들고 칠하고 베싸고 다시 칠하고, 칠을 완전히 굳히고, 약 100여 번의 공정을 장구통 하나에만 3년여를 애를 써 선생은 칠포위각 장구를 재현하였다. 충분히 칠이 올라간 악기는 습도와 온도의 변화에 안정적으로 반응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소리가 깊어진다.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악기는 아무리 형태가 정확하더라도 진정한 의미의 전통 장구라 할 수 없다는 것이 선생의 확고한 입장이다.

 축승(縮繩)이라는 조임줄은 가죽의 장력을 조절한다. 명주실을 천연염색하여 삼갑으로 꼬아 제작하였다. 구철(鉤鐵), 즉 갈고리쇠는 용머리모양 및 파도, 연꽃, 호랑이 머리 등 다양한 형태로 재 도안하여 제작하였다. 

이 모든 세부 요소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어서, 하나를 바꾸면 전체의 균형이 달라진다. 복원이란 그러므로 하나의 수치나 하나의 기법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요소들 사이의 관계 전체를 한꺼번에 다시 세우는 일이다.



시카고로 건너간 소리, 부재(不在)가 증언하는 것들

 우리의 전통 장구가 제대로 보존된 형태로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은, 단순한 박물관 소장품의 부재를 넘어서는 깊은 문화적 단절을 상징한다. 악기가 없다는 것은 그 악기의 소리를 만드는 기술이 없다는 것이고, 기술이 없다는 것은 그 소리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도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는 사람이 없어지면, 잃어버렸다는 사실 자체도 잊힌다.

Artist in Korea, Janggo (drum), 19th century, wood, lecture, and cotton, Gift of the Korean Imperial Embassy, Chicago, 1893. E9804. Peabody Essex Museum.

https://www.pem.org/blog/korean-art-and-music-comes-to-pem


 미국 보스턴 피보디에식스 박물관(Peabody Essex Museum)에는 한국의 전통 장구가 보관되어 있다. 장구 외에도 생황, 대금, 당비파, 양금, 거문고 각 1점과 피리 2점이 보관되어 있다. 선생이 추적한 사진과 문헌의 기록들이 가리키는 형태로 제작되고 제대로 된 비례를 갖춘 장구가 그곳에 있다. 1893년 고종이 '시카고 박람회'에 출품했던 악기들이 120년만인 2013년 한국 전시회 기간에 잠시 고국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오랜 세월을 건너온 그 악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귀향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기회는 실측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허무하게 지나갔다. 악기는 다시 태평양을 건너 보스턴으로 돌아갔고, 우리는 우리 손으로 만들어진 소리의 원형을 다시 한번 먼 곳으로 떠나보냈다. 그 상실의 무게를 이해하는 사람이 당시 얼마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계룡의 작업장에서 그 이야기를 꺼내는 선생의 목소리에는,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가시지 않은 안타까움이 실려 있었다.

 '명필은 붓을 가린다'는 말이 있다. 훌륭한 글씨를 쓰는 사람은 아무 붓이나 쓰지 않는다는 의미이지만, 선생님은 이 말을 뒤집어 읽는다. 아무리 훌륭한 연주자라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악기 앞에서는 자신의 기량을 완전히 구현할 수 없다는 것, 달리 말하면 손가락을 쓸지언정 그 붓은 못 쓰겠다는 장인의 판단이 음악의 세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장구가 장단의 뼈대로서 우리 음악 전체를 받쳐왔다면, 그 장구가 제 형태와 소리를 잃었을 때 음악이 받는 타격은 단순한 음색의 변화가 아니라 뼈대 자체의 변형이다. 악기를 제대로 복원하는 일은 그러므로 연주자를 살리는 일이고, 나아가 음악 자체를 살리는 일이다.

 이 인식이 선생으로 하여금 처음으로 복원 장구 제작에 착수하게 만들었다. 문헌과 사진, 실측과 직관을 총동원하여 만들어낸 첫 번째 복원 악기는 2007년 국립국악원 공연 무대에 올랐다. 오랜 탐구와 제작 끝에 세상과 처음 만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2011년, 그 성취가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수상으로 공식 인정을 받았다. 세상이 알아보는 데 4년이 걸렸지만, 선생이 그 소리를 처음 추적하기 시작한 때로부터는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있었다.

※ 장구에 옻칠작업을 하고 있는 김동경 선생(2016년 SBS다큐멘터리 '영원의 다른이름 옻' 출연)


부재의 목록과 계승의 무게,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하여

 한 문화의 쇠퇴는 언제나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가시적인 방식, 즉 전쟁이나 재난이나 의도적인 파괴를 통해 물질적 유산이 사라지는 것이다. 또 하나는 비가시적인 방식, 즉 서서히 관심이 옮겨가고 기술이 전승되지 않으며 그것을 소중히 여기던 사람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면서 무언가가 조용히 증발하는 것이다. 전통 장구를 둘러싼 상황은 두 번째 방식에 가깝다. 아무도 뺏어가지 않았고, 아무도 부수지 않았지만, 어느 날 보니 제대로 된 것이 남아있지 않았다.


※ 뮌헨 오틸리엔수도원에 소장되어 있는 한국의 장구(2019년 김동경 선생 촬영)


 천 년을 넘게 이 땅의 모든 음악 현장에 함께했던 악기가 정작 제 원형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은, 그 역설만으로도 충분히 무겁다. 우리나라에 전통 방식으로 제작된 장구가 현재 제대로 남아있지 않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실이다. 박물관의 수장고에 있는 것들도 온전한 형태로 보존된 것은 드물고, 실측이 이루어진 것은 더욱 드물다. 경북대 수장고의 장구가 수십 년을 거꾸로 걸린 채 방치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그 부재가 단지 악기의 물리적 소실에 그치지 않고 악기를 읽고 해석하는 지식 자체의 소실로 이어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알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면 지킬 수도 없다.

 이 부재의 목록은 비단 장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전통 악기 제작의 세계 전체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재료를 구하는 일도, 기술을 이어받는 일도, 그것을 쓸 줄 아는 연주자를 기르는 일도, 그리고 그 소리의 가치를 알아보는 청중을 형성하는 일도 모두 쉽지 않다. 이 모든 연결고리 중 어느 하나가 끊어져도 전체의 흐름은 멈춘다. 선생이 악기 복원에 헌신하는 것은 그 연결고리를 한 땀 한 땀 다시 이어가는 작업이다. 혼자서, 조용히,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의 대부분을 견디면서.


※ 악학궤범/성현 1439~1504외,1493(호사문고소장) *출처:국립국악원



25년의 정성,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길

 2007년 국립국악원 무대에서 처음으로 복원 장구가 울렸을 때,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감각했다. 2011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최우수상 수상은 그 다름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순간이었지만, 선생 자신은 그 순간에도 완성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진면목(眞面目)에 도달했는지, 참다운 소리가 옳은지에 대한 물음을 스스로에게 멈추지 않는다.

 이것이 장인의 시간이 일반적인 시간과 다른 이유다. 세상의 시계는 완성을 향해 직선으로 달리지만, 장인의 시계는 완성에 가까워질수록 더 많은 질문이 생겨나는 나선형의 구조를 갖는다. 더 잘 알수록 더 많이 알아야 할 것이 보이고, 더 잘 만들수록 더 잘 만들어야 할 것이 느껴진다. 이 역설적인 구조 속에서 장인은 자신의 일생을 보낸다. 계룡의 작업장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그 나선의 한 겹이다.

 선생님은 지금도 장구를 만들고 있다. 칠포위각의 방식으로 옻칠을 올리고, 명주실을 꼬아 줄을 만들고, 용 머리 모양의 구철을 갖추고, 정확한 비례의 통을 만드는 작업을 하루하루 이어가고 있다. 문헌과 유물과 실측과 청각으로 쌓아올린 25년의 지식이 매번 새로운 악기에 담긴다. 그리고 그 악기는 또 새로운 소리를 내어 자신에게 다시 질문을 던진다. 완성은 없다. 다만 더 깊어지는 물음이 있을 뿐이다.

 앞으로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묻자 돌아온 대답은 단 하나였다. 장구라는 악기가 제대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헌신해보고 싶다고 했다. 장구를 계속 만드는 것, 그리고 전통 장구 제작의 기술과 정신이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 그것이 그의 남은 길이다. 계룡산의 기슭에서 시작된 그 길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길 위에 쌓여가는 소리들이, 언젠가 우리가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던 장단의 원형을 되살려낼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거문고의 여섯 줄이 천년을 울려왔듯, 장고의 두 면은 이 땅의 장단을 받쳐왔다. 이 악기가 천 년의 세월 동안 우리 음악의 뼈대가 되어온 것은, 그것이 단지 편리한 도구였기 때문이 아니라 이 땅의 소리와 몸을 섞으며 우리 고유의 무언가로 완전히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소리는 공기 중에 흩어지고 사라지지만, 그 소리를 가능하게 하는 형태와 기술과 정신은 사람의 손을 통해서만 이어진다. 선생이 복원하려는 것은 악기 한 대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음악이 서 있던 뼈대이고, 장단이 온전히 살아있던 시절의 기억이며, 소리가 소리답게 울리던 세계의 원형이다.

 잃어버린 소리도 긴 기다림과 정성 끝에 다시 이 세상에 깃들 것이다. 계룡의 사랑재길, 그 기다림의 한가운데에 김동경 선생이 있다.

※ 장구_김동경선생 작(2014년)



“장단은 뼈다. 뼈가 바로 서야 음악이 산다. 그 뼈를 되찾기 위해, 오늘도 선생의 손은 멈추지 않는다.”


 - 끝 -

0
유니세프
국민 신문고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