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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保守政派’는 확실하게 둘로 갈라져라
  • 朴京範 소설가/철학수필가
  • 등록 2026-07-08 09:50:12
  • 수정 2026-07-08 12:20:09
  • 普遍傳統保守냐 脫大陸至上派냐 국민이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1997년 末境 ‘김대중 좌파정권’의 집권에 대비하여 월간 한국논단의 주최로 시국토론회가 열렸다. 주요발표가 끝난 후의 청중 질문에서 필자는 ‘우리의 어문정책이 좌익의 嗜好에 맞춰 있다’고 발언하여 李度珩社長에게 自現하였고 참석 人士인 林炚圭 辯護士에게서도 공감 표시를 받았다. 이는 기술자 출신으로 에스에프 및 환타지 소설을 데뷔한 지 얼마 안 되는 회색분자가 보수논객으로서 입문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필자는 한국논단 等에 글을 발표하며(참고글 1,2) 이 같은 문제의식의 해결에 있어 당시 좌파정부에 비판적인 보수우파 세력이 힘이 되어주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이미 이 때 脫大陸 세력은 집권세력으로서의 기득권을 상실한 상황에서의 존재감 强化를 위해 이제까지의 보편전통보수와의 同居를 청산하고 이제 집권하여 확장된 좌파와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결심한 터였다. 脫大陸 세력은 해양지향 추구 외에 이 땅의 전통적 민족문화가치 등에는 관심이 없었다. 결국 1999년 김대중 정부의 (선거당시의 공약과는 다른) 한글전용가로쓰기 밀어붙이기로 필자는 투옥되고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이 때 이미 집권 좌파정부에 맞서는 정치의 주도권은 脫大陸至上의 ‘新右派’로 넘어가고 전통보편보수파의 정치기능은 와해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다수의 국민을 대표하는 보편적 보수파라 하면 어떤 적극적인 특정 목적성 구호가 필요 없다. 자유민주니 한미동맹강화니 하는 것은 부분적인 것이고 특정요소이다. 공산화 등으로 사회의 인위적인 급진변화만 꾀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좌파정부 이후의 ‘뉴라이트에 의해 집권’한 이명박정부는 스스로 좌파정부 이전의 보수정부와는 다르다는 自身의 정체성을 선언했다. 이후 ‘정권재창출’에 의해 이어진 것으로 알았던 박근혜 정부가 ‘舊보수’로의 회귀를 企圖하는 듯하자 신우파는 좌파와 합세하여 탄핵으로 중지시켰다.

이러한 ‘汎보수’內 異質세력의 동거는 쉽사리 정리되지 않는 것이어서 尹정부 이후로도 ‘같은 보수정파’內의 極限 대립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좌파에 대항하려면 보수가 단결해야 한다.’는 原始論이 아직도 있을 수 있지만 이미 그러한 가치관은 현실정치권에서 유효기간이 다하여 지난번 대선에서(이준석, 홍준표에 의하여) 소멸되었다고 봐야 한다. 보수세력의 整理는 당장의 집권보다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이제는 兩세력은 당내파벌이 아닌 외형적인 다른 정파로서 국민 앞에 분명히 나타나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국민적 다수세력을 代辯하나 정치적 결집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정파와 소수를 대변하지만 정치적 응집력이 강한 정파는 公明한 比較로서 정리되어야 하는 것이다. 얼핏 보면 그래도 ‘다수를 代辯’하는 세력이 유리할 듯하지만 後者는 外勢와 이익집단의 集中支援 등의 利點이 있어 우열의 예측은 어려운 것이다. 현재도 대륙지향 여진몽고계열 좌파와 脫大陸 ‘强性右派’의 중간위치 격의 이른바 중도보수의 중요성이 膾炙되지만 현실적으로 兩黨 대립구도에서 평균 혹은 혼합의 노선을 표방하는 所謂 이념적 중도지향은 전혀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현재 드러나고 있는 兩갈래의 ‘保守政派’가 각각 어느 쪽이 위에서 말한 어느 쪽이라고 規定이 어려운 것이다. 필자는 以前에도, ‘이 땅의 민족을 소멸하려는 세력은 어느 한 政黨에 있지 않다 똑똑한 그들은 한쪽에 몰려 있으면 국민의 표로 淘汰될 것임을 잘 알기 때문에 兩黨에 고루 분포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특히 민족의 줄기를 잇게 할 보수 정치세력은 외세로서는 더욱 攻略의 대상이기에 더욱 細心한 工作이 作用하고 있다. 脫大陸 세력은 현재 드러나는 보수 兩派에 계속 골고루 분포하여 국민 앞에 現前하지 않고자 할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兩派에 ‘보수 本然의 가치’를 標榜하도록 압력을 높여야 한다. 이러한 정파경쟁은 결국 치킨게임이 될 것이다. 국민 다수의 選好를 따라 질주하는 것이 더욱 표를 얻을 수 있기는 한데 그러다 외세 등의 파괴공작으로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겠지만 낭떠러지에 이르기 전에 국민이 받쳐줄 것임을 확신시켜야 한다.

保守性의 표방은 방명록에 漢字使用을 조금 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全面的이고 당당한 민족정체성의 회복을 표방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 ‘좌파에의 固定’이 아닌 實用을 표방한 이재명 대통령이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조금 언급했다고는 하나 역시 더민당 정권의 태생의 한계로 시늉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設使 이재명 대통령이 전면적 漢字解禁을 실시한다 해도 다른 구실로 더민당의 골수 좌파와 相對便 국힘당이 합세하여 탄핵될 것이다. 근본적 해결은 보편적 전통보수 세력의 재집권 밖에는 없다. 형식상의 정권교체가 된다고 해도 탈대륙지상세력 위주의 집권은 대륙지향세력과의 계속적인 극한대립의 연속일 것임은 明若觀火하다. 분리된 보수 兩黨으로 전통보편보수세력과 탈대륙지상세력이 서로 섞이지 않고 각기 한쪽으로 몰리도록 유도하여 우리 국민이 국민의 전통적 기호에 맞는 보수정치를 票로써 선택할 權利를 되찾아야 한다. 

 

[참고글 1]

좌익의 사회적 高地 점령전략

- 사회문화적 관점으로 본 좌경운동

(1998.4. 한국논단)

 

여기 커다란 황소가 묶여있다. 이 소를 제물로 쓰기 위해 잡으려 한다. 

그런데 소를 잡는다고 아무 데나 마구 도끼로 찍어대면 과연 소가 쉽사리 쓰러질까? 필경 발광하는 소의 피로 주변은 범벅이 될 것이며 요긴하게 쓰일 쇠가죽도 제대로 얻지 못할 것이다.

바로 이 때 솜씨 좋은 백정이 필요하다. 백정은 자그마한 망치로 황소의 정수리를 내리친다. 몸뚱이를 여러 번 도끼로 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가죽도 상하지 않는다.

흔히들 좌익혁명은 하층 민중을 선동하여 일으키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과연 역사상으로는 그런 사례들이 있고, 좌익혁명은 그 본질상 하층 민중들에게 '모두가 고루 잘사는 사회'를 당근으로 제시하여 혁명을 유도하는 것이 보편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좀 다르다. 六:二五를 거쳐 그들의 실상을 보아서 그런지, '하층 민중'이라 할지라도 하나같이 공산주의란 말에는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좌경혁명적 '지식인'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고 한심하게도 생각되는 것이다.

 

사회적 高地占領의 전략

 

그러나 어차피 '혁명과업'은 완수해야 하는 것... 어찌해서라도 남한이 主가 되는 흡수통일은 막아야 하며, 통일 이후에도 되도록 북한의 세력이 지배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남한에 공산주의와의 이질감을 갖지 않는 계층을 두텁게 쌓아야 하는 것이다.

이에따라 남한의 좌익세력이 채택한 고도의 혁명전선전술은 마치 백정이 소의 정수리를 때리는 것과 같은 사회적 高地占領의 전략이었다. 즉 민중을 부추키기보다는 지배층의 思考를 '民衆化'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 각 분야 중에서 정신적으로 상층부에 있고, 聖域 혹은 準 성역으로 간주되는 곳에 침투하고 또한 자라날 수 있었다. 말하자면 문학과 종교가 그 가장 적합한 토양이다.

어느 사회이든지 이른바 고급문화는 하층 대중문화보다 쉽게 변화하지 않으며 상대적으로 보수적이게 마련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의 문학계는 이른바 고급문화에 속하는 곳이 더 '진보적'이다. 

純文學이란 인간의 眈美的 욕구에 의해 여느 예술작품처럼, 대중에로의 전파라든지 상업성 등을 고려하지 않고 창작되는 문학이다. 그러므로 일단 순문학이라는 목적을 가지면, 인간심리의 내면적 성찰을 주로 하기 때문에 아무리 쉽게 쓴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순문학의 본질로 볼 때 우리의 문학이 일찍이 하나같이 한글전용에 가로쓰기로 통일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대중문학을 순문학으로 위장하는 경우는 별도로 하더라도, 순문학이라는 그 자체로 어차피 만족할만한 대중성과 상업성은 얻을 수 없다. 아무리 '산뜻하고 삼빡하고 상큼한' 분위기로 포장되고 편집된 문학서적이라 할지라도 담아있는 내용이 순문학의 목적에 충실할 경우, 가지고 있는 순문학 본연의 무게를 감당 못하여 대중성을 가지지 못한다. 따라서 상업적인 사정에 의한 선택이 절대적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민중지향적'인 인위적 통일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그들'의 '商業外的 所信'에 基因한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종교계 사고의 非反動化

 

漢字로된 제목에 세로쓰기의 책은 지금은 어둠침침하고 퀘퀘한 뒷골목 만화방의 무협지에나 남아있다.

마찬가지로 종교계에서도 思考의 '非反動化'를 위하여, <하느님의 말씀>의 엄숙함과 권위를 없애고 쉽고 편한 한글가로쓰기로 바꾸기 운동이 있었다.

그런데 신도중에서 漢字나 漢字말을 전혀 모를 하층민중은 오히려 기독교(개신교)측에 많은데도 어찌된 일인지 상대적인 상류층 종교인 천주교에 쉽게 각색한 한글가로쓰기성경이 채택되고 있다. 

천주교 미사는 전통적으로 권위와 격식을 존중하기 때문에 까다로운 祭禮儀式을 하층민중으로서는 따라가기 어렵다. 천주교 신자들은 대체로 기본 교양이 있는 계층의 사람들이고, 열성적으로 전도를 하지도 않으므로 주로 代代로의 전통이 있는 집안에서 믿는 중상류층 종교이다. 요전의 유력한 대통령후보 二명이 모두 (국민전체의 신도수는 그렇게 많지 않은) 천주교 신자였다는 것도 결코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천주교 신자들 중에 전통 성경이 어려워서 못 읽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혁신'은 강행된 것이다.

 

공권력손대기 힘든 곳에 파고든 좌익들

 

천주교가 그 본질을 벗어나 모든이에게 쉽게 읽히는 성경을 위하여 본래의 엄숙함과 경건함 그리고 섬세한 의미의 소멸이라는 희생을 치루면서 '쉽고 편한' 한글가로쓰기 성경을 正經으로 채택한 것은 二律背反的이라 아니할 수 없다. 모든이가 다 같이 동등하게 신앙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바라는 바라면 뇌성마비자는 할수 없는 聖號긋기를 폐지해야 할 것이고 여성차별의 상징인 面紗布쓰기를 폐지하여야 할 것이다. ("男子는 하나님의 形像과 榮光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고린도前書 一一:七) 하느님도 "스스로 判斷하라" (고린도前書 一一:一三)고 했다. 하느님의 말씀도 스스로 판단하여 업데이트하면서 그 정도 것들을 스스로 판단하여 개혁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결국 앞에 든 예들은 사회적 상류계층에로의 '非反動的思考' 注入運動의 하나라고들 밖에는 달리 추론할 근거가 없다. 이렇듯 국내의 좌익운동은 단순히 고전적인 방식을 탈피하고, 檢察力 等이 손을 대기 어려운 곳에 파고들어 '장차 자리잡을 체제'(?)의 기반을 다져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좌익'은 어찌보면 左翼이라는 말도 맞지 않다. 그들은 고전적 의미의 좌익하고는 다르다. 그들은 남한에 의한 북한의 흡수통일을 방지하며, 통일후에 북한의 관습과 이념이 최대한 힘을 발휘하도록 남한에 기반을 조성하려는 측이다. 흔히들 좌익의 비판에 대해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의 민주당이나 영국의 노동당, 하다못해 일본의 사회당 같으면 그런 말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새는 왼쪽 날개 끝에 추를 매달고 날 수 없다'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앞날은 세 갈래의 길이 있다. 그 첫째는 국가정책의 大右回轉을 단행하여 일본이나 대만과 같이 고유전통을 살리면서 완전한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이루어 국력을 신장하는 길이다. 건국이후 오십년을 그렇게 일관하였더라면 진작에 독일과 같은 통일을 이루어 지금쯤은 그 지리한 이념싸움을 안해도 되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어서 빠른 '민족간의 동질성확립'과 통일을 위하여 우리의 사회문화를 '그들의 뜻대로' 더욱 더 북한과 유사하게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

 

이 경우 설사 정치권력은 남한정부가 主가되어 통일을 이룬다 하더라도 일단 통일 후 대세의 역전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리하여 이 첫 번째 案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고 두 번째 안 또한 될 수 없는 상황에서의 세번째 案은, 지금까지와 같이 완전한 자유민주 체제도 아니고 사회주의 체제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계속 세월을 보내는 것이다. 가장 편한 타협안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우리의 국력은 갈수록 쇠약해져 결국 주변국의 속국으로 전락되고 말 것임은 명백한 일이다.

 

[참고글 2]

左翼의 嗜好에 따르는, 韓國의 語文政策

(1998/2 한국논단)

 

좌익의 목표는 기존 질서의 재편성이다. 따라서 현존하는 문화, 사회적 가치질서의 변경에 최소한의 명분이라도 있으면, 그 새로운 것의 효용성이 개편에 따르는 부담보다 크지 않다 할지라도 바꾸고자한다. 기존의 질서가 薄弱할수록 새 이념은 자리 잡을 터를 확보하기 유리하게 마련이다.

좌익이 가장 동경해 마지않는 역사적 사건이 프랑스 대혁명일 것이다. 쉬운 소리글자가 있어 민중의 의식이 깨어 있었기에 민중혁명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여긴 그들은, 서양적인 가치문화를 수입하여, 기존의 전통을 제거한 위에 새로운 가치를 심으려 했다.

우리의 국어 교과서에서는 세종대왕이 백성들이 자기의 뜻을 알리지 못하고 불이익을 당하는 것을 해방시켜주기 위하여 한글을 창제함을 가르치면서, 은연중에 양반들이 저들끼리만 통하는 글로 민중을 속이고 착취하며 저들만의 이익을 도모하여 왔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아울러 고전문학의 교육에서도 양반들의 漢文學은 허세로 차있는 것이며 민중들의 한글문학만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인식시켜주고 있다.

한글전용 외에 기존의 가치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한 또 하나의 방편으로서 동양 고유의 글쓰기 방식인 세로쓰기의 말살이 있다. 일본과 대만의 국어교과서 등은 전통적인 세로쓰기를 고수하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그들의 문자생활이 불편하며 나라가 발전 못했다는 얘기는 없다. 한국의 語文 정책은 일본, 대만 등의 경우보다 북한, 중국공산당과 유사하다. 북한의 경우 한글전용에 가로쓰기를 일찍부터 채택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의 경우 한자를 계속 사용했으되, 문자의 의미와 미학적인 가치보다는 실용성과 용이성을 우선한 간체자로 문자개혁을 하였다는 것에서, 쉬운 것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했던 우리의 문자정책과 같다. 또한 그들은 가로쓰기를 보편화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개혁'이 좌익운동과 무슨 연관이 있느냐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가치의 移入에 있어서는 기존의 가치질서는 파괴될수록 좋다. 파괴할 수 있고 새 것으로 대치할 수 있으면, 그 합리성을 불문하고 좌익은 바꾸고자 한다. 수백 수천년을 이어 내려온 우리의 文化樣式은 불과 일이십년 만에 좌익에 의하여 바뀌었다.

이렇게 직접으로는 사회, 역사와 관련이 적은 듯한 분야에까지 기존가치를 몰아내어, 保守의 <氣>를 쇠잔시키면서 파고드는 좌파의 수법에 비해 우파는 그 대처가 너무 피상적인 것이 아닐까. 그들은 울창한 숲에 붉은 곡식을 심을 때, 곡식 심을 공간만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고, 심을 공간이 아니더라도 火田밭을 일구듯이 기존의 모든 植物을 全燒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그런 것들이 좌우파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하며 문제제기 자체를 멋쩍어하며 방심하는 중에, 우리의 피교육자들의 意識의 뿌리는 전통적 가치를 버리고 서구적 유물사상 수입의 바탕을 다져가는 것이다. 敵은 나무뿌리를 캐내 枯死를 시키려고 하는데, 우리는 나무열매를 지키느라 급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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