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함에 대한 저항과 주체적 변화의 의미》
-현실적 한계를 인정하되, 부당함이 관성이 되는 것까지 받아들이지는 않으며
부당함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부당함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와 피로 역시 완전히 제거하기는 어렵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누군가는 이러한 모습을 보며 묻곤 합니다.
"어차피 변하지 않을 것이고, 쉽게 바꿀 수도 없는 일인데 왜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십니까?"
현실적이고 한계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이러한 질문에는 충분히 타당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개인의 노력만으로 거대한 사회적 구조와 인간의 오랜 관성을 바꾸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문제를 조금 다른 방향에서도 바라보고자 합니다.
현실적 한계를 인정하는 것과 이상을 포기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의 제약을 이해하되, 이상적이고 초월적인 방향성을 함께 고려한다면 부당함에 대한 저항은 반드시 세상을 바꾸기 위한 행위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부당함이 반복되어 관성으로 굳어지는 것을 최소한으로라도 억제하려는 노력이며, 더 근본적으로는 그러한 현실에 노출된 저 자신마저 부당함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그것을 추구하는 존재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는 자가점검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저에게 저항은 타인을 심판하거나 세상을 완벽하게 바꾸겠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의 불완전함 속에서도 스스로가 어떤 방향을 선택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인간은 지식과 기술, 물질과 에너지, 심리와 정보 등 다양한 영역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리학과 화학, 전자기술, 심리학, 정보처리와 같은 지식은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활용하는 존재의 목적과 방향에 따라 서로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존재가 높은 수준의 지식과 능력을 갖추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존재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러한 능력을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고, 자신의 충동과 욕망을 어느 정도 통제하며, 그 결과에 대해 얼마나 책임질 수 있는지가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능력이 부당한 소유와 약탈, 타인에 대한 지배를 위해 사용된다면 지식과 기술은 파괴적인 영향력을 확대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자기점검과 책임 있는 관리, 공존과 조화를 위해 활용된다면 부당함을 줄이고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능력의 크기만이 아니라 그 능력을 이끄는 방향성과 관리 체계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방향까지 포기하는 태도는 경계하고 싶습니다. 거대한 구조를 당장 변화시키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 구조의 부당함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지 않고 스스로의 판단과 행동을 조금씩 바로잡아 가는 일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은 눈에 띄는 성과나 물질적인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오히려 불필요한 피로와 고독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더 합당한 방향을 향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소중하게 여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세상의 부당함을 닮아 가지 않기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
저는 그것이 미물적 존재가 지닐 수 있는 작지만 의미 있는 주체성이며,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 다음 기회를 이어 가기 위한 하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저항의 가치는 언제나 승리하거나 보상받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부당함이 관성이 되는 상황에서도 스스로 선택한 의미 있는 방향을 잃지 않는 데 있을 것입니다.

●위 이미지는 인공지능을 통해 생성되었습니다.